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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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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휴전, 협상은 그 다음

등록 2006-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헤즈볼라 창설 주역이자 레바논 국회부의장인 하스 하산 후세인 인터뷰…“군인 둘 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이스라엘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

▣ 베이루트=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란 참 실없는 짓이구나. 늘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놀고 있다.” 뭐, 이런 비관적인 건데, 멋지게 꾸며놓은 레바논 의회- 사실은 세상 모든 의회- 앞마당에 설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월25일, 504호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헤즈볼라당 의원이며 레바논 국회부의장인 하스 하산 후세인(Dr. Has Hassan Houssein). 그는 1982년 헤즈볼라를 창설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14개 의석을 지닌 헤즈볼라당 출신으로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나스랄라를 정치적으로 보좌하는 인물이다.

이스라엘에 납치는 아무 상관없다

어제 헤즈볼라 쪽에서 휴전을 제의했는데.

=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공격을 보라. 수많은 시민을 살해하고, 레바논 사회를 파괴시키고…. 이스라엘이 공습한 베이루트 남부 지역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민간인 거주지일 뿐이다.

그런 거 말고, 휴전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 그래서 휴전하자는 거다. 조건 없는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왜 지금 와서 휴전하자는 건가? 처음부터 개전을 말았어야지.

= 이건 우리(레바논) 전쟁이 아니다. 그이들(이스라엘)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무조건 휴전’을 내걸었는데, 그 다음은?

= 휴전부터 하고 협상해나가면 된다. 포로 교환을 포함해서 모든 사안을 하나씩.

이상적이긴 한데, 이스라엘이 들어줄 것 같은가? 휴전협상도 흥정인데.

= 그러니 조건 없이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서로 조건 내걸면 휴전하기 어려우니.

무조건이란 것도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거리’를 주는 거 아니겠나? 예컨대, 헤즈볼라가 납치한 군인 두 명의 석방을 넌지시 보장한다든가.

= 그건 무조건이 아니지. 우린 완벽하게 조건 없는 휴전을 제의한 상태다. 그런 건 휴전 뒤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먼저 휴전해서 시민 희생부터 줄이자는 게 우리 뜻이다.

형식상 이스라엘은 납치당한 군인 둘을 빌미로 공격을 시작했는데, 명분 없이 휴전을 하겠나?

= (말 자르고 흥분하며) 군인 둘 납치와 전쟁은 다른 사안이다. 전쟁을 그렇게 쉽게 벌이나?

그럼, 헤즈볼라는 군인 둘을 납치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 못했다는 건가?

= 세상이 모두 이스라엘을 예상할 수 있다. 레바논을 파괴시키겠다는 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걸 ‘새로운 중동’의 시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예상했으면서 왜 이스라엘에 말려들었는가.

= (얼굴을 돌려버리며) 이런 유의 대화라면 그만두자.

내 뜻은 헤즈볼라가 영리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스라엘에 전쟁의 빌미를 줬잖은가.

= 군인 둘을 납치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이스라엘에 아무 상관이 없다. 군인 둘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시민을 마구 죽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나?

= (좀 누그러지면서 겸연쩍은 듯 크게 웃고) 내가 당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렇다는 거다.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니 국제사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둘을 납치할 땐 전쟁을 예상했겠지? 나스랄라가 올해 두 번씩이나 이스라엘에 감금된 헤즈볼라 석방을 공언했고, 이번 작전명도 ‘진실한 약속’이 아니던가.

= 그게 어떻게 전쟁이 되어야 하나? 그러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일 권리가 있다는 건가? 이렇게 시민을 살해할 권리가 있다는 건가? 힘 있는 자는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건가?

그러면 계획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으니 이번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에 놀랐겠네?

= 왜 놀라나? 이스라엘은 늘 그런 식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이스라엘의 공격이 아니라 그런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다.

헤즈볼라는 전쟁으로 더 강해질 것

이번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나?

= 이스라엘이고 미국이겠지. 잃는 쪽은 레바논과 아랍 전체고.

그럼, 헤즈볼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가? 뭐 때문에 싸우나?

= 물리적으로야 헤즈볼라도 타격을 입겠지만, 우린 정신적인 것들로 계산한다. 우린 잃을수록 더 강해진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더 강해질 거고, 이스라엘은 결국 패하게 된다.

헤즈볼라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텐데, 장기전에 돌입한다면 버텨낼 수 있겠나?

= 어리석은 질문이다. 헤즈볼라의 역사를 봐라. 아랍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유일한 조직이다.

레바논이 다시 내전에 빠질 가능성은 없겠지?

=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 총리를 포함해 의회까지 모두 하나다. 내전은 없다. 적은 하나다. 이스라엘뿐이다.

동료 의원이 그의 방으로 찾아와서 자리를 털었다. “빨리 휴전하고 복구해야 할 텐데….” 인사랍시고 던졌지만, 공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정치는 현실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그이 말이 모두 옳을지언정, 이 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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