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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한나라당 집권 저지보다 내부 혁신을

등록 2007-02-27 00:00 수정 2020-05-02 04:24

참여정부의 실패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이자 진보 진영 전체의 실패…진보 진영의 혁신 없이는 정권교체 이후의 고립화에도 대응할 수 없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① ‘유연한 진보’는 레토릭에 심취한 자기모순

진보란 일반적 의미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적 관점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는 자유주의개혁파라고 할 수는 있어도 진보적 입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수사적으로는 대미 관계에서의 자주, 성장과 분배의 조화 등을 얘기했지만, 실질적 정책의 측면에서는 대미 굴종, 2만달러 등의 성장론, 잔여적 사회복지 정책(지배적인 정책 기조는 시장경쟁 논리이고, 사회복지는 부차적인 정책에 불과) 등으로 철저히 신자유주의의 틀 내에 한정됐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유연한 진보’라고 칭하는 것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에서 보이듯이 레토릭에 심취한 자기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 정부(노태우 정부)에서 점차적으로 절차적 민주화의 진전을 이루어왔다. 문민적 부르주아 정부(영남 자유주의+수구 세력) → 소외된 수구파와 연대한 자유주의 정부(김대중 정부) →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자유주의개혁파 정부(노무현 정부)로 점차 변화해왔다. 노무현 정부에 민주화운동을 추진해왔던 학생운동권과 사회운동권의 일부가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의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이나 노동사회 운동에서 자유주의로 전향했기에 실질적 의미에서 진보 세력이 참여했다고 할 수 없다.

② 제도화에는 성공했으나 낡은 운동 방식을 고집

참여정부의 실패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이기도 하고, 진보 진영의 실패이기도 하다. 집권세력으로서 노 정권은 레토릭으로는 개혁을 외쳤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포로라는 한계를 노정했으며 국민적으로도 지지를 상실하는 등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 정권의 실패가 그 대안으로서 진보 진영의 부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진보 진영도 동반 추락하고 대신 수구 세력이 높은 국민적 지지를 얻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진보 진영 역시 실패를 드러낸 셈이다. 진보 세력은 장기적 대안으로 국민적 기대를 받았음에도(4·15 총선의 돌풍) 이를 정치적으로 현실화하는 데 실패했다. 아울러 집권당이나 다름없는 울산에서, 브라질의 노동자당이 지방 차원에서 시행한 참여예산제 등 대안적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무능과 다름없다. 사회운동으로서도 제도화에는 성공했으나(민주노총, 전교조 등) 신자유주의 등 변화된 상황에서 돌파를 하지 못하고 낡은 운동 방식을 고집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로 폭을 넓혀내지 못한 한계를 노정했다. 분파주의, 도덕성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현존하는 한국 사회 진보 세력의 실체는 민주노총과 전농 등 민중적 사회운동, 민주노동당 등 발본적이고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 세력이 주축을 이룬다.

③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대선에서 총단결해야

개헌에 대한 진보 진영의 인식과 관련해 평화(남북 대치를 화해와 평화로), 진보(부동산 공개념, 생태) 등의 가치가 포함되는 평화·진보적 헌법 개정(멀티 포인트 개헌)이 장기적 방향이 될 것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에 대해서 개입적 전략을 취할 것인가, 반대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엇갈리고 있으나 독자적 개입력이 취약하다는 측면에서 큰 차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보 진영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대선에서 총단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와 진보적 경제정책, 사회 양극화 해소, 진보적 일자리 창출 등의 대안을 가지고 사회운동에서의 전선 형성과 쟁점화가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진보 진영은 사회에 뿌리박고 지지 기반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적 대표체로서 민주노동당을 집권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진보 진영 전반의 혁신이 요구된다. 진보 진영이 제시할 한국 사회의 미래상은 개인의 자주성이 존중되면서도 사회적 공공성이 보장되는 복지사회의 모습이 될 것이다.

④ 수구는 전투성 강화하고, 진보는 분파 투쟁

이제 비판적 지지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진보 진영의 독자성과 세력화 없이는 자유주의개혁파와 의미 있는 연대나 연합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신의 독자적 기반이 없는 비판적 지지는 일방적 지지와 다름없고, 더 이상 진보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다만, 진보 진영의 독자성(독자 정치 세력화)에 기초한 연합의 경우 논리적으로야 가능하고 그 현실적 의미 여부를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여권 내에 이런 연합을 추진할 주체가 없으므로 의미가 없다. 박근혜·이명박 주도의 대선 정국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은 노무현 정부와 진보 진영의 실패와 무능에 기초한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수구 세력은 최근 두 차례의 대선 실패를 교훈 삼아 매스컴을 장악하고, 수구 세력의 사회운동화(뉴라이트)에도 성공했으며, 그 집요함과 전투성도 강화됐다. 이에 비해 진보 진영은 낡은 레퍼토리에 관례화되고 창의력 없고 내부 분파 투쟁에 매몰돼 있다. 겸허하게 이를 수용하고 진보 진영의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보다 중요한 것은 진보 진영의 혁신과 단결이다. 반한나라당만 외치는 자유주의개혁파인 범여권이 한나라당의 분열 등 외부 변수 없이는 자체적으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아직 유약한 진보 진영도 바로 집권의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현재와 같이 고식화되고 낡은 레퍼토리를 외치는 진보 진영의 혁신 없이는 집권 저지는커녕 한나라당 집권 이후의 탄압 고립화에도 대응할 수 없다.

올 대선 국면과 관련해 자유주의개혁파라는 범여권은 지리멸렬한 상태로 헤쳐모여 과정을 거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친화력을 기반으로 한 후보가 선출될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이 이를 지지할 수는 없고, 범여권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노무현 정권이 보여주듯이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더 진보적으로 견인하기 위해서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진영이 굳건히 서야 한다. 제3의 길은 진보 진영과 범여권이 단일화한다는 ‘미래구상’의 주장인데, 결국은 비판적 지지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⑤ 세계화 시대의 대안 찾기로 논쟁 진행돼야

현재의 진보 논쟁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원인, 한국 진보 진영의 과제와 대안 모색을 중심으로 전개돼왔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 원인 및 해결 방안과 관련한 주장의 강조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역할, 사회운동의 중요성,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강조 등 전체적으로 진보 진영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서 유의미한 지적들로 보인다. 변화된 정세에 올바른 전술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정체하고 후퇴한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서 써먹던 낡은 전술과 담론에 매몰된 운동권의 풍토, 공부하지 않는 진보, 단결하지 못하는 분파주의, 책임지지 않는 지도력 등이 위기를 중첩시키고 있다. 당면한 대선의 대응에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세계화 시대, 해체되는 분단 구조, 재벌 주도의 기업사회 등에 대한 대안 찾기, 사회운동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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