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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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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력의 차이를 인정한다

등록 2006-07-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일본 스포츠 기자가 본 한국 축구…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심적 강인함… 일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선수들의 강인함과 뜨거운 응원문화가 부럽다

▣ 이즈미 다미오 스포츠부 기자

한-일 축구를 생각할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하루가 있다. 2002년 6월18일.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결승 토너먼트 1회전을 치를 때였다. 일본은 터키에 0-1로 패하고, 한국은 이탈리아를 2-1로 격파했던 바로 그날이다. 두 시합은 한-일 간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

2002년보다 경기 내용은 떨어져

일본은 그날 너무도 어이없게 졌다. 전반 1실점, 따라잡을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공격다운 공격을 못하고 어딘가 꽁꽁 묶여 있는 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체 왜였을까, 몇 가지 이유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밤, 한국 선수들이 그 답을 제시해주었다. 승리에 거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마음, 정신적인 강인함. 물론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심적’ 강인함의 차이를 느꼈다. 한국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연장전 끝에 물리쳤다. 동점골은 시합 종료 직전, 역전골은 연장전 종반부에 터졌다. 그 끈기와 운동량, 박력에 거의 닭살이 돋는 듯한 경이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4년.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떤 모습인가. 2002년 당시와 비교하면서 독일 현지에서 목격해나갔다. 한국은 사실 경기 내용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첫 번째 요인은 공격을 구성해나가는 힘이다. 토고전에서 고군분투한 박지성 선수. 날카로운 드리블이 상대의 집요한 파울로 제지당해도 과감하게 드리블하는 모습은 용감무쌍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돌파 이외에 기대했던 공격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후반 안정환 선수가 투입되면서 미드필드와 포워드의 연계가 조금씩 살아났으나, 대부분의 공격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종적 패스와 크로스로 던져넣는 단조로운 느낌으로, 팀적으로는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고자 고심하는 면이나 다양성이 적어 보였다.

히딩크 감독이 있던 4년 전에는 중반에 빠르고 짧은 패스를 많이 사용하고 상대를 가지고 놀기까지 했다. 사이드와 중앙에서도 곧잘 공격해 들어갔다. 사이드에 스피드 있는 선수를 배치해 상대편을 허무는 공격도 박력이 있었다. 풍부한 운동량, 스피드, 다채로운 패스워크, 정말이지 대단한 축구였다.

이번에는 팀을 만드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전에는 장기 합숙을 통해 팀을 운용했으나, 외국에서 뛰는 선수를 포함해 함께 합숙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으리라는 추측도 해본다. 이런 고민은 일본과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격력 저하라는 약점이 있음에도 한국은 매 시합을 승리로 이끌며 승점을 더하고 있다. 그것에 오히려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대를 점점 몰아붙여가는 정신적인 강인함, 최후까지 승리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 끝까지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체력, 1회와 2회전을 통해 이것이 한국 축구의 전형성으로 보였다.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오랜 감독 생활을 한 조셉 벤그로슈도 2회전을 “프랑스는 테크닉이, 한국은 체력과 스태미나가 우수했다”고 평가했다.

예로부터 “볼은 놓쳐도 사람은 놓치지 마라”는 말을 한국의 지도자들이 곧잘 언급했다고 한다. 요컨대 ‘일대일 싸움에서 절대 지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축구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선수 개개인의 생각에도 이것이 반영되고 있다.

이천수와 박지성을 보며 놀라다

2001년 12월, 한국에서 이천수 선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시 그는 상당히 두드러지고 심사가 강한 선수로 내겐 비쳐졌다. “2년 안에 유럽에 나가 나카타를 뛰어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나카타는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고의 일본인 선수였다. 그를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그는 “목표로 하고 있는 선수가 한국에는 없다고 했다가 국내에서 상당히 비판받았다”며 웃었다. 강한 마음이 말 구석구석에 넘쳐났다.

박지성 선수는 교토 시절에 만났다. 그는 매우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확실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꽃은 핀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것도, 참으로 그답다. 보통 때는 조용한 그가 시합에서는 돌변한다. 적극적으로 시합을 풀어나가는 것이 언제나 놀랍다. 박지성 선수 안에도 한국 축구의 전통이 살아 있는 것이리라.

물론 이번 한국 대표는 개개인의 기술도 높다. 팀적으로는 개개의 기술을 충분히 발현해내고 있지 못하나, 그것을 보완하는 체력과 정신력으로 국외 월드컵에서 첫 승을 올리고 강호 프랑스와도 무승부.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의 실력이 진짜였다는 것을 세계에 증명한 대회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일본은 4년 동안 지코 감독하에서 크게 두 가지 면의 의식 개혁을 재촉해왔다. 하나는 선수 스스로 생각하고 플레이를 하고 발언해나가는 것. 이를 위해 감독은 별로 참견하지 않고, 선수에게 자유를 주고, 그 발로를 지켜봤다. 두 번째는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였다. 실제 이 두 가지 원칙하에 종반에 승리하는 등, 믿을 수 없는 시합이 몇 번 있었다. 월드컵의 아시아 예선에서도 로스타임에 득점해 이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 수준에서 통용되지는 않았다. 특히 두 번째 요소는 아직도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는 선제공격을 하면서도 후반 39분부터 3실점을 했다. 물론 종반을 견뎌내는 체력 문제도 있었겠지만, 절대 그것만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포워드가 슛을 날리지 못하는 약한 모습이 엿보였다.

축구는 선수 간의 부딪침과 힘겨루기를 피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11명이 각각의 국면에서 진다면 시합에 승리하기 힘들다. 일본에 나카타처럼 심신이 강한 선수가 있으나, 다수는 그렇지 않다. 결국 4년 전의 과제가 이번에도 달성되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 일본과 한국의 큰 차이는 서포터의 열기다. 한-일 월드컵 때도 느낀 것이지만, 한국의 응원은 정말이지 델 정도다. 독일에 일본의 서포터가 한국 못지않게 와 있는데도 둘 사이에서 상당한 ‘온도차’를 느낀다. 프랑크푸르트 1차전 경기장의 응원,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시가지 중심부 뢰머 광장을 붉게 물들이는 ‘대~한민국’ 외침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한국은 아시아의 이탈리안?

어째서 이렇게 한국 서포터들은 뜨거울까, 한 한국인에게 물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나고 자란 박성관(35)은 “한국인은 여기서 아시아의 이탈리안으로 불린다. 정열이 넘쳐난다는 건데, 그 면이 일본 사람과 다르지 않나 싶다”고 했다. 한국인과 섞여 함께 기뻐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배트 웬코(34)는 “최근 15년여 동안 이뤄낸 경제발전이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준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과 프랑스전을 보기 위해 한국 내에서 70만여 명이 야외에서 응원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다. 그것도 새벽 4시부터. 일본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도 그렇게까지 응원하지 않는다. 부러울 뿐인 이런 ‘축구 열기’와 ‘축구 문화’가 앞으로의 한국 축구를 만들어나가는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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