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 정책 제시·후보 검증 등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보수 교단…사학법 개정을 계기로 더욱 단단히 뭉친 그들, 한나라당을 미나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정치와 교회? 언뜻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만큼 둘의 관계가 멀어 보이지만 현실은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이제 교회가 거리에 나서는 것은 이를 마뜩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낯설지는 않다.
기독교계가 다 그렇진 않지만 보수적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오는 12월19일(대통령 선거)은 ‘심판의 날’이 될 것처럼 예언되고 있다. 심판은 신이 아닌 신의 이름을 빌린 이들의 손으로 투표장에서 이뤄질 것이다. 특정 후보와 정당이 돼야 한다고 대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누군 돼서는 안 된다는 설교와 길거리 복음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세속의 이념과 이해의 갈등으로 범벅이 된 정치적 이슈들을 반대하고 때론 찬성하며, 그것을 과시하고 관철하려 길거리 전경과도 기꺼이 맞선다.
“또 좌파 정권 나오면 나라 망할 상황”
“과거엔 기독교인들이 ‘좋은 사람 주십시오’라고 기도만 했지만, 내년(2007년) 대선에선 기독교계가 원하는 정책을 집대성해 후보들에게 제시하는 등 구체적으로 활동하겠다.” 지난 12월28일 제13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에 선출된 이용규(64·성남 성결교회) 목사는 그래도 점잖게 표현한 편이다. 한기총은 산하 교회 수만 3만5천 개이며 신도 수가 110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한국 교회의 최대 교단이다. 이 목사의 발언은 세속 정치에 호기심 많은 한 목사의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는 회장 후보 시절 와의 인터뷰에서 “한기총이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기독교적 기준에 따라 검증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애국관과 윤리·도덕적인 면, 사상과 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도 따져볼 것”이라며 대선을 앞둔 교계의 정치적 자세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한기총 회장 선거에서 총 152표 중 52표를 얻어 이용규 목사에 밀린 김동권(65·진주교회) 목사의 표현은 좀더 솔직하다. “친북 반미 경향의 현 정부는 바뀌어야 한다.” 집권해선 안 되는 ‘친북 반미 경향의 현 정부’는 ‘친북 좌파 정부’로 더 자주 불린다. 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한 묶음 한 세트다. 톤은 다르지만 이용규 회장도 같은 기조이고,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기독교사회책임·기독교뉴라이트·기독교개혁운동·기독교애국운동·한국기독교신앙실천운동협의회·한국교회지도자협의회·한미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서울기독교총연합회·한국교회언론회( 1월4일치 ‘보수 대해부’ 기사 중 기독교 보수 진영 표 참조) 등도 정도는 다르지만 보수 기독교계로서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
과거에도 교회의 대선 참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기독교 장로 모임인 나라사랑협의회가 있었다. 당시 한기총 등 교단 차원에선 대선 중립을 선언했지만, 회장 등이 김 후보를 지지하는 기도회 등에 참석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교계 전체의 뜻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이후에도 목사 개인의 선거철 정치 참여가 간간이 있었지만, 교계 120년사에서 지금처럼 몇몇 교단을 넘어 보수적 교계 거의 전체가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선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다. 기독교사회책임의 상임공동대표인 서경석 목사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교계) 진보 진영은 (현실정치) 참여 입장으로 독재와 싸웠고 보수 진영은 정치로부터 초연했다”며 “지금은 또다시 좌파와 손잡은 정권이 출현하면 나라가 망할 상황에서, 보수 진영이 나서 좌파 정권과 싸우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이해가 맞아떨어져
나라를 구하겠다며 정치에 나선 보수적 기독교계의 행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 측면에서 관찰이 필요하다. 애국심이 보수의 대표적 구호가 된 지는 오래됐다. 보수 기독교계의 구호이기도 했다. 애국심은 냉전시대 반공으로 상징됐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2000년대 들어 조금 탈색됐지만 보수 기독교계를 여전히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이들은 애국을 외치며 ‘한-미 FTA 추진 지지 국민대회’ ‘북핵 반대 및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 천만인 서명운동’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등 정치사회적으로 굵직한 현안에 거의 공동으로 거리에 나섰다. 보수 기독교계의 활발한 활동가 중 한 사람인 서경석 목사는 이를 좀더 구체화해 민주노총, 전교조, 북핵, 남북 정상회담, 사학법, 한-미 FTA, (탈북자 강제 송환하는) 중국, 친북 좌파, 사이비 선진화세력 등 9가지를 투쟁 대상으로 꼽았다. 대체로 보수 기독교계 전체의 투쟁 대상이기도 하다. 한-미 FTA를 빼면 현 정부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어, 반정부 투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정부는 곧 타도해야 할 친북 좌파 또는 그와 연계된 정부가 된다.
보수 기독교계를 정치적으로 더욱 단단히 뭉치게 하고 그 외연을 넓혀준 것은 사학법이 결정적이었다. 교계 전체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1978년 미국 민주당의 카터 정부가 사립학교에서 소득을 공제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하면서, 이듬해 팰웰과 웨이리치가 도덕적 다수파(The Moral Majority)를 결성해 복음주의자들이 행동에 나서고 선거철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과 흡사하다. 친북 좌파 정권의 재출연을 막겠다는 다소 막연한 구호를 외쳐온 보수적 교계는 사학법 논란이 불거지자 “교회가 동원할 수 있는 무기는 총칼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데모하고 몽둥이 들고 싸울 수도 없다. 오직 표다”(최희범 한기총 총무)라고 선거에 더욱 주목했다.
이들이 누굴 밀까? 서경석 목사는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할 뿐이다. 끝까지 특정 정치 세력이나 후보 지지를 공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사람들은 다 안다. 이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정책에서도 현실 정치세력인 한나라당과 보수 기독교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예를 들어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한나라당이 “종교계와 함께 싸워나가겠다”(김형오 원내대표)고 한 것은 보수 기독교계를 제일 크게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간 지대를 소외시킬 위험도
정치의 가장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는 이는 사실 한나라당의 외곽 지원단체로 전락한 듯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김진홍(66·두레교회) 목사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악의 없이 “이제 목사가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말할 만큼 김 목사는 현실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다. 보수 기독교계는 과거와 달리 네트워크를 구성해 더욱 조직적이고 노골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쉽게 충성도 높고 잘 조직된 대중과 돈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876만 명(2005년 통계청 기준)의 기독교 인구 가운데 교회의 정치 참여가 옳은지에 대한 입장을 떠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수적 교계의 호소에 동참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치 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는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움직일 때 다른 종교나 이해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볼지 의문”이라며 “한나라당으로서도 보수적 기독교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고 하면 중간지대를 소외시킬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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