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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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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 달리니 닌자님이 도우시네

등록 2007-08-10 00:00 수정 2020-05-03 04:25

나름 ‘편집’ 기자가 뛰어든 세상, ‘한국어 위키백과’ 편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첫 경험은 무난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계정을 만든 것은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계정을 만들고 ‘편집’을 눌렀다. 다른 사람들이 한줄 한줄 쌓은 텍스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진짜로 되네’ 싶었지만 이 의미를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다른 걸 건드릴세라 조심하며 적어넣었다. 돌아오니 나의 참가 신청만 삐죽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다시 ‘편집’을 누르고 위에 쓴 사람의 형식을 따라 베꼈다. ‘모르면 따라하라.’ 여기서도 통했다. 또 있다. ‘모르면 물어보라.’

‘환영합니다’ 속 링크를 눌러보라

누구나 한 번은 ‘초보’다. 위키백과의 수많은 ‘선수’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세심하다. 로그인해서 사용자 ID 옆에 나오는 메뉴들을 주목해보라. ‘자기 관리’ 메뉴들이다. ‘내 사용자 토론’을 누르면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 아래 여러 사항이 나열돼 있다. 이 문서 내에 있는 ‘링크’들을 하나씩 눌러보면서 한번 죽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실은 대충 건너뛰었다). 길라잡이를 들어가 순서대로 편집, 서식, 내부 고리(링크), 바깥 고리를 훑어보라. 모래상자라는 데로 입장해서 연습해봐도 좋다. 모래상자는 위키백과라는 ‘모래밭’에서 뛰어놀기 전에 깡충깡충 뛰어보는 곳이다. 모래밭이라, 이 생각난다. 위키란, 모래밭에서 타이어 매고 달리는 것만큼 어려운 과정이란 것일까.

여러 문서들을 찾아가면서 서핑하다 보면 ‘동일 체계’가 눈에 띈다. 어떤 문서든 ‘토론’ ‘편집’ ‘역사’ ‘이동’ ‘주시’가 있다. ‘토론’은 문서 내용에 대한 이견이 있거나 그 글이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판단할 때 적는다. 관리자가 문서에다 ‘이 문서는 토론에 부쳐졌습니다’라는 글을 붙이기도 한다. ‘역사’는 문서 편집자들의 기여를 한눈에 정리한 것이다. 죽 늘어지는 역사 중 몇 개 항목을 집어서 바뀐 내용을 비교할 수 있다. ‘이동’과 ‘주시’는 로그인한 사용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권한’이다. ‘이동’은 문서를 넘겨주기 한다든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주시’는 그 문서를 자기 관리 문서의 ‘주시문서 목록’에 추가하는 것이다.

옆에서 임지선 기자는 ‘한겨레21’ 문서를 새로 만들기 하고 있었다. ‘한겨레21’이라는 문서가 등록돼 있지 않더란다. 나는 혹시나 하며 ‘씨네21’을 쳐보았다. 문서는 존재했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미비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분사해 나간 사실이 빠져 있고 주요 설명이 ‘씨네21’ 설명이라기보다는 ‘영화잡지 시장’ 쪽에 가까웠다. “한겨레가 발행하는 만큼 주요 필진들도 진보 진영에서 활동하고, 그쪽의 시각이 은연중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문장도 애매했다. 창간 날짜를 적어넣고 ‘세계 최초의 영화 전문 주간지’라는 의미도 적어넣었다. ‘진보’ 운운 글은 망설이다가 그대로 두었다. 편집을 마치고 나왔다. 앗! 말이 참 어긋지네, 이건 또 왜 붙어 있지? 다시 편집에 들어가서 단순한 것을 고치기를 몇 번, ‘잔글’(고칠 때는 어떤 내용을 고쳤는지 간단히 요약하는데, 잔글은 아주 적은 내용을 고칠 때 표시한다)도 표시하기 미안한 ‘잔잔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텍스트를 쓸 때는 옆에 길라잡이 창을 이웃해놓고 참조해서 보면 좋다. 내부 링크는 [] 안에 넣는다든지, 진하게 쓰고 싶은 말은 작은 따옴표를 세 개 쓴다든지 하는 것은 금방 익숙해지는데, 바깥 링크 다는 것은 헷갈렸다. 옆을 보니 임지선 기자는 두 번째 도전 중이다. ‘달리기’ 문서를 만들고 있다.

‘달리기’가 빠진 이유

‘새 문서’까지 만들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미야베 미유키’를 찾으니 없어서 도전하기로 했다. 수상 목록과 출간 작품을 만드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미야베 미유키’는 3만9625번째 새글로 등록됐다. 올리고 나서 불과 2~3초 사이 ‘외부 편집’이 들어왔다. “宮部みゆき. 1960년 도쿄생. 일본 소설가”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도쿄, 1960~)는 일본의 소설가이다”로 고쳐져 있었다. ‘씨네21’로 돌아오니, 내가 아까 넣은 창간일을 비롯해 ‘한눈에 보는 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 밤중에도 관리자가 ‘닌자’처럼 중생을 보호하고 계시는구나. 자극받아 ‘역대 편집장’이라는 제목을 추가하고 글을 적었다. 몇 년부터 몇 월까지를 적는데 의외로 정보가 없었다(공식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편집장이 독자에게’에서 남긴 작별 인사와 ‘인사’ 기록 등을 추적해 완성했다. 어쨌든 ‘공들여’ 쓴 위키백과만의 정보가 됐다는 것에, 가슴에 손을 얹고 뿌듯했다. 그리고 뿌듯한 참에 ‘진보’ 운운한 글을 빼고 ‘영화잡지 시장’ 주제를 독립해 정의에 속했던 문구를 옮겨넣었다. 미야베 미유키로 다시 돌아오니 ‘닌자’님께서 일일이 링크(심지어 ‘신용불량자’까지)를 달아놓았다.

편집을 몇 번 하니 ‘미리 보기’에 길들여진다. ‘띄어쓰기’하느라고 여러 번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역사 기록이 사소한 것들로 채워진 것에 얼굴이 빨개지니까. 위키백과 규칙이 궁금할 때는 검색창에 ‘위키백과’를 앞에 붙이고는 검색한다. ‘서식’이 보고 싶을 때는 ‘위키백과: 서식’ 식으로 검색하면 된다.

며칠 뒤 사용자 토론에 ‘닌자’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목록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고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은 병기하지 않고 ‘과학소설’로만 쓰면 된다… 등등” 부끄럽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역시 모래밭 달리기는 어려웠다. 임지선 기자의 ‘달리기’는 하루 뒤 관리자에 의해 ‘삭제’됐다. “한 사람만 썼다는 것과 글이 너무 짧다”는 게 이유였다. 임지선은 울듯이 말했다. “정말 슬픈 건 이제는 달리기 문서를 등록할 수 없다는 거예요.” ‘달리기’ 문서에는 “현재 편집하는 문서는 과거에 삭제된 적이 있습니다. 이 문서를 계속 편집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생각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관리자에게 ‘삭제’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이메일로 물었다. 그는 ‘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링크로 보내주었다. ‘위키백과는 ○○○가 아닙니다’ 문서였다. 위키백과는, 사전적 의미의 인쇄된 백과사전, 잡학사전, 낱말사전, 대화방, 광고를 하는 곳, 사적인 의견을 발표하는 곳, 책의 내용 전체를 수록하는 곳, 모든 인물을 정리하는 곳이 아니었다. 위키백과를 오해한 것 같다. 그는 ‘낱말사전이 아니었다’. 관리자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기준 미달의 글이 올라와도 꼼꼼히 백과사전적인 설명으로 채워놓는 것이지만, 그런 글이 하루에 수십 개씩 올라오는 것에 비해 그런 일을 자발적으로 할 사람은 아직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손을 대는 사람 없이 몇 년이고 방치되는 문서가 아직도 많기 때문에 차라리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용자가 많이 있습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외인구단 라커 빼기 전에

위키백과의 놀라운 점은 편집기자와 취재기자 수업을 통째로 받는다는 것이다. 위키백과의 ‘중립적 시각’ 글쓰기는 거의 기사 쓰기다. 자기 의견을 쓰지 않고, 철저하게 인용을 밝히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편집 훈련은 초짜 ‘편집기자’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일을 하긴 했는데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 ‘무위자연의 고통’을 느끼던 시절…. 어쨌든 닌자님 같은 선배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고수가 말하는 ‘초짜 특수 훈련’ 기간은 한 달. 이것을 견디다 못해 ‘외인구단’ 라커에서 체육복 빼는 일이 잦다고 한다. 나는 잘 견딜 것 같다. 좀 재밌다. 운동화에 가득 든 모래를 빼면서 생각한다. 미국에 있는 김수현하고 정의구현사전 위키나 한번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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