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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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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돌이킬 수 없으리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지막 밤을 지새고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몸으로 쓴 ‘평택 사태’의 기록…“억울해서 못산다” “모두를 죽이고 가져가라” 삶을 빼앗긴 농민들의 절규

▣ 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그날 저녁, 대추리 주민 엄팔복(70)씨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초등학교 정문을 쇠사슬로 칭칭 걸어잠갔다. 그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50년 전 이곳 대추리로 이사왔다. 노인은 “이래 봬도 젊은 놈들 서너 명은 끄떡없다”고 말했지만, 눈은 불안으로 충혈돼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부친과 고생해 땅을 많이 사 모았지만, 1970년대 평택을 휘몰아친 대규모 토지 분쟁인 ‘동백흥농계’ 사건에 휘말려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는 “정말 내일 군대가 오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최후통첩, 15시간의 고민

5월3일, 저녁 어스름을 타고 전국의 노동자·농민·학생·평화 활동가들이 대추초등학교로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1천여 명의 시민들은 이날 밤 10시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평화의 땅 사수 결의대회’에 참가해 “야만적인 행정대집행을 멈추라”고 외쳤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노무현 당신!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지 생각해보라”고 외쳤고, 방송 3사 기자들이 그 장면을 배경 삼아 뉴스를 내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앞에서 자리 다툼을 벌였다. 학교 앞에 모인 학생들은 <농민가> <반전반핵가>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밤을 새웠다.

김택균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우리도 싸우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침탈이 시작되기 6일 전에 주민 대책위 쪽에 대화 제의를 해왔다. 국방부는 주민들과 두 번의 만남 끝에 “농사를 중지하고, 국방부의 기지 건설사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대화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해왔다. 그들의 최후 통첩 날짜는 5월1일 저녁 9시였고, “회신을 해달라”는 날짜는 다음날 낮 12시였다. 그 15시간 동안 주민들의 머릿속을 오갔을 비참함을 기자는 헤아리지 못한다. 주민들은 “국방부와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대추리 노인들은 이날 오후 1시 대추리 노인회관 2층에서 주민 총회를 열었다. 주민 65명이 종이를 찢어 무기명 투표를 벌였다. “끝까지 싸우자”는 주민이 54명, “싸우지 말자”는 주민이 9명, 무효표가 2표였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오후 4시 문정현 신부는 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어코 올 날이 왔다”며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5월4일 새벽에 국방부와 경찰의 침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찰의 애초 작전 개시 시간은 ‘새벽 4시30분’이었다. 경찰은 안전 사고를 걱정해 일정을 늦췄다. 경찰은 새벽 5시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날 ‘작전’을 위해 경찰 110개 중대 1만1500명, 수도군단·700특공연대 2개 연대 2800여 명, 용역업체 직원 600명을 동원했다.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첫 충돌은 대추초등학교 정문 앞에 뚫린 미군부대 쪽문에서 시작됐다.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학생들은 쪽문 앞에 차를 대놓고 경찰의 침탈을 막았다. 경찰이 방패로 사람들을 찍어누르며 맹렬히 돌진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아침’의 이빨이 깨졌고, 울산에서 올라온 노동자 이상수(36)씨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최철호(31)씨는 오른쪽 눈밑, 전남대 강아무개(26)씨는 경찰이 던진 돌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스무 명 넘는 시민들이 다쳤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20년 전과 어쩌면 저렇게 달라진 게 없냐”며 가슴을 쳤다. 마을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외쳤지만, 호소가 폭력을 막을 순 없었다. 경찰은 기자들의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옥의 1층, 학생들이 피 흘리다

시민들을 몰아낸 뒤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대추분교를 점거하고 경찰의 출입을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공무집행 방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저 멀리 도두리 벌판에는 국방부가 병력 2800여 명(보병 2천여 명·공병 600여 명·헌병 150여 명·의무병 60여 명 등)과 용역직원 700여 명을 투입해 주민들의 농사를 막기 위한 철조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군대는 보트를 타고 안성천을 건넜고, UH-60 헬기에 철조망을 매달아 전달했다. 시민들을 밀어낸 경찰 1만여 명은 초등학교 주변을 둘러싼 채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랬다.

국방부는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한-미 간의 합의 사항이고,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어왔다. 그 말에 토를 달긴 힘들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미국을 상대로 얼마나 훌륭한 협상을 했을까. 미국은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서 대추리 땅 24만 평을 달라고 했다가 2003년 4월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을 추진 중”이라며 기지 제공 면적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애초 합의안은 312만 평이었다. 이후 미국은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땅 30만 평을 추가로 요구했다. 상식 밖의 행동이었지만 미국의 요구는 관철됐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모두는 우리 정부가 떠안게 됐다. 언론들은 “협상이 잘못됐다”고 대서특필했지만, 국방부는 말이 없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5월3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팽성 대책위 주요 핵심간부들의 평균 보상금은 19억2천만원에 이르는 등 사실상 백만장자”라고 말했다.

빵을 다 먹은 경찰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초등학교 사방을 포위하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침탈은 아침 9시15분에 시작됐다. 학생·노동자·농민들이 대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경찰에 저항했다. 그들의 막대기는 경찰의 곤봉과 방패를 당해내지 못했다. 저항은 쉽게 진압됐다. 경찰은 충돌 5분 만에 시민들의 방어망을 뚫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접수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개떼처럼 쫓겨나 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아비규환이었다. 경찰들은 학생·노동자·평화활동가 600여 명이 몰려 있는 대추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젊은 학생들이 방패에 머리를 찍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누군가 “여기 학생 손가락이 잘라졌다”고 외쳤다. 그는 경찰의 발길질 세례를 받으며 학교 밖으로 긴급 후송됐다. 경찰은 1층 복도 왼쪽 벽 합판을 방패로 때려 부수고 학교 안으로 난입했다. 안경을 쓴 학생 한 명이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잘못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를 둘러싸고 경찰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옮겨간 아파트는 관리비만 30만원

경찰은 저항 능력을 잃은 학생들에게 철제 의자를 휘둘렀다. 보다 못한 기자들이 전경을 막아섰다. 경찰들은 기자들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전경을 제지하러 다가섰지만, 경찰들은 “지금 나를 협박하냐”며 인권위 직원을 곤봉으로 위협했다. 경찰 간부들은 전경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추초등학교 접수를 위해 전경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을 취재하던 일본인 모리 기쿠코(29)씨가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성호 <시민의 신문> 기자가 경찰 간부에게 “부상자가 있으니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말했지만,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물러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쳐 쓰러졌는지 일일이 세지 못한다. 학생 400여 명이 경찰에 쫓겨 대추초등학교 2층으로 피신했다. 학생들은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국방부가 자기 나라 국민들을 이렇게 다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지켜보는 일은 난감했다. 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모임을 만든 것은 2003년 7월이었고,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은 2004년 9월1일이다. 국방부가 주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면,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3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군대를 투입해 자국민들을 몰아세웠다.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것은 국방부의 태만이거나, 무능력이거나, 업무 방기거나 그 모두를 합한 것이다. 국방부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신념을 좇아 초등학교로 몰려든 젊은이들의 육신에 전가했다. 젊은이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날 상황을 지켜봤다. 삶은 그들에게도 고난의 연속이다. 대추리에 살던 ‘이슬이네’ 할머니(65)는 국방부가 준 보상금을 곶감 빼내듯 쓰며 살고 있다. 그는 낡은 집 한 채를 보상받아, 1남 4녀 자식들에게 모두 빼앗겨버렸다. 그는 전세 6500만원을 주고 평택 객사리 우미아파트에 산다. 전세돈 가운데 5천만원은 국방부가 무이자로 융자해준 빚이다. 그는 “전세 자금을 그냥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대추리에서는 내 한몫하면서 편히 사는데, 여기서는 매달 관리비만 30만원이 나오니 어찌 살아요!” 정부는 농사짓는 주민들을 위해 충남 서산 간척지에 땅 150만 평을 준비했지만, 주민들의 호응은 높지 않다. 대추리 이장을 16년 동안 지낸 임정석(64)씨는 “그곳 땅은 척박하고 너무 멀어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직업을 잃은 농부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말했지만, 직업을 얻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토끼몰이가 끝난 뒤 점심시간이 되자 경찰들은 초등학교 곳곳에 마련된 그늘을 찾아 밥을 먹었다. 냉동 밥차가 찾아와 경찰들에게 새미도시락·지리산천년수·오란씨가 담긴 상자를 내왔다. 전경들은 방패를 무릎에 얹어 도시락에 담긴 고추장·김치·시금치·풋고추·미역국·잡채·새우맛살튀김·방울토마토 두 알을 먹었다. 김기옥(37)씨는 노인정에서 하루 종일 쌀을 씻었다. 그는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며 하루 종일 울며 쌀을 씻었다. 그는 아침에는 김을 싸 주먹밥을 만들었고, 점심 때는 콩나물 비빔밥을 만들어 봉지에 담아 학생들에게 건넸다. 그는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대추리 새마을지도자 신종원씨와 결혼했다. 그는 ‘평화바람’ 활동가들과 솔부엉이 방송국의 아나운서를 맡아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그는 “처음에는 싸우는 게 두려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줘 힘든 줄 모르고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사복 경찰들이 다가와 김씨가 만든 주먹밥을 먹으며 전경들을 지휘했다.

“오늘 물러서면 내일 미군 땅이 되잖아요”

학생들이 밀려난 초등학교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포클레인을 몰아 학교 주변에 있던 콘크리트 이승복상·사자상·은행나무들을 뽑아냈다. 김금순(72) 할머니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해서 못 산다. 당신들은 내 맘을 모른다”며 울었다. 학교 소사였던 할머니의 죽은 남편이 뽑힌 나무를 심고 평생 가꿔왔다. 그는 1968년 대추리로 이사와 11년 동안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 그의 남편은 객사리 부용초등학교로 임지가 바뀌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 사고로 숨을 거뒀다. “한창 저기할 땐 촛불집회하고 와서 아저씨 환갑 때 찍은 사진 보고 나 혼자 그러는겨. 여보 나 좀 데려가. 나 좀 데려가. 혼자 드러누워 있으면 뭐혀. 밤은 길고. 난 사람들 다 나가도 젤 끝까지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상에 어디 가 못 살아.”

오후 1시가 되자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추초등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선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최후 농성을 하고 있었다. 2층에 갇힌 학생들은 초코파이와 생수를 나눠마시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공주교대에서 온 한 학생은 “곤봉 들고 쳐들어오는 전경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면 내일 이곳은 미군의 땅이 되잖아요.” 학생 대표들은 “오늘 연행되면 절대 묵비권을 행사하자”고 결의했다.

밥을 다 먹은 전경들이 2차 작전에 돌입했다. 경찰은 깨진 초등학교 창문을 통해 물대포를 발사하며 건물 난입을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학생들의 저항은 1분이 못 돼 쉽게 진압됐다. 경찰들은 학생들을 하나하나 잡아 끌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인순(71) 할머니가 경찰들에게 달려들어 “저 애들이 무슨 죄가 있냐”며 울었다. 저 멀리 안성천 쪽으로 노을이 지고, 문정현 신부 등 옥상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은 “잡혀간 시민들을 불구속한다”는 조건으로 오후 6시께 내려왔다. 신부가 건물을 떠나자 포클레인이 달려들어 초등학교 건물을 작살냈다. 범대위는 이날 경찰의 강제 침탈로 524명이 연행되고, 20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싸움은 이것으로 끝났을까.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직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군사보호시설 구역 지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주민들은 노인정 옆에 마련된 평화예술공원에서 610일째 계속된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를 띄워 “이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당신, 이제 치유의 길은 없습니다.

더 이상 조롱하지 말고, 그리고 더 이상 고통 주지 말고 더 이상 기지 이전문제 지연되지 않게 모두를 죽이고 당신 뜻을 이루십시오”라고 적었다. 이제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6월30일까지 집을 비우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대추초등학교에서 그랬듯,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을 강제로 허물고 주민들을 길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마지막 마을 잔치의 아름다운 모습들

5월3일 대추초등학교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주민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마을 잔치를 열었다. 대추리로 이사온 지킴이들이 모여 만든 ‘대추리 중창단’ 멤버 미희·재연·민진씨는 시민단체 활동가 ‘돕헤드’가 만든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다. 노래는 2004년 5월29일 평택 평화축제 때 문정현 신부의 발언 내용을 곡으로 쓴 것이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맹꽁이·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노래를 들으며 시민단체 활동가 차미경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가 아이를 안고 610일째 촛불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 앞에서 춤을 췄고, 도두2리 이상열 이장이 “한 번 더”를 외쳤다. “평생 죽도록 알만 했다”는 이민강(67) 아저씨가 ‘평화 그 먼 길 가다’라고 쓰인 펼침막에 기대어 졸며 박수를 쳤다. 610일 동안 계속된,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하루가 저물었다.



[들이 운다]마지막으로 학교 한번 본다는데…

이놈들아 우리가 다 돈 내서 지은 겨, 왜 못 들어가게 해?

▣ 황필순(76)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9

포클레인이 대추초등학교를 부수기 시작했을 때 황필순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다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경찰은 할머니를 막았고, 방패에 가로막힌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아냈다.

부수기 전에 들어가서 한 번 보고 나온다는데 왜 못 들어가게 혀. 사람이 그래도 인정이 있으면 내가 잠깐 들어가서 보고 나온다는데 뵈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여? 건물 부수기 전에 내 너무 아까우니께 얼굴이라도, 건물이라도 잠깐 보고 나온다고 했어. 그런데 이 염병할 새끼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겨. 그러니 내가 얼마나 분통 터져. 아이고. 너무너무 억울혀. 아이구 이놈들아. 너희 사는 집을 때려부수면 좋겠냐. 이게 무슨 일이여. 청천벽력이지. 너희놈들은 눈물도 없냐. 내가 저 건물을 한 번 쳐다본다는데 왜 못 보게 혀. 왜 못 보게 혀. 왜.


나는 지금 80살이 다 됐어도 이런 꼴은 생전 처음이야. 내 정신으로 6·25사변을 겪었어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여. 학교 짓는 것도 냈지, 노인정 짓는 것도 냈지. 다 대추리 사람들이 돈 내 가지고 지은 겨. 대추리 사람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디. 그런데 지금 이 지랄을 하니.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시어머니가 맨날 우리 며느리 같은 것도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점심도 거르고 일해서 모았는데. 한 끼라도 아껴가며 땅 사려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디. 너무 아까워서 어떡해. 이놈들아. 자식들 파릇파릇 자랄 적에 목숨 자르는 거랑 똑같은 거여. 저 나무에서 가을에 은행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왜 나무를 저놈들이 죄 자르고 지랄이여. 가슴이 뛰어서 못 살겠어. 경철 할아버지가 옛날 이 학교 소사 볼 적에 나무 다 심은 겨. 얼매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디. 저 나무들 다 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디. 말도 못해. 세상에 대추리가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어.
우리 큰아들은 계성국민학교 다니고 그 밑에 애들은 다 이 학교 다녔어. 우리 작은아들이 2회 졸업생이여. 내가 애들 어떻게 가르쳤는디. 농촌에 살아도 애들 가르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디. 나는 못 배운 한으로. 나는 초등학교도 못 배웠어. 내가 못 배운 한으로 글을 제대로 못 봐서 속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이제 다 늙었으니께 그만이지만 젊어서는 못 배운 게 얼마나 한이 되고 분통 터지는지 알아. 이 우라질 놈들아. 아이구 하느님도 무심하지. 설마 설마 했지.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강제집행을 한대두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아이고 분해여. 강도 잡으랬지 누가 사람 잡으랬어. 이놈들아, 야 이놈들아. 우리들은 다 한이 맺혀서 이러는 겨. 이 개 같은 놈들아.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국방부와 대추리 주민, 어떻게 생각이 다른가?


#평택기지 확장 문제
국방부=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한-미 간 협상이 요구되는 사업 성격상 국가 간 협의 완료 → 국회 비준 동의 → 주민 협의 순으로 진행
주민과 범대위=사전에 주민 동의 없이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법적 절차만 밟고 두세 차례씩 쫓겨난 주민들을 내쫓음
#보상금 및 대체농지 문제
국방부=토지 감정평가 평당 15만~18만원, 서산 간척지 57가구 83만 평 제공, 서산 땅은 옥토
주민(협의·미협의 포함)=대추리 주변 평균 농짓값 시세인 20만원 이상, 3시간 거리인 충남이 아니라 평택 인근 경기도 내에 대토. 서산은 대토 규정상으로도 편법이며 사실상의 자갈밭, 노인들은 농사 포기에 따른 생계대책 마련 필요
#이주단지 문제
국방부=평택 3곳에 올해 말 택지 공급 예정, 국제화 계획지구 내에 택지 공급
주민들(협의·미협의 포함)=국방부와 평택시 다툼으로 부지 매수조차 안 돼, 부지에 따라 입주 연도도 제각각 다르고, 협의매수에 따른 보상비용으로는 이주용지와 주택 건축 비용 자부담 어려워
#반대 주민과 대화 노력
국방부=찬성·반대 주민과 45회 간담회, 150차례 이상 정부 대책 설명
범대위·주민=반대 주민과 공식적 대화는 지난 4월30일 단 1회뿐. 협의매수에 응한 주민과 일부 반대 주민들을 사적으로 만난 것을 대화로 호도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만 몰두
#영농행위 문제
국방부=법적 절차에 따라 국방부 소유, 일체 행위 불법, 영농행위 허용시 미국 쪽으로부터 기지이전 사업 추진 의지 의심받아
주민·범대위=토지 소유권 이전 불인정, 경작 보상금 수령한 적 없는 만큼 영농행위 정당
#평택 미군기지 종합실시계획(MP)과 미군 배치 정당성 문제
국방부=종합실시계획 6월에서 9월로 늦춰짐. 그러나 9월부터 본격 공사를 위해 이전에 측량과 지반조사 등 준비작업해야. 재배치 정당성 문제 제기는 기지 이전을 연기하려는 속셈이며 평택으로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는 범대위에서도 용산 철수를 주장한 사안으로 북한 견제 의도
범대위=2008년까지 미군 용산기지 평택 이전 물리적으로 불가능, 주한미군 쪽의 지상군 추가
감축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평택 미군기지 확장 규모의 적정성 논의와 미군 재배치는 북한의 남침 저지가 아니라 미군의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고 한반도 전쟁 위험 높이는 것




“오히려 홀가분하다”

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승리라고 말하는 김지태 이장

▣ 평택=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이튿날인 5월5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와 학생들 1500명이 철책선을 뚫고 대추리 마을로 몰려들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지태(44) 이장은 마을에 나가 이들을 반길 수 없었다. 그는 이날 마을 모처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취재진과 만났다.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때는 어디에 있었나.
=그때도 나가지도 못하고 오늘처럼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는 정부가 어떻게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나?
그렇게 하루 만에 강압적으로 해치울 것이라고 예상했나.
=이번은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얘기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농토까지 쑥대밭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농토가 쓸모없게 됐으니, 이제는 농사지으랴 싸우랴 두 일 하느라 바쁘지 않을 것이다.
한나절 만에 무너진 학교 건물을 보고 충격이 컸을 텐데. 주민들의 동요는 없나.
=어제 행정대집행이 끝난 뒤 몇몇 주민을 만났다. 다들 힘이 빠져 있더라. 심리적 공황 상태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싸움에 대한 의지보다는 증오감이 읽힌다.
국방부는 충분한 보상금을 주고 이주 지원을 해주겠다는 입장인데.
=우리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03~2004년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협상할 때 당사자인 우리가 계속 반대했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행동이 정당했다면 기꺼이 마을을 떠나겠다. 주한미군을 인정한다고 치자.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있는 것 아니냐? 그럼 휴전선 근처에 있어야지 왜 이곳으로 오겠다는 건가? 그러나 국방부나 언론은 그런 얘기는 듣지 않고 보상금 이야기만 한다. 우리는 보상금을 바라지 않는다. 보상금을 원했다면, 위장전입 세대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위장전입 세대가 있을 때 쫓아내기까지 했다.
앞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곧 대추리 마을로도 침탈이 들어올 텐데.
=물러설 데가 어디 있나. 마을과 집을 때려부수면 끝나겠지. 역사는 그렇게 정리될 것이다. 대응책은 없다. 당하는 수밖에. 우리가 억울해서 무기를 드는 순간 군인들은 더 큰 무기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몸뚱이 하나하나가 무기다. 우리는 그렇게 지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승리할 것이다.




부상자 통계, 소가 웃을 일

어처구니 없는 경찰쪽 주장, 범대위는 “시민 200명 부상” 밝혀

5월4일 대추분교 유혈진압의 당사자인 경찰이 내놓은 부상자 통계를 보고 처음 나온 것은 헛웃음이었다. 경기경찰청은 이날 무력 충돌로 경찰에서는 26명이 중상, 111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밝혔고, 시위대에서는 7명이 중상을 입고 86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날 현장 상황을 봤던 사람이면 경찰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온몸을 방어 용구로 중무장하고 방패와 곤봉을 든 1만 명이 넘는 훈련된 전경이, 방어구 없이 대나무 막대기를 손에 든 1천 명의 오합지졸을 상대로 그렇게 많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경기경찰청 경비 파트 간부들은 단체로 시말서를 써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도 5월5일 발표한 자료에서 “시민 쪽에서 2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났다”며 “경찰이 자의적으로 경찰 부상자만 높게 계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시민 부상자들은 방패와 돌에 의해 머리를 비롯해 얼굴을 다친 사람이 많아 이날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대추초등학교 진압 현장을 관찰한 박순희 경찰 인권위원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이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방패로 찍히는 바람에 코뼈가 내려앉고, 안면 부상을 무척 많이 당했다. 피바다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다”며 “인권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진압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세다. 경찰은 5월5일치 내부 보고서에서 “일부 언론에 경찰의 과잉 진압이 강조돼 보도됐지만 어린이날 연휴로 (부정적인) 관련 보도가 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부정적인 보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상 전·의경이 인터넷에 직접 댓글을 달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마크 트웨인의 말대로 세상의 3대 거짓말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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