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전망대 둘러보는 안보관광…부르기 좋은 평화관광이 더 낫지 않나
▣ 철원역터(철원)·태풍전망대(연천)·을지전망대(양구)=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비무장지대(DMZ)를 구성하는 것은 서쪽 강화에서 시작해 파주·김포·연천·철원·화천·양구·인제를 지나 저만치 동해 고성을 잇는 9개 시·군이다. 비무장지대를 껴안은 이들 9개 시·군에서는 말 그 자체로 해외 토픽감인 ‘안보관광’이란 신조어를 앞세워 일상에 지친 도시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고려
안보관광이 시작된 것은 국민의 안보의식을 그야말로 ‘고취’시키겠다는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DMZ 일대를 발로 뛰어 기사를 써내려간 함광복 논설실장은 2005년 펴낸 에서 “1980년대 말 6·25전쟁 이후 방치된 전적지를 발굴·보존할 필요성이 제기돼 백마고지 전적기념관, 철의 삼각 전망대, 월정역 정비사업 등이 시작됐다”고 적었다. 각종 군사 규제에 발목이 잡힌 지역 사람들도 돈벌이가 되는 관광 사업을 띄우기 위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했다.
안보관광의 시작점은 누가 뭐래도 철원이다. 철원군이 1992년 펴낸 를 보면, 1941년 당시 지금의 철원군을 구성하는 철원·김화·금성·평강 4개군의 인구는 24만5681명(같은 해 우리나라 최대 도시인 경성의 인구는 97만4933명이었다)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 주변에는 궁예가 천년 도읍을 꿈꿨을 만큼 넓고 기름진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었고, 서울에서 원산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경원선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도시를 둘로 갈랐고, 화려했던 철원의 명성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2007년 현재, 군의 인구는 5만1천여 명이다.
서울에서 의정부·동두천을 지나 북진하던 국도 3호선을 버리고 463번 지방도를 갈아타면 얼마 가지 못해 육군 6사단이 관리하는 제5통제소(관전리통제소) 앞에서 발길이 멈춰진다. 이 초소를 지나야 철원의 옛 영화가 펼쳐졌던 옛 철원 시가지로 들어설 수 있다. 통제소 옆으로는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옛 철원군 노동당사가 있다. 3층 높이였다던 노동당사는 폐허로 버려졌는데, 군의 관광 홈페이지에는 건물에 대해 “공산 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김화·평강·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 고문, 학살 등의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고 적혀 있다. 뜬금없어 보이는 냉전의 유산들을 숨은 그림찾기 하는 것은 안보관광의 또 다른 재미다.
초소를 지나면 길 양옆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도로변에는 철원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제사공장 터 등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들이 낯선 이를 맞는다. 철원 안보관광의 시작점은 3번 국도, 463번 지방도가 비무장지대와 만나 끊기는 지점에 만들어진 ‘철의 삼각지대 전망대’와 그 앞에 조성된 경원선 월정리역사다.
폐허로 버려진 철원역사 터
그러나 눈 밝은 이들은 월정리역보다 폐허로 버려진 철원역사 터를 더 사랑한다. 철원역은 한때 80여 명의 직원이 근무했던 중부 내륙의 큰 역이자, 근동 20만여 명의 인구를 거느렸던 철원 옛 시가지의 중심이었다. 서울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 열차가 잠시 쉬었고, 내금강에서 관광객을 실어나르던 금강산 전기철도도 이곳에서 출발했다. 이제 역사에 남은 것은 시멘트 플랫폼과 녹슨 철로와 나중에 조성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낡은 이정표뿐이다. 역사 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의 너른 들은 황금빛 물결을 뽐내고 있었는데, 불과 60년 전에 이곳이 중부 내륙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믿긴 힘들었다. 역사 터는 제5통제소를 지나 옛 철원 시가지로 꺾어지는 즈음에 자리한 지뢰밭 뒤에 있다. 안내자가 없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역사 터를 지나쳐 철의 삼각지대 전망대에 서면, 저만치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옛 태봉국의 수도였던 궁예도성이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의 설명이 없으면 어디가 성터인지 확인할 수 없다.
안보관광의 거점은 ‘철의 삼각지 전망대’처럼 비무장지대를 따라 점점이 늘어선 9개의 전망대다. 가장 서쪽의 전망대는 조만식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선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고, 가장 동쪽의 전망대는 저만치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고성의 통일전망대다(표 참조).
각 전망대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경기 연천군은 군내 안보 관광지 5개를 꼽아 ‘안보5경’이라는 작명을 했다. 이름도 거창한 안보5경의 주인공들은 육군 5사단 열쇠부대가 관할하는 ‘열쇠전망대’, 경원선 철도중단점이 자리한 ‘신탄리역’, 육군 28사단의 ‘태풍전망대’, 간첩 김신조가 침투한 ‘1·21 무장공비 침투로’, ‘제1땅굴’ 등이다. 열쇠전망대에서는 비무장지대의 너른 들판과 산세를 확인할 수 있고, 태풍전망대에서는 파행서진하는 임진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임진강과 베티고지 전적지
임진강은 황해도 내륙 산악을 구불구불 관통해 흐르다가 경기도 전망대 앞인 경기도 연천군 왕진면 고잔하리의 배터거리에서 남한 땅으로 넘어온다. 전망대에서는 흑석촌·중사천·고잔천 따위의 실개천들이 임진강과 몸을 섞는 모습에서부터, 어린 시절 반공 독후감의 단골 주제였던 김만술 상사의 베티고지 전적지(이렇게 작은 야산이었단 말인가!)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태풍전망대에는 김훈이 둘째 권에서 꼬집고 넘어간 북한 여성의 브래지어 2개를 볼 수 있는데, 브래지어를 부르는 안내소의 공식 명칭은 ‘노획품’이다. 육군 15사단의 승리전망대에서는 옛 금강산 철길과 이제는 흔적조차 희미한 43번 국도의 모습이 아스라하고, 22사단 을지전망대에 서면 금강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대부분의 전망대는 관람 시간에 맞춰 신분증을 제시하면 금방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우악스런 느낌의 ‘안보관광’보다는 부르기 좋고 들어서 예쁜 ‘평화관광’이라는 이름이 더 좋지 않나 싶다.
북녘 땅을 관찰할 수 있는 주요 전망대
오두산통일전망대
통일부가 오두산 정상에 만들었다. 해마다 추석 망향제가 열린다. 임진강 하류 너머 황해도 땅이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전망대다.
자유로를 타고 가다 성동리IC에서 빠져나간다. 오두산통일전망대(031-945-3171)
도라산전망대
임진강 자유의 다리 너머 도라산역 앞에 있다. 개성의 송악산, 김일성 동상, 북의 선전촌인 기성동, 개성시 변두리, 개성공단 등이 보인다. 근처에 제3땅굴이 있다.
국도 1호선을 타고 임진각으로 가면 파주시청이 운영하는 셔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파주시청 문화관광과(031-940-8347)
태풍전망대
자연스럽게 굽이치는 임진강 중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망대 앞에서 임진강은 월남한다. 앞의 야트막한 능선이 한국전쟁 격전지로 유명한 베티고지와 노리고지다.
3번 국도를 따라 전곡을 지나 백학 방면으로 322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초소에서 신분을 확인한 뒤 들어간다. 연천군청 문화관광과(031-839-2789)
열쇠전망대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너른 들판을 관찰할 수 있다. 북한의 생활용품과 군사장비가 전시돼 있다.
국도 3호선과 맞닿은 경원선 대광리역에서 마전리 초소를 지나 들어간다. 연천군청 문화관광과(031-839-2789)
철의 삼각전망대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를 볼 수 있다. 월정리역 앞에 있으며, 전망대 앞으로 궁예의 도성터가 보인다. 근처에 제2땅굴도 있다. 고석정에 있는 한탄강관광사업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탄강 관광사업소(033-450-5558)
승리전망대
휴전선 155마일의 정중앙에 자리해 있다. 금강산철도, 43번 국도 결절점,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이 보인다.
43번 국도를 타고 김화까지 가 마현리 입구를 찾는다. 철원군청에서 운영하는 승리전망대 매표소가 있다. 승리전망대 매표소(033-450-5900)
칠성전망대
중동부 전선 백암산 기슭에 있다. 북한 금성천 변이 조망된다. 다른 전망대와 달리 자유 관광이 안 되고, 7사단 칠성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서는 관람 일주일 전에 화천군청 민군협력계를 통해 낸다. 화천군청 민군협력계(033-440-2307)
을지전망대
전망대 앞으로 스탈린 고지가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 비로봉·차일봉·월출봉 등이 바라다 보인다. 해발 1049m로 양구 해안면 북쪽 능선 위에 있다. 근처에 제4땅굴이 있다.
양구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453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양구통일관(033-480-2674)
통일전망대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해발 70m 고지에 있다. 20km쯤 전방에 해금강의 대부분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지닌 감호를 볼 수 있다.7번 국도를 타고 명호리까지 가면 된다. 통일전망대(033-682-0088)
*칠성전망대를 빼고, 현장에서 신분증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즉시 출입이 가능하다. 철의 삼각전망대는 하루에 네 번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어 수시 출입은 불가능하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재명 불리한 녹취만 ‘잘라붙인’ 검찰…전문 맥락 확인한 법원 “무죄”
홍준표 “판사에 목맨 검사 정치 그만…트럼프 보면 답 나와”
[단독] ‘김건희 인맥’ 4명 문화계 기관장에…문체부 1차관 자리도 차지
‘정우성 득남’ 소식이 쏘아올린 작은 공
단독사고 난 승용차 안에서, 흉기 찔린 부부 발견
일본 적반하장…‘한국이 오보 하나로 사도 추도식 불참’ 프레임
머스크 “아직 F-35 만드는 멍청이들”…국방예산 삭감 정조준
유전 발견된 수리남, 국민 1인당 750달러씩 나눠주기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임기만료 전역...임성근 무보직 전역 수순
[단독] ‘김건희 황제관람’ 논란 정용석·‘갑질’ 의혹 김성헌 의아한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