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그뤼네반트 보호운동을 이끌고 있는 나르데르… 한국 DMZ 보존도 환경전문가들의 힘이 필요
▣ 플라우엔(독일)=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헬무트 나르데르(64)는 훤칠한 키에 풍성한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독일 공무원이자 환경운동가다. 지금은 작센주 플라우엔시 환경청에서 환경농업고문으로 일하고 있고, 동시에 독일 자연보호 단체인 나부(NABU)의 플라우엔시 지부를 이끌고 있다. 특히 그뤼네반트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뛰어들어 18년째 그뤼네반트 보호운동을 이끌고 있는 독일 그뤼네반트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그는 옛 동독 사람이다.
처음부터 환경단체 주도로
나르데르는 “독일이 통일된 1989년부터 분트(BUND·독일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한 연대)의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공식 업무이든 봉사활동이든 그뤼네반트 보호라는 점에서는 내용이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18년 전 처음에는 어디까지 그뤼네반트로 지정해 보호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작센 주 환경청과 환경단체 분트의 의견이 달랐다”고 말했다. 통일 직후 주정부는 옛 접경지대 중 농부가 소유한 농지와 숲은 놔두고 자연 습지 등 생태 보호 가치가 아주 높은 몇 곳만으로 한정하자는 입장이었고, 반면에 분트는 숲이나 농부 땅까지 포함해 모든 접경지대를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나르데르는 “결국 환경청이 분트의 의견을 따라 전체 지역을 보호하는 쪽으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나르데르는 독일 그뤼네반트의 폭이 비록 넓지는 않지만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길게 연결해 묶어야만 생태계와 그곳에 사는 동식물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속도로 건설 등으로 인해 그뤼네반트 축의 중간 곳곳이 끊어지면 다른 동식물들이 섞여 이상한 생물이 생겨나고, 보호하려고 하는 동식물이 사라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5월 한국 녹색연합이 개최한 ‘한·독의 비무장지대 보호를 위한 간담회’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적도 있다. “분단 한국의 비무장지대 생태 보호에서 중요한 건 이 지대를 동식물의 생태가 파괴되지 않도록 길게 연결해 보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절대로 중소 도시나 큰 공장이 들어서 녹색 생태 띠를 끊어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는 환경전문가들과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그뤼네반트에 살고 있는 동식물 보호를 위한 주정부 조례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사실 독일 그뤼네반트 보호는 처음부터 환경단체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과연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의 공식 입장은 어떤 것일까? 그는 “중앙정부의 입장은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힘들다”면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법률적인 부분과 국가 소유 그뤼네반트 땅에 대한 처리 문제가 있는데, 처음에 연방정부는 국가 소유의 접경지대 땅을 팔아서 연방 재정에 충당할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2003년부터 연방정부 소유의 접경지역 땅을 각 주정부의 환경청이나 분트에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연방정부로부터 끝내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앙정부가 넘겨준 땅은 전혀 없다.
93번 고속도로를 막아내다
나르데르는 그뤼네반트 태동에 얽힌 새로운 일화도 얘기해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4주 뒤인 1989년 12월9일 이곳 주변 호프시에서 그뤼네반트 협정이 만들어졌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였는데, 이 모임에서 작센주와 튀링겐주, 바이에른주 환경운동가들이 1390여km 철조망을 따라 통일독일 전체를 관통하는 그뤼네반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튀링겐과 작센, 바이에른주가 어디를 그뤼네반트 보호구역으로 할 것인지와 무엇을 보호 대상 동식물로 지정할 것인지를 놓고 각각 의견이 달랐는데, 결국 하이데(황무지) 지역에 사는 검정딸기라는 독특한 식물과 새 등 몇 가지 동식물에 대한 생태보호 조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중앙 연방정부는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뤼네반트 운동을 맨 처음 주도한 사람은 프뢰벨이라는 자연환경학 박사다. 서독 쪽 바이에른주의 접경지대에 살던 프뢰벨은 철조망 근처에 사는 희귀한 새 종류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통일이 되자마자 그뤼네반트로 지정해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프뢰벨이 당시 환경단체들과 정치인들을 설득해 그뤼네반트를 구축하는 데 자동차 모터 같은 구실을 했다.” 독일 그뤼네반트의 첫발은 새의 생태 서식지를 보호하자는 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나르데르는 “접경지역의 희귀종 새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례가 1990년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며 “통일 이전에 퀸터 아이스라는 사람이 접경지대 식물과 나비, 새, 메뚜기 등의 생태를 조사한 학위 논문을 통해 보호 가치가 높은 많은 동식물이 접경지대에 서식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그뤼네반트 운동의 출발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프뢰벨은 최근 ‘그린 유럽’이라는 전 유럽 차원의 환경보호 조직과 연대해 ‘유럽 그뤼네반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통일 이전인 1980년대 중반에는 젤만이란 영화감독이 동·서독 접경지대의 동식물 생태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젤만 역시 프뢰벨처럼 바이에른주 접경지역 근처에 살았던 사람으로 통일이 되면 철조망 지대를 녹색지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프뢰벨과 젤만, 이 두 사람이 그뤼네반트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뤼네반트 운동이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방정부나 주정부에서 그뤼네반트를 가로지르는 옛 동·서독 연결 고속도로를 닦으려고 할 경우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까? 나르데르는 “경제와 환경보호는 쉽게 조화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쪽 지역에도 그뤼네반트를 끊고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길이 이미 몇 개 나 있긴 하다”며 작센주의 93번 고속도로를 사례로 들었다. 정부의 애초 계획에 따르면 이 고속도로가 그뤼네반트를 12번이나 끊고 지나가게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나부와 분트 활동가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끝에 그뤼네반트 옆으로 비켜가도록 막을 수 있었다. “내가 환경청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나부 활동가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인식 높여
분트는 2005년부터 그뤼네반트에 자전거 여행길 등을 내서 관광 상품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과연 그뤼네반트를 보러 관광객이 많이 찾아올까? 이에 대해 나르데르는 “자연체험 프로그램은 돈벌이가 아니라 생태적 가치와 환경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려는 데 목적이 있다”며 “이런 체험 프로그램 연구자들이 그뤼네반트 거점 지역마다 있다”고 말했다.
나르데르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생태보호 프로젝트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환경전문가들의 힘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각 지역에서 어떤 종류의 동식물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조사자료를 갖고 정치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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