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이미 공개한 문서를 외교부가 “국가간 합의’라며 거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하는 행동이나 내뱉는 말이 상황에 맞지 않고 매우 엉뚱할 때 ‘생뚱맞다’고들 한다. 정부의 한 부서가 이미 공개한 문서를 두고 다른 부서에서 ‘심각한 외교 문제’를 들먹이며 공개할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경우도 그렇다.
지난 1월3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최재천 의원(무소속)은 외교통상부에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와 관련한 국내외의 법률·명령·조약 사항을 공개해줄 것을 외교통상부에 요구했다. 여기에는 반환되는 미군기지 환경 문제와 관련한 ‘환경정보 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A’(이하 부속서A)란 문서도 포함됐다. 외교부는 2월5일 제출한 답변서에서 국내법 관련 부분은 공개했지만, ‘부속서A’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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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가 잘 돼서 공개했다고?
외교부가 ‘비공개’ 판단을 내린 근거는 간단했다. ‘부속서A’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합의문서로, 합동위 운영절차에 따라 한-미 양쪽의 합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는 게다. 외교부는 특히 “이런 합의는 국가 간 합의로서 이를 위반할 경우 한-미 양국 간 심각한 외교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돼 문서를 제공해드릴 수 없는 사정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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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2월6일 최 의원실은 다시 질의서를 보냈다. 이번엔 외교부가 ‘부속서A’ 비공개의 근거로 삼은 소파 합동위 운영절차의 공개를 요구했다. 외교부는 “운영절차 역시 한-미 SOFA 합동위 문서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후 석 달이 넘도록 외교부와 최 의원실 사이에선 치열한 법리 공방이 불을 뿜었다. 그러던 지난 5월16일 외교부는 SOFA 합동위 운영절차를 ‘40년 만에 처음으로’ 전격 공개했다. 공개할 수 없다던 문서를 불쑥 내놓은 이유에 대해 외교부는 이렇게 밝혔다.
“(체결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공개정책을 적극 추진해온 바, 귀 의원실에서 요청해온 SOFA 합동위 운영절차는 미국 쪽과 긴밀히 협의해 양쪽 간 최근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A4용지 1장 분량이었지만, 번역본은 따로 없었다. 이 무렵 최 의원실은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된다. 외교부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온 ‘부속서A’가 이미 공개된 문서였다는 점이다. 최 의원실의 한상범 비서관은 “이미 지난해 4월 시민·사회단체의 정보공개 요청에 따라 환경부가 ‘부속서A’를 공개했다”며 “또 올 4월에는 국방부도 ‘한-미 환경오염 조사 및 치유절차 일부’란 이름으로 ‘부속서A’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는 6월13일에서야 ‘한-미 간 합의가 잘돼 부속서A 공개가 가능해졌다’고 통보해왔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생뚱맞은 정보 차단 시도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지난해 2월27일 춘천시민연대는 반환되는 미군기지 캠프 페이지의 환경오염 문제와 관련해 △환경오염 조사 담당기관 △조사 일시·항목·내용 △분석 결과 △비용 부담 문제를 포함한 향후 처리계획 등에 대해 환경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오염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캠프 페이지가 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반환될 경우, 자칫 춘천시에서 막대한 정화 비용을 떠맡을 수 있음을 우려한 행정감시 활동의 일환이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같은 해 3월10일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사유는 외교부 쪽과 비슷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쪽과 (환경오염 조사 결과를)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는 게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한 캠프 페이지 문서
그해 6월13일 춘천시민연대와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는 환경부를 상대로 정보 비공개 결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지난해 11월15일 법원은 “환경오염 조사 결과는 직접 외교·안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환경부에 오염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환경부는 즉시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6월13일 1심 재판과 똑같은 취지로 정보공개 결정을 내렸다. 유성철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이미 우리 쪽에 반환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마저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만큼 정부는 이제라도 이미 조사를 실시한 전국 38개 미군기지의 오염 결과를 전면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뚱맞은’ 정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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