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수많은 논란 불러일으키더니 지금은 전면 재검토 상태… 환경적·사회적 영향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역사여
▣ 박용신 환경정의 토지정의운동센터·정책위원
서울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에서 시작해 인천 서구 시천동을 거쳐 서해로 접어드는 경인운하는 길이 18km, 수심 6m, 너비 100m에 이르는 인공 물길이다. 총 공사비 1조8천억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다른 국책사업과 마찬가지로 많은 우여곡절과 사회적 논란을 겪었고, 현재 전면 재검토 상태에 들어가 있다. 지난해 정부·지역주민·전문가·민간 환경단체가 참여한 ‘굴포천 유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구성돼 조만간 사업의 진행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이 이뤄질 전망이다.
검토 4순위 안이 갑자기 채택된 배경
경인운하 건설사업이 시작된 것은 1987년 7월 굴포천 유역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뒤다. 그 무렵 이 지역은 주변보다 지반이 낮고 하천 부지가 과도하게 개발돼 상류에서 내려오는 수량을 감당할 수 없는 없는 상태였다.
급기야 개천이 범람했고, 반지하층에서 살던 서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해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굴포천 유역의 홍수 방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놨고, 이를 위해 여러 방안들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온 수자원공사의 보고서 ‘굴포천 유역 종합치수 2단계 사업’을 보면, 소개된 네 가지 방안 가운데 1안은 굴포천 유역에 너비 40m의 방수로를 건설하고 하류지역에 펌프장을 증설하는 것(총 공사비 2455억원·이하 1991년 기준)이었고, 2안은 너비 80m의 방수로를 건설하는 것(총 공사비는 3934억원)이었다. 정부는 공사비를 포함한 여러 여건을 고려해 1안을 검토 1순위로 정했고, 건설교통부는 이를 근거로 1992년부터 ‘굴포천 유역 종합치수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2안은 앞서 언급하지 않은 3·4안보다도 낮은 4순위를 기록했다).
경인운하라 불리는 비극의 역사는 그로부터 2년 뒤 시작된다.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던 1안의 ‘굴포천 유역 종합치수사업’이 검토 순위 4순위이던 너비 80m 방수로로 변경된 것이다. 영종도 신공항 고속도로 공사계획 등으로 인해 방수로를 건설하면서 발생하는 토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건설교통부의 의견이었지만, 2003년의 감사원 감사 결과 2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매립지 경유 공사비 447억원과 하류 하천 개수비 296억원 등을 의도적으로 빠뜨려 공사비를 1200억원이나 축소 왜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굴포천 치수 계획의 변경은 경인운하로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미 방수로를 위해서 너비 80m의 물길을 파내기로 돼 있으니, 거기에 20m를 더해 배가 오갈 수 있도록 100m를 파자는 논리였다. 정부는 1995년에 경인운하 사업을 민간투자유치 대상사업으로 선정하고, 1999년에 8개 건설회사가 (주)경인운하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불어나는 비용, 보조금만 1조71억원
경인운하 사업은 시작부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2003년 감사원 감사 결과 1995년 정부 고시 당시의 정부 사업비는 2600억원이었으나 이후 2737억원의 대체시설 공사비를 국고에서 추가로 지원하는 것으로 실시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민자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부대사업(관광단지 등)을 추진하는 데 정부 간 협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557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도 했다.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인운하 사업의 타당성 분석 및 사업추진 전략 연구’를 보면, 사업 자체의 재무적 타당성이 지극히 악화돼 보조금을 최대 1조71억원 지급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다.
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경인운하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내용 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운하 내 오염수로 인한 서해 앞바다의 환경오염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업의 해양환경영향평가를 담당했던 기관은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환경 영향을 검토해본 결과 “서해 앞바다에 심각한 환경 영향이 우려되므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사업자 쪽에서는 2000년 이를 왜곡해 “몇 가지 사항만 보완하면 환경적인 영향은 별로 없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해 환경부에 제출했다. 덕분에 환경영향평가는 2002년 논의가 중단돼 지금까지 아무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다.

경인운하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3년 감사원 감사에서 경인운하를 운행할 선박 마스트의 높이가 19.5m(여유분까지 고려하면 최소 21.5m가 필요함)인데, 이미 경인운하 구간을 가로지르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귤현대교의 교량 높이는 16.8m로 시공이 끝났다. 국도 48호선의 굴포교 등 5개 다리의 높이도 15.9~20.9m로 설계돼 시공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편익 분석(B/C)을 해보니, 비용 대비 편익이 0.8166(경제성이 있으려면 1 이상이어야 함)으로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나자 건교부는 납품을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까지 경제성 분석 결과를 임의로 왜곡하기 위해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바 있어, 관련자가 중앙인사위원회에 징계 회부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현 정부 들어서도 경인운하 사업은 백지화와 취소를 반복하며 기나긴 사회적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한 채로 2004년에 20억원이라는 아까운 국고를 들여 네덜란드 DHV사에 사업 타당성 재검토를 의뢰한 바 있으나, 이마저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왜 일단 내지르고 보는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인운하와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해왔다. 새만금이 그랬고, 천성산이 그랬다. 동강댐의 경우처럼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대통령의 합리적 결단으로 마무리한 사례도 있지만 그런 선례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아직도 해마다 국책사업이란 명목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이 수도 없이 발표되지만 사회적 타당성 검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경부운하’라는 것을 또 하나의 개발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타당성을 검증하는 작업은 요원하다. 이 전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라도 하면, 정부는 또 ‘경부운하’가 경제적으로 타당하고 환경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경인운하에서 벌였던 것과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될 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일단 내지르고 보자’거나 ‘대규모 국책사업은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대마불사’의 정신보다는,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환경적·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허위사실 밝히겠다” [속보]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허위사실 밝히겠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1/53_17654061311697_20251211500221.jpg)
[속보] ‘통일교 의혹’ 전재수 장관 사의…“허위사실 밝히겠다”
![그래, 다 까자! [그림판] 그래, 다 까자!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10/20251210503747.jpg)
그래, 다 까자! [그림판]

쿠팡 새벽배송 직접 뛴 기자…300층 오르내리기, 머리 찧는 통증이 왔다

“5년치 SNS 기록 내라”…미국, 비자면제국 국민에게도 입국 심사 강화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630444751_20251210503717.jpg)
[단독] “하이브 소유 피알회사가 민희진 ‘역바이럴’했다”…미국서 피소
![[뷰리핑] 전재수 사의 “당당히 대응” [뷰리핑] 전재수 사의 “당당히 대응”](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1/53_17654123130087_20251211500521.jpg)
[뷰리핑] 전재수 사의 “당당히 대응”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0/53_17653564336892_20251210503477.jpg)
[단독] 윤영호 “전재수, ‘복돈’이라 하니 받아가더라…통일교 현안 청탁 목적”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정동영 장관 “11일 입장문 낼 것”

서울교육청 “2033학년도 내신·수능 절대평가…2040 수능 폐지”

말 바꾼 김현태 “나는 가짜뉴스 피해자…계엄군 총구 잡는 모습 연출돼”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02/2025120250367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