이명박·이회창 지지자 9명 심층좌담…이회창은 보수의 스페어타이어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이명박 후보를) 불안하게 느끼시나요?”(진행자)
(참석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 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창’을 끌어들인 건가요?”
역시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창’이 돌아왔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11월7일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지녔던 한나라당 당원증도 반납했다. 이제 보수세력의 지지자들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놓고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은 11월8일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이란 조사 기법을 통해 보수세력 지지층의 ‘표심’ 속으로 들어가봤다. 심층좌담은 서울에 거주하는 40~50대 가운데 이명박(5명)과 이회창(4명)을 지지한다고 밝힌 9명의 남성(표 참조)을 대상으로 했다. 사회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의 임상렬 사장이 맡았다. 참석자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 가명으로 표시했다.
1. ‘창’의 귀환
“한나라당의 판이 더 커졌어요”
호아무개(50)씨와 창아무개(45)씨, 찬아무개(54)씨는 11월7일 오후 2시에 열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호씨는 “이명박을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너무 흔들릴 것 같아 이회창을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계 은퇴를 문제 삼진 않았다. 2002년에도 이회창을 찍었다는 호씨는 “다시는 (대선에) 안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대통령이 다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을 지지하는 성아무개(42)씨의 생각은 달랐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다시 나온다는 건 도덕적 결격 사유이자,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위다.”
사회자가 “‘창’이 왜 나왔다고 보냐?”는 질문을 던졌다. 참석자들은 이명박 후보한테서 그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BBK 사건’ 관련 의혹 등이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점쳤다. 진행자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참석자들은 모두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명박 지지자인 강아무개(54)씨조차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서 불과 1~2주 전만 해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이명박 대세론’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설회사에 이사로 있는 종아무개(42)씨는 이 후보의 처남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얘기를 들었다며 “뭔가 있더라고요. 터지긴 터지겠다 싶어요”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참석자들은 모두 ‘창’은 이명박 후보가 ‘부른 것’이라는 데 선뜻 동의했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이 전 총재의 귀환이 보수가 안정적으로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스페어 타이어’로 봤다. 두 후보가 존재하게 된 현실을 분열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명박을 지지한다고 밝힌 종씨는 “도저히 안 됐을 때를 대비한 방어책”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를 지지한다고 밝힌 우아무개(46)씨는 ‘창’을 이명박 후보의 구원투수에 비유했다. ‘창’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명박의) ‘대체재’로 인식하는 셈이다. 이명박을 지지한다고 밝힌 성아무개(42)씨도 “‘창’이 참여함으로써 한나라당의 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창’의 출마가 보수 집권의 지반을 더욱 넓혔다는 해석이다.
2. 왜 ‘MB’와 ‘창’을 지지하나?
“둘 다 이유는 이명박에게 있어요”
이명박(MB) 후보 지지층은 지지의 이유를 이명박한테서 찾았다. 재밌게도 이회창 후보 지지층 역시 지지의 이유를 ‘창’이 아닌 이명박한테서 찾았다. 사회자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뭔가”라고 묻자, 찬아무개(54)씨와 호아무개씨, 성아무개씨 등 ‘창’ 지지자들은 이명박 후보의 정치력 부족 등을 꼽으면서 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창’의 지지율도 대체로 이명박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봤다. 즉, 자력으로 20%를 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성씨는 “이명박씨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기 힘으로 20% 이상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예측했다. 찬아무개씨도 “비록 내가 지지는 하지만 ‘창’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갈 거 같진 않다”고 말했다. 무소속이라는 점과 시간 부족 등이 ‘창’의 핸디캡으로 꼽혔다. 극우적 색채가 강한 창의 이념적 좌표가 한나라당 밖으로 지지층 확대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은 달랐다. ‘창’ 지지자들조차 도덕성을 빼곤 이 후보의 장점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창아무개씨는 “이명박씨의 이미지가 서민적이고, 청계천 복원 등 어떤 일을 하더라도 추진력 있게 잘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아무개(44)씨는 서울시장 경력, 청계천, 버스 전용차로제, 샐러리맨의 신화 등을 일일이 언급했다. 이들은 한마디로 이 후보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도덕성은 부차적이었다. 찬씨는 “무능력한 도덕군자보다는 (도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능력 있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종아무개씨는 “옛날에 부동산으로 돈 안 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후보에 대한 도덕적 관대함이 무한대인 건 분명 아니었다. 이명박 지지자들은 애매하긴 하지만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지지를 철회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성씨는 그것을 “치명적인 것”이라고 표현했고, 창씨는 “비리가 진짜 확인되어 형사(사법처리)까지 가면”이라고 마지노선을 정했다.
3. 보수의 이념과 가치
“한나라당 보수 정체성? 명분이 안 돼요”
‘창’은 이명박 후보의 대북 정책이 보수 정체성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귀환의 주요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창’의 이런 이념과 가치가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조차 별 호소력이 없었다. 이 전 총재 지지자인 찬아무개씨는 ‘창’이 주장한 보수적 대북정책 회복의 필요성에 대해 “꼭 그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 명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북정책뿐 아니라 이념적인 좌표가 맞지 않아, ‘창’과 이명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지자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의외였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보수층이 ‘창’을 지지하는 까닭을 보수적 이념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의외의 반응으로 애초 이명박과 이회창의 보수적 가치와 이념적 좌표 비교를 토대로 짜놓은 10여 가지의 예정된 질문은 사라졌다. 물론 이번 좌담회가 보수세력의 중심인 영남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념 색채가 덜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한나라당 지지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4. 보수 후보의 단일화
“MB 낙마해도 창한테 안 가요”
참가자들은 이명박 또는 이회창 지지자이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라는 공통분모 위에 서 있다. 그래서인지 모두 강하게 ‘정권 교체’라는 공통의 목표를 바랐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요소였다. 이들은 보수 후보가 분열돼 나오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사회자가 “이회창씨가 본인이 살신성인해서 스스로 대선 경쟁에서 빠지면, 다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겠냐?”고 묻자 모두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인 우씨는 “어차피 이회창씨가 안 나왔으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보 간 합의에 의한 단일화와는 조금 다른 ‘이명박의 낙마’를 전제로 해서, “그러면 이회창씨를 지지하겠는가?”란 물음에 이명박 지지자들은 조금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창씨와 성씨, 대씨는 “이회창씨를 지지하진 않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보수 후보가 아닌 다른 진영의 후보를 찾겠다고 했다. 대씨는 “범여권 후보 단일화로 관심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고, 전북 출신이라는 창씨는 정동영 대통합신당 후보를 지지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나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쪽으로 탐색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회창이 접으면 ‘창’ 지지자 모두가 이명박 후보한테 옮겨가겠지만, 이명박 후보가 특히 도덕성 의혹으로 낙마할 경우엔 다수의 이명박 지지자가 ‘창’ 쪽으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 후보가 분열된 채 대선을 치를 가능성을 점치는 지지자도 있었다. 우씨는 “BBK나 기타 문제가 완벽하게 터지지 않고 흐지부지되면서 의혹만 있으면 이명박씨 입장에서도 가만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두 사람의 지지율이 비슷해지면 분열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5. 범여권과의 경쟁
“어떻게 되든 한나라당이 이겨요”
보수 후보에 대한 단일화 요구는 범여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보수 세력 지지층들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참가자들은 이명박 후보로 단일화하면 ‘무조건’ 범여권 후보를 누를 수 있다고 봤다. 범여권에서 누구로 후보가 단일화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의견들이었다.
우선 범여권이 후보를 단일화할 가능성은 높게 봤다. 심씨는 “후보 통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다른 참가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이명박이 ‘살아 있는 한’ “범여권이 이길 수 있는 입장은 안 된다”(성아무개씨)고 다들 확신했다. 하지만 이회창씨가 범여권의 단일 후보와 경쟁한다고 가정했더니, 확신은 금세 사라졌다.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용아무개씨(46)씨는 이회창 후보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대씨와 성씨는 각각 “장담하기 어렵다”거나 “박빙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씨는 부동표의 향방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도 ‘진다’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종씨는 “그래도 한나라당이 이긴다”며 “범여권엔 해놓은 것도, 인물도 없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갖는 정권 교체의 자신감과 확신의 근원엔, 반대편 진영이 있다. 창씨가 “열린우리당(현 대통합민주신당)을 싫어하는 사람이 국민의 60~65% 아니냐”고 얘기하자, 모두 맞장구를 쳤다.
6. 왜 정권 교체인가?
“노무현이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왜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사회자가 묻자, 현 정부와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비전과 정책, 가치 등을 언급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정권 교체의 이유를 ‘범여권’에서만 찾았다. 많은 정치 학자와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번 대선은 퇴임하는 정부의 성과를 투표의 결정적 요인으로 삼는 ‘회고적 투표’ 경향이 두드러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에 대한 고려는 후순위였다.
참가자들 나름대로 한두 가지 이상의 근거들을 갖고 있었다. 강씨는 “국가 경영이 빵점”이라는, 대씨는 “준비가 안 됐다”는 총론 성격의 평가를 내놨다. 이어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이라크 파병 등 외교정책, 10·4 남북정상 회담 등 대북정책, 힘든 민생고, 변양균·신정아 사건 등이 흘러나왔다. 이념적인 문제라기보다 “진보냐 보수냐를 접고, 그 사람의 능력이 어떠냐”(성아무개씨)는 관점과 “정책의 일관성 부재”(종아무개씨) 등의 요인을 더 크게 보는 경향도 강했다. 참가자들은 그 대안을 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이명박 후보에게서 찾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우아무개씨는 ‘창’ 지지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노무현 후보가 정말 잘할 것 같아서 찍었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대통령의 자격 요건으로 국가경영 능력 등을 중시했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라는 참여정부의 호소는 되레 보수 세력 지지자들의 감정을 악화시킨 것처럼 보였다. 참여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아 “겸허하지 못하다”고 꼬집는 의견들이 많았다.
7. 보수 정권의 탄생
“맛을 알아서 부패는 더 심해질텐데”
보수 세력의 지지자들은 보수 정권의 탄생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거라고 확신하진 못했다. 사회자가 “한나라당 정권으로 바뀌는 데 기대감이 큰가?”라고 묻자, 강아무개씨와 용아무개(46)씨는 “예”라고 답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아질 것인지는 얘기하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되돌이표처럼 다시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을 해댔다. 현재의 불만스러운 상황이 끝나는 것에 방점을 찍을 뿐이었다.
사회자가 “혹시 정권 교체가 되면 걱정되는 건 없는가”라고 묻자, 다수가 부패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다. 찬아무개씨는 “치부 면에서는 지금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맛을 알았던 사람들이니까”라며 우려했다.
부패 문제를 놓고 이회창 후보 지지자와 이명박 후보 지지자 간에 우스운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창’ 지지자인 호아무개씨는 “이회창씨가 법을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부패 문제를 다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MB’ 지지자인 성씨가 “이명박씨가 그런 걸(부패의 생리)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밑의 사람이 잘못하면, 이회창씨보다 더 잘 잡아낼 수 있다”고 맞섰다.
좌담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확신과 불안의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갖고 떠났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가 불안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권 교체를 확신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보수 정권의 탄생을 확신하면서도, 보수 정권 아래서 자신들의 미래 삶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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