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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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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를 괴롭히는 지독한 역설

등록 2006-10-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안보 이슈에선 늘 유리했던 공화당의 강경정책에 쏟아지는 비판… 실패로 점철된 ‘무시와 봉쇄’를 핵실험 이후에도 고수하는 딜레마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독한 역설이다. 북한이 10월9일 오전 함경북도 김책시 상평리에서 강행한 핵실험이 몰고 온 후폭풍은 온통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남쪽의 요청을 북쪽이 받아들여 성사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는 게 ‘제재 조처’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건 차라리 애교다.

처음엔 반색하다가 상황 급반전

북한의 핵실험으로 서울에서 ‘햇볕정책’이 난타를 당하는 사이 워싱턴에선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론’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첫 번째 역설이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무장을 불러왔다는 국내 보수진영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한 채 금융제재 등 강경책으로 일관해온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되레 북한의 핵무장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워싱턴 정가에서 비등하고 있는 탓이다.

‘네오콘의 전위부대’ 격인 안보정책센터(CSP)는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직후 직후 성명을 내어 “핵실험 이전과 이후의 북한 위협은 다르지 않다”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으며, 이를 무기력한 ‘6자회담’에 더 이상 맡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기회 삼아 더욱 강력한 봉쇄와 대북 압박정책을 부추기는 한편 미사일방어망(MD) 구축 등 ‘숙원사업’의 속도를 높일 ‘호재’로 여긴 것이다.

11월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마크 폴리 전 하원의원의 성추문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던 공화당 지도부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국가 안보가 선거 쟁점이 될 때마다 공화당은 압승을 거둬왔다. 더구나 미국이 직면한 ‘안보 위협’을 적절히 강조한다면 곤두박질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라크의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마저 여론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상황은 쉽게 반전됐다. 이제 부시 대통령은 선거를 앞둔 공화당이 ‘업고 다니기 버거운 짐’이 돼버린 모양새다.

지난 10월11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이런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cnn> 방송이 생중계한 이날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이례적으로 스스로 묻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주문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군 통수권자로서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우선 모든 가능한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게다. 후속 질문을 스스로 해보겠다. 그럼 이라크는 왜 침공했는가? 이유는 우리가 당시 외교적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은 쉽다. 미국의 침공 직전까지 이라크엔 유엔 무기사찰단이 활동하고 있었고, 국제사회는 “외교적 노력에 좀더 기회를 주자”고 강조했었다.

북을 향해 휘두를 카드도 별로 없어

두 번째 역설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에도 부시 행정부의 태도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샘 넌 전 상원의원의 지적처럼,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세 나라 가운데 첫 공격 대상으로 삼은 이라크에선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사이 한 나라(북한)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고 다른 나라(이란)도 핵무장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부시 대통령 스스로 나서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은 없다”거나 “외교적 노력에 최대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게 또 다른 역설이다. 미국으로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겨냥해 휘두를 ‘카드’가 많지 않은 것이다. ‘핵 보유국’의 지위를 꿰찬 북한에 대한 접근법은 핵실험 이전과 마찬가지로 △봉쇄 강화 △무시 전략 △외교적 개입 3가지 방법뿐이다. 군사적 대응조처는 부시 행정부조차 불가능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핵무장한 북한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레드라인)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지난 6년여를 거친 말과 악의적 무시로 일관해왔다. 이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10월11일치 에 보낸 기고문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오랫동안 핵 보유국이 되고자 했던 북한의 열망을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준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를 ‘금지선’으로 규정했던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부시 행정부는 ‘금지선’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며 “이제 부시 대통령은 핵 관련 물질 어떤 것도 이전시키지 말라고 북한에 경고하고 있지만, 지난 6년 동안 미국이 한 경고를 북한은 무시한 채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던 북한이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일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잠정적 금지선’은 현재로선 핵물질의 해외 유출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발표 직후 북한이 핵무기나 기타 관련 물질을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유출시킬 경우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실행에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과 해안선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를 반길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다, 이 과정에서 자칫 의도치 않은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고립시키면 도발을 낳는다

대북 제재 조처 강화와 함께 기존의 ‘무시 전략’을 지속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가안보국장을 지낸 윌리엄 오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가 소리를 크게 지를수록, 위협을 강하게 가할수록,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쳐다봐주기를 원하며, 그럴 경우 자기들의 위협이 먹혀들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협박의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로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 보복당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들과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숨어 있다. 북핵을 둘러싼 그동안의 경험은 ‘무시와 봉쇄가 도발을 낳는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위험 상황 발생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북한을 고립시킬수록, 북한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도발을 하게 될 가능성도 커지는 탓이다. 짐 월시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이 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두고 ‘(부시 행정부에게) 깨달음의 시간이 왔다’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월시 연구위원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력을 가중시키는 것이야말로 지난 몇 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온 정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는 ‘비확산과 김정일 불신’이란 대북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두 축을 포기하지 않을 자세다. 겉으론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지만, 유엔 안보리를 통한 봉쇄와 철저한 무시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이를 두고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장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부시 행정부의 DNA에 각인돼 있다”고 표현했다. 남은 임기 동안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이쯤에서 10월3일 북 외무성이 핵실험 강행 의사를 밝힌 성명서를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핵실험 이후 북쪽의 대응 방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북 외무성은 성명에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조선반도에서 우리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로 이어지는 ‘비핵화’가 아니라, 조·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모든 핵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또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우리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하게 뚫고 우리 식대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풀어 읽어보자. “제재의 고깔모자를 쓰고는 회담탁에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정확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한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1998년 ‘조-미 공동코뮈니케’ 이후 북한은 대미 협상에서 타협적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 들어 압박의 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대화다운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과의 대화는 북의 가장 일관된 모습

특히 지난해 ‘9·19 공동성명’ 합의 이후 금융제재가 추가되면서, 북한은 미국의 ‘본심’이 ‘정권 붕괴’에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담일 수밖에 없고, 그의 조급증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기감 속에 북한 지도부는 스스로 ‘제재의 모자’를 벗고 ‘핵 보유국이란 모자’로 바꿔쓰는 쪽을 택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해 북쪽이 오히려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의 가장 본질적인 역설은 결국 여기에 있다.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위기를 키우는 건 어찌됐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행태 가운데 가장 일관된 모습이었다. 핵 포기에 따른 보상과 안전보장 약속, 어기에 에너지 지원이 이뤄진다면 북한은 핵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9·19 공동선언’의 핵심이다. 겉보기엔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돼 있는 법이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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