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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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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뿐인가

등록 2006-09-06 00:00 수정 2020-05-02 04:24

수술을 하건 안하건 난 ‘여성’일 뿐, 트렌스 젠더는 자신의 몸을 혐오해야 하나… 페니스가 있으면 남성이고 질이 있으면 여성이라는 식의 구분·판단 자체가 문제

▣ 루인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연구활동가

나는 트랜스젠더이다. 꾸미는 걸 좋아하고 색색으로 매니큐어와 페티큐어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나를 낯설게 쳐다본다. 때론 뚫어져라, 공포(혐오)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재미있다. 언제 폭력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긴장감에서 생기는 감정들.

내가 바란 몸과 사회가 요구하는 몸

트랜스젠더이지만 수술을 하지 않았고 호르몬 투여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가 공인 성별로 통하고 커밍아웃을 한 집단에서조차 나를 주민번호의 성별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의료 과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현재로선 그럴 의향이 별로 없다.

수술을 고려하지 않거나 욕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 마른 몸, 더 예쁜 얼굴, 더 작은 얼굴 크기를 바라는 욕망. 수술과 함께 성형수술을 동시에 고민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 욕망일까. 이 질문과 함께 수술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욕망이 여성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규범과 트랜스젠더는 “이렇다”라는 시선으로 트랜스/여성을 박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바랐던 몸과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몸 사이의 긴장을 읽으며 수술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왔다. 과연 지금의 나는 내 몸을 혐오하는가.

텔레비전이나 언론 등에서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한 글에 주로 등장하는 얘기는 “몸을 혐오한다”는 것. 여성들은 페니스가, 남성들은 젖가슴이 너무 싫다는 얘기들. 맞다. 나 역시 나의 페니스가 ‘싫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어떤 언어로 질문을 구성했고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정치하게 읽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는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성기 재구성이나 호르몬 투여를 아주 안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것이 몸을 혐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술을 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나는 “여성”이다.

나는 지금 “국가 공인 1번”으로 통하는 몸으로 “2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지금의 몸으로 내가 원하는 성별을 요구하면 안 되는가. ‘성전환자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성별 변경 요건으로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의사 두 명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진단과 내 주장이 대치할 때, 의사는 나를 “남자며 성전환증 환자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나는 나를 “여자며 성전환자”라고 말할 때, 누구의 판단에 따라야 할까. 법안대로 한다면 나는 가짜 트랜스거나 ‘정신병자’일 뿐이다(그런데 성정체성장애(GID)도 정신병 목록에 올라 있다). 법안 공청회 자리에서 발제자와 많은 토론자들이 의사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의학과 의학적 판단 역시 시대의 맥락에 따른 해석 아닌가. 의사 개개인 역시 사회와의 관계 속에 위치할 때, 갓 태어난 아이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성전환증 환자”임을 판단하는 것 또한 의사의 해석일 뿐이다(어떤 의사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mtf(male to female)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어떤 의사는 상담기간 중 mtf가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왔다고 상담기간을 몇 년 더 연장했고, 한 ftm(female to male)은 자신은 질을 제거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사에게 묻자 의사는 그런 ftm은 없다고 대답했다, 또한 수술 뒤 ‘이성애’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수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더 정확하게는 의사를 매개로 하는 혹은 의학과 밀월관계에 있는 국민국가의 해석)을 굳이 따를 이유는 없다.

하리수만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목소리를 “수술하지 않겠다는 성전환자도 있는데 너는 왜 굳이 수술을 하려고 하느냐”란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보다 유감스러운 일도 없다. 당신이나 내가 상상하는 성전환자가 전부는 아니다. ‘하리수’만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며, 모든 트랜스젠더가 ‘하리수’와 같은 것도 아니다.

호르몬 투여를 하는 모든 사람이 성전환자는 아니며(어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남성호르몬을 투여한다), 모든 성전환자가 호르몬 투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기 재구성을 하는 모든 사람이 성전환자는 아니며, 모든 성전환자가 성기 재구성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트랜스젠더는 기존의 이성애나 성별 규범을 강화한다는 비난은 불편하다.

트랜스젠더는 기존의 이성애와 성별 규범을 강화한다는 비난(하리수가 등장했을 당시, 이런 비난이 특히 많았고 여전히 많다)은 마치 트랜스젠더든 퀴어든 다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훈계하겠다는 태도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 뭐? 트랜스젠더가 젠더를 ‘위반’하기에 성별 규범까지 위반하고 ‘다른’ 식으로 행동할 것이란 인식 혹은 그런 요구는 상당히 문제적이다. 이런 언설들은 트랜스젠더를 지금의 사회구조 바깥에서 사는 ‘완벽한’ 외부자·타자로 설정한다. 하지만 지금의 젠더 사회에서 살며 성별 규범에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다. 트랜스젠더는 무언가의 대안이 아니다. 기존의 인식을 흔드는 행위들이 ‘대안’적이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오히려 성별 규범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비난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성전환자와 비성전환자의 서로 다른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환)남성이 군대에 가고 싶고 갈 수 있으면 꼭 가겠다는 말, (성전환)여성이 ‘여자보다 더 여자답게’ 행동하는 것을 성별 규범의 강화로 받아들이는 건, 매순간 남성임 혹은 여성임을 시험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무시하기에 가능하다. (성전환)남성이 조금만 ‘여성스러운’ 행동을 해도 “쟤는 별 수 없이 여자야”란 식으로 반응하고, (성전환)여성이 과잉 여성화할 때에만 “천생 여자”란 말을 하는 상황에서, 이성애나 성별 규범을 더 강화하는 듯한 행동들은 지금의 사회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협상력이다.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의 불일치?

흔히 트랜스젠더를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불일치하는 사람”이라거나 “남성(여성)의 몸에 갇힌 여성(남성)”이란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불일치하는 건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아니라 자신의 몸 해석과 타인의 해석·호명이다.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불일치”한다는 식의 설명은 젠더 경합(gender dysphoria)을 사회적 맥락과는 무관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방식이며, 이런 식의 설명이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인 것처럼 상상하게 한다. 나는 지금의 몸으로도 충분히 "여성"이라고 여기지만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타인의 시선들로 인해 더 많은 긴장과 갈등을 느낀다. 페니스가 있고 수염이 있으면 남성이고, 질이 있고 젖가슴이 있으면 여성이라는 식의 구분·판단 자체가 문제(question·problem)이다. 여성이면서 페니스가 있으면 왜 안 되고 남성이면서 자궁이 있으면 왜 안 되는지 묻고 싶다. 사실, 계속해서 나를 "여성"이라고 말하지만 "여성" 혹은 트랜스여성/mtf으로 스스로를 부르지 않! 는 편이다. 때론 그런 명명에 불편함을 느낀다. 다만 성별 이분법 사회에서 나를 주장하는 한 방식으로 그런 언어들을 사용할 뿐, 난 트랜스젠더이다. 이런 나에게 수술은 나임을 주장하기 위한 (유일한) 근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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