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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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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사람] 이 험한 곳까지 오셨네, 땅 투기

등록 2007-09-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정상회담 이후 볼 수도 없는 땅 사려는 사람들…한풀 꺾였으나 연천과 철원을 지나 동진 중

▣ 해마루촌(파주)=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김동현(51) 이장은 “부동산 업자들이 걸어오는 전화 때문에 짜증이 나 못 살겠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 파주시 대성동 마을은 100여 개의 ‘민통선 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쪽에 자리해 있다. 마을은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어서, 들어가보려면 유엔사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왜는 왜겠습니까. 거래할 만한 비무장지대 땅을 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마을 출입을 가능하게 해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는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오는 탓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땅을 둘러싼 세 개의 소동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휴전선과 접한 파주·양구·철원 일대에 땅 투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국내 신문과 방송이 한두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은 물론이고, 2006년 1월16일에는 미국의 까지 나서 “부동산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는 제목으로 이 일대 개발 열풍을 소개했다.

비무장지대 땅은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너머에 있는 철조망 저편의 땅이다. 당연히 들어갈 수 없고, 많은 경우 먼 발치에서도 바라볼 수 없다. 거래는 지적도를 보고 이뤄진다. 비무장지대 땅은 통일이 돼도 정부가 공익적 목적에 맞게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잘못 손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충고가 잇따른다. 그런데도 투기 열풍은 가라앉지 않는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지역의 땅을 둘러싼 잡음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땅을 둘러싼 잡음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철원 대마리처럼 정부 정책에 따라 민통선 북방 지역에 집단 이주해 땅을 일군 사람들과 땅의 원소유자 사이의 다툼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법정 다툼으로 이주민들은 땅을 잃었다.

두 번째 소동은 1983년에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12월 ‘수복지역 내 소유자 미복구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라는 긴 이름의 한시 특별법을 내놓는다. 법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수복지역’이란 애초 북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전쟁으로 남한의 땅이 된 38선 이북의 철원·양구·고성 등과 파주군 장단면·군내면·진서면 및 진동면 지역을 뜻한다. 이 수복지역 가운데 소유관계를 보여주는 등기 서류가 사라진 땅의 소유관계를 교통정리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조항들이 섞여 있다. 어떤 땅이 자신, 혹은 자신의 조상 땅이었다고 주장하려면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관할 관청에 제출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음 부분이다. 그런 서류가 없는 사람은 이를 ‘말’로 증언해줄 수 있는 증인 3명을 내세우게 했다. 땅의 주인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지역 공무원과 유지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당연히 휴전선 155마일 일대에 ‘짜고 치는 고스톱’들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1993년 검찰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송현·검장·사천·저진리 일대에 소유권이 불분명한 민통선 땅 159만여 평을 착복한 혐의로 명파리에 살던 김영기(당시 69살)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이동섭(당시 79살)씨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한다. 이들은 가짜 보증인 3명을 동원해 땅을 자기 명의로 돌려놨는데, 그 면적은 현내면 5개 마을 전체 임야의 43.8%에 해당할 정도였다.

특별법으로 민통선 지역의 소유관계는 어느 정도 정리됐다. 땅 투기 열풍은 세 번째 소동이다. 임진강 건너 민통선을 형성하는 전진교를 지나 10분 정도 차를 달리면 도착하는 파주시 진동면 해마루촌에서 만난 오아무개(65)씨는 “몇 해 전 가족 중 하나가 물려받은 철조망 바깥의 땅을 1억3천만원에 팔아먹었다”고 말했다. “참 신기하더라고. 어떻게 들어갈 수도 없는 그 땅을 살 생각을 했을까.” 부동산꾼들은 국가기록원에서 일제시대 토지사정 자료를 뒤져 상속자를 수소문하거나, 마을을 돌아다니며 땅 주인들을 접촉한다.

법망을 피하는 신종 수법 등장

민통선과 비무장지대 땅 투기 열풍은 2005년을 정점으로 어느 정도 사그라지는 분위기다. 1995년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던 토지거래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늘기 시작해 2005년에 정점을 찍었다. 필지를 기준으로 본 2006년의 토지 거래 건수는 2005년에 견줘 20~30%씩 줄었다. (그래프 참조)

게다가 2001년 11월20일 파주시가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파주 일대에서는 투기 목적의 땅 매매는 등기가 이전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계약을 맺고 공증을 받거나, 빚을 진 것처럼 속여 근저당을 설정하는 등의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투기 열풍은 연천과 철원을 지나 동진하는 중이다. 철원에서 평당 몇천원에 거래되는 땅들이 이제는 싸면 평당 4만~5만원, 비싸면 10만원대까지 올랐다. 지난해 철원에서 거래된 땅 면적은 1835만 평이다. 경원선 근처 땅은 평당 20만~30만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



아찔한 민통선 관통도로

사전 환경성 검토 혹은 환경영향 평가가 이뤄져야

▣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비무장지대가 의미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동서의 단절 없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그 연속성을 해칠 수 있는 도로 건설이다. 비무장지대를 관통해 건설된 도로나 철로는 경의선, 1번 국도 판문점 구간도로, 동해선 등 3개 노선이다. 판문점으로 연결된 1번 국도는 예로부터 존재했고, 경의선과 동해선은 2000년 정상회담의 결과로 연결됐다.
도로 연결로 생태계의 훼손은 불가피했다. 현재 추가로 연결이 검토되고 있는 도로는 4개 노선이고, 연결 가능한 노선이 다시 2개 추가된다. 그 밖에 민통선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16개다(표 참조).
민통선 관통도로는 모두 2차선의 아스콘 포장도로다. 왕복 교행이 가능한 규모의 노폭을 지녔다. 민통선 마을이나 농지로의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개설된 도로도 있지만,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건설된 도로도 많다. 파주 장단 농어촌도로와 화천 주파령 관통도로가 대표적이다. 소통에 큰 불편이 없는 지역도 ‘이왕 하는 거 2차선으로 건설하자’는 식의 경우도 있다.
민통선 연결도로는 정상적으로는 환경영향 평가나 사전환경성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민통선 북방 지역이라는 명목으로 일체의 환경평가를 피해갔다. 앞으로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면 곤란하다. 특히 산지의 포장도로는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
도로는 기본적으로 ‘팽창’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까지 뚫었으면 됐다’가 아니라, ‘이왕 여기까지 뚫은 거 앞으로 저기까지 뚫자’가 기본 속성이다. 그 때문에 민통선 관통도로들은 앞으로 비무장지대의 생태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이다. 민통선 검문소부터 비무장지대 철책선까지 바짝 붙은 도로에 대해서도 사전 환경성 검토 혹은 환경영향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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