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로 북적였던 이동면 47번 국도는 고속화 도로 뚫리며 퇴락…무분별한 4차선 국도 건설로 마을 자영업과 커뮤니티 붕괴 잇따라
▣ 포천=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0월31일 오후 경기 포천군 일동면 기산리의 47번 국도 주변은 썰렁했다. 2차선 도로 주변으로 늘어선 포천의 명물 ‘이동 갈빗집’들은 거개가 문을 닫았다. 2층짜리 ㅅ갈빗집은 200여 평 되는 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임대’ 간판을 세웠다. 건너편의 ㅂ갈빗집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었다.
옆동네 가려면 도로 밑 터널로 돌아가야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였다. 지난해 47번 국도 서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새로운 4차선 고속화 도로가 개통되며 생긴 일이다. 새 47번 국도는 옛길과 평행하게 달리면서 인터체인지로 자동차를 내뱉는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온 갈비 손님으로 북적였던 2차선 47번 국도는 옛길이 됐고, 4차선 고속화 도로가 정식 47번 국도가 됐다. 사람들은 시속 60km로 마을을 구불구불 둘러가는 옛길을 버리고, 제한속도 80km의 쭉 뻗은 새 길을 택했다. 일동면 기산리에서 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철학(56)씨의 말이다.
“재작년부터 남쪽인 화현면부터 북쪽인 일동면, 이동면 쪽으로 차츰차츰 올라가면서 4차선이 개통됐어요. 그러다 보니 4차선 국도가 완공돼 북상하는 속도에 맞춰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차례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남쪽의 갈빗집들은 이미 임대를 내놓거나 전업했어요.”
포천군 일동·이동면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동 갈비’로 유명해졌다. 곧이어 이동 갈빗집들이 47번 국도를 따라 들어서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주민들도 부업 삼아 장사를 시작했다. 최성철(48)씨도 이동면 당암리에 ‘명지원’이라는 식당을 지었다. “우리 식당은 그래도 이곳에서 큰 편인데, 지난달 매출을 잡아보니 심상치 않아요.”
식당이 연이어 문을 닫자 부업 삼아 종업원을 하던 주민들의 일거리도 없어졌다. 이씨는 “지역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상인들이 위기감에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충주를 잇는 38번 국도. 박달재와 다리재를 넘어 굽이굽이 흐르는 도로였다. 이곳 역시 4차선 고속화 도로가 개통된 뒤, 옛길은 보듬었으나 새 길이 버린 마을들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충주시 산척면 손강리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우명제(54)씨는 “2000년 다리재 터널이 개통된 뒤 식당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옆 마을을 갈 때 전혀 불편이 없었는데, 이제는 4차선 도로 밑에 뚫린 터널까지 간 뒤 돌아가야 한다. “도로 때문에 이 동네 저 동네가 분리되는 거야. 도로가 강처럼 마을을 막아섰어요. 마치 배를 타고 건너야 하듯이 그렇게 됐다니까.”
그래도 우씨는 “서울 가는 길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2시간30분이 걸리던 서울 가는 길이 서두르면 1시간10분도 걸린다고 했다. 우씨는 “어렸을 적에는 다리재와 박달재를 걸어 넘어서 제천까지 장 보러 갔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무얼 살 게 있으면 자동차를 타고 제천 시내로 나가요. 20~30분이면 충분하거든요. 예전에는 길 따라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담배도 사고 음료수도 사먹고 그랬는데….”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자동차환경팀장은 “4차선 국도가 시골의 경제·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부작용은 △시골 자영업 붕괴 △마을 간 분리 등 지역 커뮤니티 해체 △노인 교통사고 등이다. 도시 간의 체감 거리는 혁명적으로 단축됐지만, 단축된 시간 속에 촘촘히 박힌 마을들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녹색연합은 이런 4차선 국도가 무분별하게 건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속도로와 4차선 국도가 중복 건설됨으로써 예산 낭비와 생태계 파괴 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이 조사해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고속도로와 국도 구간 10곳(총연장 406.1km) △고속도로와 국도(공사 중) 구간 7곳(총연장 193.6km) △고속도로(공사 중)와 국도(공사 중)의 구간 4곳(총연장 241.2km)이 중복돼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로 인한 건설사업비 낭비는 5조원이 훌쩍 넘는다.
왜 이렇게 4차선 국도가 난개발되고 있을까? 윤기돈 녹색연합 녹색도시국장은 보고서에서 “4차선 확장 기준이 너무 헐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2차선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려면, 예측 교통량이 하루 7300대를 넘어야 한다. 이 정도면 1분에 고작 10대의 차가 통과(편도)하는 수준이다.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아도 4차선 확장이 가능한 것이다.
기준 헐거운 교통 예측량, 부풀려지기 일쑤
윤 국장은 이와 함께 “교통수요 예측량이 부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복 건설로 인한 교통량 감소효과를 감안하지 않거나 확정되지 않은 개발계획을 조기 준공하는 것으로 간주해 과다하게 교통량을 책정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안동~영주 간 국도, 김천~상주 간 국도의 4차선 확장공사는 교통수요 예측이 현재 교통량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부풀려졌으며, 산청~수동 간 국도는 3배 이상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포천 일동·이동면 주민들은 도로에 버림받은 마을을 살리려고 상공인 모임을 결성했다. 9월에는 30명이 모여 포천 일대의 관광산업을 둘러보고, ‘47번 옛길 안내지도’ 1만2천 장을 만들었다. 내년에는 단오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나왔고, 47번 국도 변에 산사나무를 심어 지나치는 관광객을 잡아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철학씨가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도로를 내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해서라도 지역 경제를 살려야지.”
자동차는 47번 국도를 쌩쌩 달린다. 속력을 높일수록 많은 것들이 쉬이 지나쳐간다.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의 숱한 사연도 4차선 국도와 함께 사라지듯이, 포천 이동갈비도 사라지는 건 아닐까.
| ||||
한국은 도로가 부족할까? 각종 도로 지표상으로는 그렇다. 국토 면적당 도로 연장, 인구당 도로 연장, 국토 계수당 도로 밀도 등에서 선진국보다 낮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전체 도로율은 낮은 게 사실이지만, 도로를 세분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2004년 국토 면적당 총도로 연장을 보자. 1㎢당 총도로 연장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1008.8m이고 일본은 3060m, 영국은 1549.7m이다. 그런데 고속도로와 국도를 따로 떼어놓고 봤을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1㎢당 고속도로 연장은 한국이 29.4m로, 일본 16.2m, 영국 14.0m보다 오히려 길다. 국도도 마찬가지다. 한국(143.3m)은 일본(141.9m)보다 길고, 영국(200.8m)보다는 짧다. 다른 도로 지표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이다. 한국의 ‘도로 부족’은 고속도로·국도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군·구도나 지방도가 열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도로 건설 예산은 고속도로 신설과 국도 확장 등에 치우쳐 있다. 고속도로와 국도 관리 주체인 건설교통부의 2006년 도로 예산은 5조1504억원이다. 이는 같은 해 복지 예산(10조3882억원)의 절반에 이르는 금액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김병기 아내 ‘사모총장’…텔레그램 도용, 커피 시키더니 그새 한 듯” [단독] “김병기 아내 ‘사모총장’…텔레그램 도용, 커피 시키더니 그새 한 듯”](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6/53_17667318922856_4217667318702388.jpg)
[단독] “김병기 아내 ‘사모총장’…텔레그램 도용, 커피 시키더니 그새 한 듯”

회사 팔리자 6억4천만원씩 보너스…“직원들께 보답해야지요”

나경원 “통일교 갔었다” 첫 인정…한학자 만남 여부엔 “한 번도 없어”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김정은 집사’ 김창선 사망…북 “깊은 애도”

김병기 “아들 좀 도와줘”…국정원 첩보 업무까지 의원실에 손 뻗쳐
![[단독] 특검 “김동희 검사, 쿠팡 김앤장 변호사에 대검 지시사항 유출” [단독] 특검 “김동희 검사, 쿠팡 김앤장 변호사에 대검 지시사항 유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6/53_17667259557028_7817667259402608.jpg)
[단독] 특검 “김동희 검사, 쿠팡 김앤장 변호사에 대검 지시사항 유출”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25/20251225500099.jpg)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

전우원, 전두환과 찍은 사진 공개…“차라리 태어나지 말걸”

믿고 샀는데 수도꼭지 ‘펑’…쿠팡 책임 없다는 ‘판매자로켓’에 소비자 끙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