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간부들의 로비에 놀란 김보협 기자가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공무원 일하는데 불쑥 오지 말라”던 현정부의 언론정책은 이 정도인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제가 이런 편지를 쓰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을 포함해 몇몇 언론 매체에 편지 형식의 글이 실릴 때마다 ‘어차피 읽지도 않을 테고 답장을 받을 수도 없을 텐데 뭐하러 쓰나’ 싶었습니다. 어떤 편지는 글투만 점잖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일관한 글도 있었지요. 형식만 편지이지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그 글을 읽고 후련해할 독자들을 겨냥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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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인터넷을 즐겨 사용하시니 보고를 받지 않더라도 이 편지를 읽으실 기회가 있겠지요. 바쁘시다면 청와대 혹은 정부 부처의 언론정책을 맡고 있는 책임자를 통해서라도 꼭 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지면을 통해 공개하는 이유는, 사안 자체가 매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과 관련된 까닭입니다. 답장을 주시면 전제할 것을 약속합니다.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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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1년 정도 공백기를 제외하곤 와 정치팀에 몸담아왔습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그해 12월 대선, 이듬해 참여정부 출범식까지 정치인 노무현이 있던 공개적인 자리 대부분에 저도 있었습니다. 제 직업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에 대해서는 그리 되기를 믿고 바랐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은 오래전부터 정치와 언론이 정도(正道)를 가자고 말했지요. 정치는 정치의 길을,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가자고 했습니다. 언론이 정치를 하려 하지 말고, 정치가 언론에 부당하게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관료로서는 이례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한 것도 그런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 참여정부 들어 언론 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부의 압력이 두려워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언론은 아마 없을 겁니다. 경우만 보더라도 다음날치 신문을 미리 판매하는 가판을 없앴기 때문에 기사를 빼달라, 고쳐달라고 찾아오는 공무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반론·정정 보도를 청구하는 관행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일들을 겪고 나서 저는 몹시 당황하고 있습니다. 은 지난 9월18일치에서 국세청이 국회에 검은돈을 뿌렸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후 기사를 작성한 류이근 기자는 물론이고 한겨레 사람들은 수백 통의 전화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버젓이 ‘사실무근’이라고 써놓고는, 기자와의 연줄을 찾고 온갖 인연을 내세워 추가 보도를 막으려는 공세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초짜 기자’ 시절 익숙한 풍경이었고 해명도 포함돼 있었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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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마포세무서장의 방문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들르신 적이 있으니 한겨레신문사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다는 사실은 아실 겁니다. 경찰과 검찰의 부정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고 해서 마포경찰서장이나 서부지검장이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은 왜 김아무개 마포세무서장을 세 차례나 보냈을까요. 설마 그랬을까 싶은 얘기까지 하겠습니다. 마포세무서와 언론기업 한겨레신문사가 갑과 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삼성 이상의 국세청
급기야 이번호를 마감 중인 추석 연휴 직전엔 박찬욱 서울청장까지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국세청 사람들의 관심사는 또 쓰느냐, 뭘 쓰느냐, 안 쓸 수는 없느냐에 집중됐습니다. 일부 국세청 간부들의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겨레와 국세청 두 ‘기관’이 다투면 좋아할 곳은 조·중·동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왜 한겨레가 국세청과 같은 등급의 ‘기관’이며, 국세청의 부정 비리와 관련한 보도에 조·중·동이 왜 등장합니까.
보도 이전부터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사무실에 찾아와 보기에 따라서는 압력이나 부당한 거래로 느낄 수 있는 언행을 일삼는 국세청 간부들의 행태가, 노 대통령의 언론관과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번 보도가 정치(정부)와 언론이 각자의 정도를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짚어보고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왕 언론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으니 마저 해보지요. 국세청은 한가위 특대호(10월10일치) 특집 ‘뇌물이냐 선물이냐’ 취재 당시, 클린신고센터 설치 여부와 현황 등 간단한 사실 확인에도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취재요청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국정홍보처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는데 어떨 때는 참여정부의 언론정책 뒤에 숨고, 어떨 때는 과거의 악습이 살아나는지 궁금합니다. 언론계에서는 삼성의 언론 대응 방식과 기자 관리가 유명하지만, 의 보도와 관련한 국세청의 행태는 그 이상이었음을 단언합니다.
앞서 언급한 ‘뇌물이냐 선물이냐’ 기사에는 서울 마포구청 주택과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직원은 모친상을 치른 뒤 부의금 명부를 확인하다가 관내 재개발 지역 주택조합 관계자들이 낸 10만원을 발견하고 감사담당관실에 설치돼 있는 클린신고센터를 통해 돌려줍니다.
은 이에 비견될 만한 고위 공무원에 관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국무총리실에는 공직 기강과 관련해 감찰 업무를 보는 기구가 있습니다. 이곳 고위 간부의 아들이 9월 초 어느 날 결혼을 했답니다. 평일 오후여서 국무총리실 직원들도 참석이 어려웠는데, ‘국세청 간부들이 대거 납시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국세청 간부들이 평일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세청이 ‘을’의 위치에 있는 몇 안 되는 정부 조직의 고위 관계자의 혼사여서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축의금을 냈다면 누가 얼마씩 냈는지, 혹시 공무원 행동강령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전·부동산·선물 또는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제14조1)는 규정에 어긋남이 없는지…. 노 대통령께서 취임 이후 “공무원이 일하는데 불쑥 들어오는” 취재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기에, 추석 연휴 이전에 취재 약속을 위해 수차례 사무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매번 회의 때문에 바쁘시더군요. 취재 목적을 밝히고 제 연락처를 남겼지만 저는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참여정부 언론정책에서 빈틈을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른 척 깔아뭉개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다는.
사람들의 불쾌한 추석 연휴
대통령께서는 어떠셨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추석 연휴는 즐겁지 않았습니다. 국세청 사람들은 집요했습니다. 고향집까지 택시를 타고 갈 테니 나오라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만날 수 없느냐는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이 편지를 쓰는 시간에도 전화가 울립니다. 처음엔 농 삼아 그랬습니다. 가까운 친인척 가운데 사업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이번호를 마감하고 나서는 좀 먼 친척까지 두루 살펴봐야겠습니다.
관료들끼리 모이면 그런다지요. 권력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하다고. 대한민국이 관료들의 나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절망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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