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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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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겨울이 다가온다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야구전문가가 본 월드컵…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벌어지기 전까진 부러움의 대상… 축구가 야구보다 좋은 이유? 종목간의 국경을 없애고 스포츠의 흥분에 젖어보자

▣ 송재우 Xports 야구해설위원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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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혈된 눈, 시원한 맥주 한 잔, 떨리는 가슴, 흥분된 목소리, 서울시청 앞 광장, 붉은 옷의 물결. 나에게 월드컵은 이 모든 것의 결합으로 다가온다. 스포츠가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순수한 집중력과 단결심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을 최고로 극대화하는 단일 이벤트가 월드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리즈가 11월로 밀렸던…

야구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난 3월에 벌어졌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벌어지기 전까지 월드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잔치의 한마당을 펼치는 것은 분명 강 건너 아무개 집 잔치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비록 잔치의 맨 뒷자리라도 함께한다는 느낌은 가지고 싶으니까. 그런 순수한 열정을 야구에서도 느끼고 싶었고, 이제 막 첫걸음을 뗀 WBC로 그간의 갈증을 푼 것에 즐거웠다. 사실 월드컵 시즌은 다른 종목에는 재난이다. 다른 종목을 향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팀이 경기하는 날에는 국내 프로야구는 잠시 쉬기도 했다. 덕분에 스케줄이 뒤로 밀려 그 해 한국 시리즈는 추위에 떨면서 11월에 해야 했다. 당시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축구 때문에 야구가 피해를 본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얘기는 마치 최근 베이브 루스의 714호 홈런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배리 본즈가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 사용 파문으로 원정 경기에서 상대팀 팬들에게 심한 야유를 받지만, 그의 기록 경신 순간을 보기 위해 구장을 꽉 채우는 원정팀 관중의 심리와 흡사하지 않을까.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월드컵에서는 국경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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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앞두고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잊고 살던 국가의 존재를 되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 종목 사이에서의 이런 구분은 정말 원치 않는 사항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 골수 야구팬과 골수 축구팬이 인터넷에서 치열한 입씨름을 벌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종목의 예찬론을 펼친 적이 있다. 문제는 단순히 예찬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상대 종목을 깎아내리는 상황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축구가 야구보다 재미있는 100가지 이유’라든가 ‘야구팬들이 축구팬들보다 아이큐가 높다는 100가지 증거’ 등과 같은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야구 해설을 한다는 이유로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의아해하는 분이 의외로 많아서 당혹스러워했던 적이 꽤 된다. ‘좋다, 싫다’가 아닌 ‘좋다, 덜 좋다’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종목의 국경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좋다, 싫다’ 아닌 ‘좋다, 덜 좋다’

스포츠를 관람할 때 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정말 다양하다. 텔레비전 밖의 해설자처럼 모든 플레이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말을 극도로 자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형태든 자신의 스타일이다. 나에게 월드컵 관람은 소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쉬운 순간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심하게 젖히기 때문에 다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쿠션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주변에 컵이나 병이 있어도 위험하다. 실제로 순간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병을 깨뜨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흥분 없는 스포츠는 상상하기 어렵다. 훌리건 수준까지 되면 문제겠지만, 흥분에 최대한 몸과 마음을 맡긴 월드컵 시청은 나로서는 너무 자연스럽다. 소리지르자. 몸도 쓰자.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회 아닌가. 돌아오는 6월,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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