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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짓는다면 이런 싸움 안했다”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군·경의 강제집행 이틀전 모인 문정현 신부와 김지태·이상열 이장…‘대화 ’는 결국 명분쌓기용, 미군이 왜 이땅에 있는지를 제대로 밝혀라

▣ 사회·정리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회=지난 며칠 동안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왔다. 국방부는 지난 4월28일 주민 대표들에게 대화를 제의한 뒤 4월30일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는 주민 대표들과 “이번 문제는 대화로 해결하자”고 합의했다가 다음날 돌연 태도를 바꿔 “5월2일 오후 12시까지 농사 짓기를 중단하고 국방부의 기지 건설 준비작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대화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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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이하 이)=태어나서 62살 먹으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해본다. 애초부터 국방부가 주민들과 대화할 의지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오늘까지 주민들이 똘똘 뭉쳐 600일 넘게 촛불집회를 이어왔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백기 투항하라고 말한다. 아무리 주민들을 무시해도 이럴 수는 없다.

뭐 급하다고 공휴일에 보자고 하나

사회=처음 대화에 나서게 된 계기는 뭔가.

문정현(이하 문)=처음에는 기대도 안 했는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덕우 변호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 정태용 국방보좌관이 청와대와 다 조율이 됐고, 자신이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모든 것을 터놓고 대화하자는 뜻을 전해왔다. 대화도 한두 번 만나서 끝내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의제를 만들어놓고 얘기해보자고 했다. 선뜻 신뢰가 가진 않았지만, 뿌리치기도 힘든 제의였다. 이 변호사는 “정 보좌관이 진보는 아니지만 대화가 될 만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추천을 했다.

김=대화에 나서면 국방부에게 강제 침탈의 명분만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국방부에서 대화 제의가 왔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다. 그냥 믿고 나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대화 제의를 해온 4월28일 국방부는 경찰과 헬기를 동원해 미군기지 수용 예정 터에서 강제 진압 연습을 했다.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내가 나가게 돼 있었지만, 국방부 쪽 사과를 요구하며 다른 대표단을 뽑아 대화에 나서게 했다.

사회=그러다 일이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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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요일인 4월30일로 날을 잡는 것부터 석연치 않았다. 공휴일에 시간이 뭐 그렇게 급해서 보자고 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첫날에는 여러 성과가 있었다. 첫째 이번 갈등을 대화로 풀기로 했고, 둘째 대화 기간에는 대집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셋째 다음날 두 번째 약속을 잡았다. 우리와 합의한 내용을 보고하고 그쪽에서도 의견 조율을 하려면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김=대화하자는 사람들이 자세가 안 됐다. 5월1일 오후 5시에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같은 날 총리 주재로 오후 4시부터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는데, 그 내용을 보고 대화를 하든가 말든가 해야 할 것 아닌가. 처음부터 대화는 침탈을 위한 명분 쌓기였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사회=주민들의 싸움이 4년째에 접어든다. 치열한 반대운동이 더 많은 보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김=그 말만 들으면 정말 짜증난다. 우리 싸움이 이겨서 주민들이 이 땅에 계속 살게 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기다려봐라. 정말 우리가 많은 보상을 바란다면 마을 분위기가 초상집 같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잔치가 일어날 거다. 우리 싸움 이기면 소 잡겠다는 사람이 지금 5명이나 된다. 나도 한 마리 내놔야 한다.

문=나도 한 마리 쏴야 한다. 돈 500만원 걸었다.

김=그럼 여섯 마리 됐네.

이=5월7일까지로 예정된 행정대집행을 또 막아내면 5월8일이라도 한 마리 잡자고 했다.

김=그런 의견에 대꾸하고 싶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는 협의 매수를 하고 땅 팔고 나가면 큰 이익이다. 우리 투쟁의 진정성을 믿기 때문에 많은 시민단체 사람들이 함께해주고 있다. 우리 주장은 단순하다. 우리가 농사짓는 땅에서 대대로 계속 농사짓고 싶다는 것밖에는 없다.

‘확장 반대’에서 ‘미군 철수’로

사회=이번 싸움에는 주민들의 생존권 요구와 반미가 겹쳐 있다. 주민들은 미국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

김=솔직히 원수가 따로 없다. 그동안 원수는 그저 사상적인 개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겪어보니 아니다. 나를 괴롭히고 못 살게 하는 사람이 원수다.

이=국가 안보라고 해서 그동안 평택 사람들이 미군 부대를 옆에 두고도 많이 참아왔다. 매일 뜨는 헬리콥터와 비행기 소리에 귀가 멍해지고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별 불평 안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다시 우리 땅을 내놓으라니, 지금은 미국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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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음 투쟁에 나섰을 때 주민들의 구호는 “미군기지 확장하지 말라”였다. 그런데 싸움이 4년째로 이어지고 촛불 집회가 600일 넘게 계속됐다. 사람들의 고민이 근본적인 데로 이어졌다. 지금은 주한미군이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미국이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안 되는 존재라고 본다.

사회=왜 그런가.

김=여기 오는 군대의 주둔 목적은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군대의 주둔 목적과 다르다. 그전까지 있던 미군이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오는 미군은 다른 나라 싸움에 개입하기 위한 군대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땅을 뺏고 여기에는 왜 와 있는 것인가? 우리가 돈이 많아 미군들이 흥청망청 살 수 있는 휴양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냐. 주둔 목적이 사라졌으면 나가야지 왜 자꾸 남의 나라에 있으려고 하는가. 제 나라 군인들 월급 10만원도 못 주는 나라에서 왜 미국에게만 그렇게 퍼주는가. 우리가 잘살아서 미국 사정까지 봐주어야 하나.

문=미국 관련 문제로 10년 넘게 싸워보니 의식이 논리로 변하는 게 아니라 체험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향리 싸움 때 미군 폭격 훈련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면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폭격이 이어졌다. 효순이·미선이 때도 그렇고,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컸지만 결국 무죄 판결이 났다.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원의 출두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동맹 관계도 상호 인간적인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다. 거짓으로 동맹이 이어질 수 없다.

사회=미군 부대를 위한 토지 수용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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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가 발전을 위해 꼭 우리 땅이 필요했다면 이런 식의 싸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1952년 미군에게 한 번 쫓겨난 뒤 두 번째로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다. 이 땅도 원래부터 여기 있던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고단한 노동으로 직접 둑을 쌓아 막은 것이다. 목적상 모든 게 정당해도 양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일자리가 없어 공장을 만든다거나 아파트를 짓는다면 솔직히 대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미군 부대다. 당신들은 그것을 공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볼 때는 아니다.

조·중·동에 다시 상처받다

사회=주민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대단한 것 같다.

이=우리 얘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그렇다. 조·중·동이 이전에는 비우호적으로만 접근했다. 1만 명쯤 모였으면 5천 명이 모였다고 하고, 평화집회를 폭력집회라 하고, 우리가 더 많이 맞았는데 우리가 대나무로 때린 장면만 사진으로 찍었다. 오히려 이제는 국방부가 제대로 못한다고 야단치며 몰아붙인다.

김=언론에서는 시민사회단체를 외부세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미국과 국방부가 외부세력이다. 멀쩡하던 마을이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멀쩡히 있는 사람들을 꼬드겨 협의 매수에 응한 사람과 거부한 사람들 사이에 씻기 힘든 감정의 골이 파였다.

사회=어찌됐든 며칠 안에 침탈이 예상된다.

이=지난 세 번의 침탈로 많은 주민들이 다쳤다. 특히 3월15일 두 번째 침탈 때는 도두2리 아주머니들이 많이 다쳤다. 마을 이장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낫다. 내 나이 62살에 처음 사람들 붙잡고 울었다.

문=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그들이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당해낼 힘이 없다. 고령의 주민들이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이라도 노무현 정권이 제정신을 차리고 야만적인 강제 침탈을 멈춰주길 바란다. 제발 부탁이다.



“보상 얘기를 하러 만났다”

국방부 박경서 소장이 대화결렬을 선언한 이유

박경서 미군기지 이전사업단 창설준비단장(육군 소장)은 5월1일 저녁 9시 경기도 평택시청에서 평택 주민들과의 대화 결렬을 선언하며 “애초 계획했던 대화 주제인 주민 보상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한 채 주한미군 감축·재배치에 대한 공방만 오가 대화 진행에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주민들과의 대화에 나선 국방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부 부처의 하나로서 국방부는 한-미 간의 합의를 거쳐 국회 비준을 받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사업을 뒤집는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민 대책위 쪽은 사업 재검토 등 국방부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해 대화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주민 보상, 생계 보장, 이주 문제 등 실무적인 주제에 대해 얘기하러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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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제안은 무엇인가.
=첫째 주민 보상만을 대화의 범위로 정하고, 둘째 기지 조성을 위한 측량 등에 협조하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행정대집행과 철조망 설치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셋째 5월2일 오전까지 이 제안을 받을 것인지 답변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런 문제만을 놓고 대화를 할지 안 할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주민 쪽에서도 어려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 본다.
국방부는 주민들과 성실히 대화했다고 말할 수 있나.
=서로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까지 주민들을 100여 차례 만났다. 협의매수를 80% 이상 했고, 반대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탁금을 수령해갔다. 국방부는 이 정도면 주민들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 시책에 잘 협조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반대쪽의 일부 주민들과는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많이 못했다. 그것을 하자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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