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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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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대추리

등록 2006-12-21 00:00 수정 2020-05-03 04:24

들여다볼수록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용산기지 이전 비밀자료…국회 안에서의 실천은 역부족, 용산의 고통은 평택으로 이어져

▣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4년 원내 진출 성공은 나에게 더없는 선물이었다. 꿈도 꾸지 못했던 비밀자료 열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원리원칙만을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보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싶었다. 그 첫 시도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비밀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근대 100년의 상흔을 품고 있는 용산

고구마 줄기 엮이듯이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거대한 군사변혁이자 세계 지배전략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 미군 주둔으로 이어지는 근대 100년의 상흔을 품고 있는 용산, 그것보다 더 큰 불행이 평택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충격이었다.

첫 번째 충격은 주한미군 재배치가 북한 정밀타격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미 양국은 2003년 4월부터 2004년 8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진행된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용산기지 이전, 미 2사단 이전, 주한미군 지역 역할 변경을 포함한 새로운 한-미 동맹 구축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 미국은 1차 회의(2003년 4월)에서부터 자신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관철시키는 협상 전략을 택했다. 미국은 협상장에서 “C4I(전술지휘통제체계)와 함께 첨단무기가 도입되면 정밀타격(surgical strike)에 있어 가공할 능력을 가져다줄 것임. 발전된 전쟁수행 능력을 위해 기지 구조를 조정해야 함. 미 2사단의 현 위치는 전쟁 수행에 적합하지 않음”이라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과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혹은 이라크전 때처럼 의혹이 있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할 경우, 실제로 북한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정밀타격을 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작계5027-04’를 만들었다. 그 속에는 이라크 전쟁처럼 정밀 폭격기술을 활용, 특정 목표를 공격하는 방안과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번째 충격은 ‘주한미군 지역 역할’이 중국에 대한 선제 군사 개입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였다. 국방부가 FOTA 3차 회의(2003년 7월)에 제출한 ‘주한미군 지역 역할 수행 대비책’을 보면 △중국 등 잠재 지역패권 세력과 역내 여타 국가 간의 분쟁 개입 △중-대만 간 양안 갈등의 군사적 조정 △북한 체제 급변으로 인한 위기 발생시 주변국 간 분쟁을 위해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지역 역할’이 단순한 대테러전에 한정되지 않고, 중국 등 잠재 패권국가에 대한 군사 개입,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이 있는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 번째 충격은 ‘전략적 유연성’이 핵무기 배치까지 허용하는 엄청난 내용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2004년 청와대가 작성한 ‘주한미군 지역적 역할 논란 점검’에서도 지적됐듯이,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출입(flow-in and out)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군의 MD 체제 및 핵무기 배치, 군산 미군 항공기의 대중국 초계활동과 같은 민감한 내용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서도, 미국의 압력에 밀려 2006년 1월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고 말았다.

노 대통령 개입을 최소화한다?

네 번째 충격은 한국 쪽 협상단의 매국 행위였다. 그들은 전략적 유연성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하자,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로 매도하면서까지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려 했다. 청와대가 2003년 11월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 보고’에 따르면, 외교부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개입을 최소화시킨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의 돈이 들든지 추진해야 한다 △양해각서(MOA)·합의각서(MOU)는 유효한 합의이므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협상이 진행될 수 없다 △국회와 국민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과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는 등의 협상 기조를 내부적으로 마련했고, 실제로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용산기지를 조속히 이전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충격은 분노로 바뀌었고, 분노는 나를 실천으로 이끌었다. 어떻게든 주한미군 재배치 뒤에 숨어 있는 미국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고 싶었다. 역사적 소명이라 생각했다. 민주노동당 10인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좀더 많은 의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감사청구안’이라는 유연한 전술을 택했다. 63명의 의원이 동참했다. 수차례에 걸쳐 비밀문서를 공개했고, 여야 의원 67명이 참여하는 ‘용산·LPP(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 철저검증 의원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당원과 시민단체가 연일 시위를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민주노동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4년 12월 용산기지 이전협정과 LPP 개정협정이 국회를 통과하고 말았다.

2006년 5월4일. 평택 대추리는 수만 명의 경찰과 용역 깡패, 그리고 수천 명의 군인에 의해 짓밟혔다. 대화로 해결한다는 국방부와 평택대책위의 합의가 있은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불길이 치솟고 시설물이 파괴됐다. 유혈이 낭자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실탄만 없을 뿐, 80년 5월 광주의 모습 그대로였다. 저항하던 주민은 피 터진 머리를 감싸며 흐느꼈다. 아파서가 아니라 가슴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일제시대엔 일본군에 땅을 빼앗긴 그들이었다. 8·15 해방과 함께 다시 미군에게 땅을 빼앗겼다. 맨몸으로 갯벌을 개간해 겨우 다시 농지를 만들었는데, 또다시 그 땅을 빼앗겨야 했다. 그들의 저항이 무슨 죄인가? 한반도를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반대하는 것이 그토록 큰 죄란 말인가?

고통도 나누면 가벼워지는 법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강요가 아무리 강한들,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힘을 합치면 이겨내지 못할 것도 없다. 외교부 협상단의 매국 행위가 없었다면, 정부가 진실을 숨기지만 않았다면, 솔직하게 국민의 힘을 빌렸다면, 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실형 선고는 없었을 것이다.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 미군 주둔으로 얼룩진 용산의 고통이 평택으로 전이되진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땅을 빼앗겨야 하는 대추리 주민의 절규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년을 이어온 아픔의 역사다. 그 역사의 무게를 불과 몇백 명의 대추리 주민에게만 지우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야만이다. 미안하다 대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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