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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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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피해자인지 입증 못하는 소송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미 법원, 이명박 쪽이 낸 소송에 계속 소장 변경 명령…김경준 쪽은 이명박을 ‘제3의 피고’로 요청

▣ 특별취재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때 이런 말이 돌았다. “이명박이 김경준 때문에 미 LA(로스앤젤레스)에 못 가고 있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BBK 사건’의 피해자라고 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LA이든, 지구상 어느 곳이든 못 갈 이유는 없다. 하지만 2005년 5월20일 ‘변수’가 생겼다. 김경준 전 옵셔널벤처스코리아 대표(LKe뱅크 전 공동대표·전 BBK 대표)가 미국 연방지방법원 재판부에 이 전 시장을 ‘제3의 피고’로 요청했다. 제3의 피고란 소송 당사자가 아닌 인물을 소송 중간에 새로운 피고로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애초 2004년 6월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후신인 옵셔널캐피탈은 김경준씨 등을 상대로 낸 38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나도 피해자’라는 정치적 제스처?

그런데 김경준씨 쪽에서 이듬해 5월20일 “이명박씨가 의사결정권자로서 문제 발생시 개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한 약속을 깼다”며 ‘사기·충실의무 위반·면책 & 손해배상·구제신청’ 등 4가지 이유로 이 전 시장을 소송의 한 당사자로 재판부에 요청했다. 만약 이 전 시장이 LA 땅을 밟았을 때 법원 출두 명령서(Summon)를 전달하게 되면, 재판 관할권이 생겨 이 전 시장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법적 논란은 남아 있다.

미 연방지방법원은 미 검찰을 거쳐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 전 시장의 법정 증언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 검찰과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경준씨 쪽은 옵셔널캐피탈에서 낸 소송에 대해 법원에 약식재판(Summary Judgement)를 제기해놓은 상태다. 약식재판 신청에 대한 청문회(hearing)는 오는 7월30일 예정돼 있다. 옵셔널캐피탈이 낸 소송을 비롯해 김경준씨를 상대로 또는 김씨가 낸 5건의 민·형사상 소송에서 이 전 시장은 자유롭지 못하다.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한 다리 건너 묘하게 얽혀 있다. 김씨의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서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전 시장이 2004년 2월 김경준씨를 상대로 김백준(LKe뱅크 이사·전 BBK 리스크매니저)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소송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소송은 몇 가지 점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피한 지 3년이나 지난 뒤, 미국에 가서 소송을 낸다는 점이다. 소송 진행은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전 시장 쪽은 3년 새 모두 8차례에 걸쳐 소장을 고쳐 냈다. 본격적인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다. 최초 이 전 시장은 김경준씨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며 소를 제기했지만, 정작 소장은 김경준 쪽에 송달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소장을 내고, 이후 법원으로부터 최근까지 6번의 ‘소장 변경’을 명령받았다. 법원은 7월 말 또 한 차례 소장 변경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말하긴 곤란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이 전 시장이 피해자라는 점을 재판부에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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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을 통해 얻은 지난 4월12일치 재판부의 결정문을 보자. 앞서 재판부는 김경준씨가 LKe뱅크의 자본금을 빼내가는 등 35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명박 전 시장 쪽 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된 소장 변경의 과정 속에서, 이 전 시장 쪽이 “김경준씨가 나라 밖을 넘나들며 한 주식의 거래 및 결제가 사기다. 조직범죄규제법(RICO)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불명확하고 불충분한 주장이라며 다시 소장 변경 명령을 내렸다. 소장 변경이 되풀이되면서 소송 액수도 35억원에서 180억원대로 달라진다. 법원은 잇따른 소장 변경 명령을 내리면서 이명박 전 시장 쪽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일관되게 밝혀왔다. 이를 두고 한국에 있는 한국계 미국 변호사는 “심한 경우 변호사가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거 같다. 또 이 전 시장이 ‘나도 피해자’라는 정치적 제스처로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물론 재판 절차가 까다롭고, 김경준씨 쪽에서 법률적 대응을 잘해나가면서 소송이 지연되고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경준 재산 압류 소송 기각

제일 먼저 시작된 다스(DAS·옛 대부기공)가 김경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03년 이명박 전 시장의 친형인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는 BBK 투자금을 반환해달라며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150억원의 소송을 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재판은 발도 못 뗐다. 거기다가 김경준씨는 다스를 상대로 맞소송을 냈다. 김씨는 미 법원에서 “BBK의 통장 기록엔 다스의 돈이 실제 BBK에 투자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스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스가 ‘유해증거 배제신청’을 한 목록을 보면 흥미롭다. 목록은 ① 이명박이 실질적으로 BBK를 소유하고 운용했다는 증거를 김경준 쪽에서 제출하려고 하는데 이것의 증거 배제 ② 김경준 쪽의 “다스가 이명박의 회사다”라는 증언의 증거 배제 ③ 2000년 이명박과 MBC 과의 인터뷰 증거 배제 ④ 이명박의 와의 2000년 10월31일치 인터뷰 기사 증거 배제 ⑤ 이명박의 선거 부정 사건 유죄 판결이나 좋지 않은 평판의 증거 배제 등이다. 이명박 전 시장과 BBK의 관련성, 이 전 시장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입증하려는 김경준 쪽의 증거를 배제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배제하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는 2005년 5월 미 연방지방법원에 김경준씨의 재산 압류 소송을 제기하지만, 법원은 2007년 3월 증거 능력의 불충분 등을 이유로 소를 기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검찰의 증인(BBK 사건 관련자) 진술서와 조사서의 증거 능력이 일부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 검사 존 리가 2006년 세 차례나 방한한 것도 미국 법원이 한국 검찰 등의 조사에 문제점이 있다는 김경준씨 쪽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미 법원은 사건 관련자들이 한국 검찰에서 증언을 하는 데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존 리는 법원의 허가 아래 이명박과 김경준 양쪽 소송 당사자들의 변호인과 법원 속기사 등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그의 조사는 관련 사건의 재판을 맡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됐다. 미국 검찰이 이명박 캠프에서 일하는 이진영(전 LKe뱅크 회장 비서·옵셔널벤처스코리아 대리)씨 등 BBK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전 시장의 BBK 관련성 여부, 사건의 공동 책임 여부 등에 대한 김경준씨 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증언과 단서들도 나왔다.

김경준 입국, 이명박에겐 ‘비극’일 수도

이명박 전 시장과 옵셔널캐피탈이 김경준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의외로 빨리 끝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경준씨가 국내로 들어와 직접 공개 법정에 서서 입을 열어야 이 전 시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의혹들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5월 미 연방수사국에 체포되기 석 달 전 한국 정부는 미국에 범죄인(김경준) 인도 요청을 했다. 현재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 김경준씨의 인신보호 요청은 2005년 10월에 이어 지난 1월 항소마저 기각됐다. 즉,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그가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은 아주 높다. 다만 이 판결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계 미국 변호사는 “미 법원이 김경준의 인신보호 요청을 기각하는 것은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 게 더 맞다는 것이지, 김경준의 혐의를 확정해주는 것으로 봐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을 둘러싼 의혹이 해소되려면 김경준씨의 국내 송환이 시급하다. 진실이 누구 편인지 상관없이 김경준씨의 입국은 이 전 시장에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김경준씨의 입은 이 전 시장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대선이란 정치 전선 속에서 더욱 빠르게 확산시킬 게 뻔하다. 이명박에겐 김경준이 먼 곳에 있는 게 낫다.



자료 출처는 인터넷

미국은 진행 중인 소송 기록을 인터넷 통해 공개

‘어떻게 그런 기록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BBK 사건’ 연루 의혹을 국회 대정부질의와 상임위 회의에서 줄기차게 제기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에 맞서 자료 출처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쪽은 김경준씨의 재판이 미국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깜빡한 게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진행 중인 소송 기록을 당사자나 사건 번호를 알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 절차를 친절하게 설명(아래)해놨다. 은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이 전 시장의 재판 기록이 그의 자질과 도덕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판단에서 그 방법을 전한다.
미국 지방법원 소송 기록 접근: www.lasuperiorcourt.org → LAeCourt ONLINE 하단의 메뉴 중에서 Civil Case Documents나 Civil Party Index 더블 클릭 → Fee Schedule 하단의 Continue 버튼 클릭 → Login 화면이 나오면 회원 가입 및 Login → Confirm User Information 등장 → Account 정보가 일치하면 Continue 버튼 클릭 → Case 번호로 소송 기록 검색 또는 소송 당사자 이름을 알면 Civil Party Index를 더블 클릭 → 소송 기록 지정 및 다운로드.
미국 연방법원 소송 기록 접근: http://pacer.psc.uscourts.gov → register for PACER → ONLINE REGISTERATION FORM 클릭 → 개인 및 카드 정보 입력 → LOGIN → PACER SERVICE CENTER에서 SEARCH 기능 이용한 검색 및 소송 당사자 이름으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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