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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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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섹스로 봐주면 안되겠니

등록 2006-07-14 00:00 수정 2020-05-03 04:24

멜과 펨·돔과 섭이 교차하는 ‘SM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 최근 동호회·클럽 늘어… 상호 배려 없으면 성폭행에 불과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 변호사 사무실에 여비서가 새로 온다. 이 비서는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버릇이 있다. 이 자해 증상 때문에 정신병원에도 오래 있었다. 비서는 깔끔하고 멋지지만 사무실에서 동물을 학대하며 키우는, 어딘가 이상한 남자 변호사 아래서 일을 시작한다. 어느 날 변호사는 우연히 비서가 사무실에서 자해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변호사는 비서를 조용히 방으로 부른다. 비서를 책상에 엎드리게 한 뒤 비서가 타이핑한 문서에서 오타가 발견될 때마다 벌을 주는 의미로 비서의 엉덩이를 세게 내려친다. 비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성향 파악이 먼저

스티븐 셰인버그 감독의 영화 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질퍽한 본능의 향연장으로만 다뤘던 사도마조히즘을 로맨틱 코미디와 접목시켜 선댄스 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았다.

영화 속에서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즐기는 사디스트인 변호사(제임스 스페이더)와 마조히스트인 비서(매기 질렌홀)는 손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인 핸드스팽킹으로 사도마조히즘을 즐긴다.

둘의 관계에서 변호사는 사디스트이자 지배자의 역할을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변호사는 비서에게 “이 책상에 팔을 대고 앉아”라고 명령하고는 사라진다. 비서는 몇날 며칠을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변호사를 기다린다. 둘은 이렇게 명령과 복종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 속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너도 나처럼 상처를 내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구나.”

이렇게 직접적인 명령과 복종, 육체적인 가학과 피학은 성적 사도마조히즘(SM)의 모습이다. 성적 SM은 이 영화에서처럼 양쪽의 동의가 있어야 시작된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정보와 성향을 알고 시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게임이라는 의미의 플레이를 붙여서 SM플레이라고 한다. SM플레이의 속성을 잘 설명해주는 말은 BDSM이다. B는 결박(Bondage) 또는 관계(Bearing)를 뜻하고, D는 조련(Discipline) 또는 지배(Dominance)를 말한다. S는 사디즘과 복종(Submission)을, M은 마조히즘과 주인(Master)을 가리킨다.

자신에게 BDSM의 징후가 나타나면 자신이 어디에 열광하는지, 구체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SM플레이에서 사람들의 성향은 네 가지로 나뉜다. 권력을 가진 지배자는 돔(Dominance의 약자),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사람은 섭(Submission의 약자)이라고 한다. 남자는 멜(Male), 여자는 펨(Female)으로 일컬어진다. 그래서 남자 지배자는 멜돔, 여자 지배자는 펨돔, 남자 피지배자는 멜섭, 여자 피지배자는 펨섭이라고 한다. 돔과 섭을 번갈아가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되는 사람은 스위치(Switch)다. 돔 중에는 사디스트적 가학성은 없는 사람이 있고 섭 중에도 마조히스트적 피학성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성향을 알면 에스에머(SMer)로 거듭난다. 그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는, SM 취향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은 ‘바닐라’라고 부른다. 바닐라처럼 특유의 맛이나 향이 없다는 의미다.

“SM 취향 가진 애인 만나고 싶다”

SM플레이의 종류는 다양하다. 손바닥이나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고 밧줄로 묶기도 한다. 개처럼 네발로 걸어다니면서 지배자의 애완견이 되기도 하고 간호사와 환자, 선생님과 학생처럼 역할극도 한다. 이러한 SM플레이의 관계를 오래 지속할 경우 돔과 섭의 관계에서 발전해 주인(Master)과 노예(Slave)의 관계가 된다. 이들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서로의 동의하에 주인과 노예로 SM플레이를 즐긴다. 주인은 노예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노예는 주인에게 완전히 복종한다.

사도마조히즘은 아직 어두운 음지에 자생하고 있지만 SM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또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SM플레이 문화가 꾸준히 들어오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SM플레이를 변태적 성행위보다 솔직한 성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성인사이트 ‘남로당’ 김용석 사무총장은 “SM플레이를 성적 유희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역할을 바꾸는 SM플레이를 통해 억압된 것에 대한 반항이나 저항, 배반의 쾌락 등 형식을 전복시킴으로써 정신적인 즐거움을 얻는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SM동호회도 수십 개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의 동호회는 20~30명 단위의 작은 규모지만 몇몇 동호회는 회원 수가 1천 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은 동호회에서 SM플레이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SM플레이 상대를 찾기도 한다. 장정일이나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SM클럽도 서울, 부산 등지에 생겨나고 있다. SM플레이를 요청하는 고객이 많아 서울 강남의 몇몇 클럽에서 SM플레이를 서비스한다고 알려졌다. SM 용품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개목걸이나 가죽 수갑, 채찍, 배트 등을 파는 성인용품점 ‘부르르’ 관계자는 “SM용품 구입을 원하는 고객이 굉장히 많다”며 “SM용품 마니아나 SM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추정되는 고객들이 주로 개목걸이나 채찍 등을 많이 찾는다”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SM동호회에서 활동하며 SM플레이를 4년 정도 해왔다는 20대 후반의 남성 에스에머는 “사람들은 사도마조히즘을 즐기는 사람들을 변태라고 하지만 SM플레이는 내 성생활을 더 즐겁게 해준다”며 “나만의 성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SM플레이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스스로 멜섭이라고 말하는 그는 “벌받고 싶어하는 내 자신의 욕구를 알게 된 뒤 SM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나처럼 SM 취향을 가진 펨돔 여성을 애인으로 만나고 싶다”며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내게 맞는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의 흉내는 반드시 경계해야

아직 우리의 인식 속에는 SM플레이와 성폭행의 경계가 모호하다. 인터넷 SM동호회를 운영하는 30대 운영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없으면 SM플레이를 할 수 없다”며 “자기의 욕망만 채우려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SM플레이를 하면 그것이 바로 성폭행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대방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상대방의 의지에 반해 가학행위를 하는 것은 그저 폭행이나 성폭행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성년자들이 호기심에 SM플레이를 흉내내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의 성향을 정확히 모르는 청소년들은 SM플레이와 성폭력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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