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오순도순 TV 연예 프로그램을 보며 화목을 다지던 때가 꽃시절이었네… 포털 뉴스가 출근 인사를 대신하고 연예 뉴스가 재미없는 날은 인생이 무료해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연예뉴스였다’라면 ‘뻥’이지만, 연예뉴스를 빼고 나의 인생을 논하기도 어렵다. 우리 집 가훈이 ‘하루라도 연예뉴스를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면 역시 뻥이지만 연예뉴스를 빼고 훈훈한 가족사를 전하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나는 초딩 시절부터
어느 저녁,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연예가중계>를 보면서 연예인들을 ‘씹다’ 보면 오순도순이라는 의태어는 추상의 단계에서 내려와 마침내 구체적 실체를 얻었다. 그리하여 훈훈한 집안 풍경으로 살아나곤 했다. 연예뉴스를 볼 때면 가족의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동일성도 모처럼 확인됐다. 정치적 입장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웠던 어머니와 아들의 연예적 관점은 대부분 동일했고,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딸들은 모처럼 흥겨운 추임새를 넣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리하여 <연예가중계>를 보던 1시간만은 ‘가화만사성’하다 못해 ‘수신제가치국평천하’까지 할 기세였다. 그렇게 내 사춘기의 한때는, 우리 집의 저녁은 아늑해지곤 했다. 1990년대 들어 <연예가중계>에 이어서 문화방송 <섹션 TV 연예통신>, SBS <한밤의 TV연예>가 생기고, 더구나 친절하게도 그들이 방영 시간을 달리해주니, 가족의 밤은 더욱 자주 아늑해지곤 했다.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간다
그놈의 회사가 문제다. 내가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정의 평화는 깨졌다. 평일에는 밤근무, 주말에는 밤마을이 잦아지면서 연예뉴스 프로그램은 외면당했다. 평화가 깨지자 화가 난 동생들은 결혼을 해버렸고, 아들과 단둘이 살게 된 어머니는 진정한 독거 노인이 됐다. 그렇게 무료한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은 잠들었던 나의 ‘호사가 본능’을 흔들어 깨웠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주의 문화뉴스를 정리해서 리포트를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게 웬 떡! 연예뉴스도 보고 떡고물도 생기니 꿩 먹고 알 먹고 아냐. 날름 “하겠다”고 답했다. 뒤늦게 한 주의 문화뉴스를 어떻게 정리하나 걱정이 밀려들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리하여 연예뉴스 중독이 도졌다. 시사회에 다녀온 영화 한두 편을 리포트해도 방송 시간 10분은 끝없이 길어서 하염없이 시간이 남았다. 역시 포털 사이트가 구세주였다. 포털의 첫 화면에 떠 있는 연예뉴스는 빼먹기 쉬운 곶감이었다. 실시간 연예가 중계를 하니 시의성도 적절한데다 주요 뉴스를 클릭하면 바로 아래에 관련 뉴스들이 줄지어 곶감처럼 엮여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포털이 뉴스를 오묘하게 편집하듯 포털 뉴스를 오묘하게 편집해서 방송했다. 이렇게 방송을 하는 날이면 팀장 눈치와 편집장 감시를 피해 몰래 연예뉴스를 클릭했다. 처음에는 목요일이었으나 나중에는 매일이었다. 기사거리를 찾지 못해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취재를 하다가 한숨 돌린다는 명분으로, 기사 작성을 끝내고 머리를 식힌다는 기분으로 인터넷 연예뉴스에서 안식을 얻었다. 아니 보지 않으려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트북을 켜면 포털이 뜨고, 언제나 연예뉴스가 요염한 제목으로 유혹했다.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갔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 채림하고 이승환이 이혼했어?” “오늘은 김종국이 입대하는 날이네.” 포털 뉴스로 출근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하여 김재록의 남자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말아먹었는지는 몰라도, 심은하의 남편이 어떤 집안에 어느 학교를 졸업한 어떤 남자인지는 아직도 기억한다. 원래 중독자는 합리화를 좋아한다. ‘그래, 나는 문화기자잖아. 이건 업무의 일부라고.’
아찔한 오보 사태, 섬뜩한 기사 게재
방송에 ‘애로점’도 있었다. 최소한 몇 개의 기사를 다각도로 종합 정리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했지만, 현실은 사명감을 받쳐주지 않았다. 그날의 주요 연예뉴스로 검색을 하면, 내용은 물론 제목마저도 비슷한 기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주제를 모르는 기자, 분기탱천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동소이한 기사가 줄지어 늘어선 화면은 모든 채널에서 똑같은 중계를 하는 것과 같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똑같은 기사에 지쳐 다른 포털로 가본다.
‘네이버 → 다음 → 파란’으로 가보지만 역시 대동소이하다. 결국은 ‘파란 → 다음 → 네이버’로 돌아온다. 인터넷 연예뉴스 덕분에 오보 방송을 한 적도 있다. 김종국과 조성모가 동반 입대를 했던 3월30일, 김종국 일행의 승용차가 논산훈련소 정문에 10분 늦게 도착했다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기사는 ‘알고 보니’ 김종국이 취재진을 따돌리고 2시간 전에 먼저 부대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마침 방송날이어서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음날 뉴스에는 실제 10분 지각했다고 바뀌어 있었다. 누구를 원망하랴, 내 탓이지. 어쨌든 오빠들을 보내는 애절한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퍼졌다. 목놓아 불렀던 이름이 몇이더냐. 고수, 윤계상, 연정훈, 문희준, 원빈…. 다 연예뉴스 덕분이다. 어느 날은 집에서 연예전문 채널을 보다가 슬며시 소름이 돋았다. 어디선가 분명히 들었던 이야기를 사회자가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꿈을 꿨나? 이게 웬 데자뷰(기시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인터넷으로 읽었던 뉴스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방송은 재방송이었고, 이미 스크립은 포털에 떠 있었으며, 나는 활자를 먼저 읽고 방송을 본 것이다. 허걱 재방송!
포털을 보다가 섬뜩한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쓴 신인 개그우먼 기사가 포털 첫 화면에 떴다.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가문의 위기로 바뀌지 않을까 두려웠다. 댓글, 댓글이 두려웠다. 옥에 티라도 찾아내는 네티즌 아니던가. 올려주신 것만도 영광이니 빨리 내려달라고 포털에 전화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히 댓글을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동료가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기사에 대한 왈가왈부는 별로 없고, 기사에 등장한 개그우먼 중 누가 더 웃기는가로 갑론을박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가문의 위기는 지나갔다. 연예뉴스의 홍수는 소비 행태도 바꾸었다. 유행이 기사를 만들던 시대는 거했다. 이제는 기사가 유행을 만든다. 현영의 노래를 알고 나서 현영의 노래가 유행이라는 기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영의 노래가 유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 현영의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나는 그렇게 <누나의 꿈>을 알았다.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가 나왔던 방송을 보지 않아도,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 기사는 보게 된다. 이렇게 초고속 기사는 유행을 추월해버렸다.
주변의 중독자들을 찾아보자
가련한 중독자여, “나 돌아갈래~” 아무리 외쳐도 이미 늦었다. 지금은 24시간 연예가중계 시대라니까.
P.S 남종영 기자는 일해야 하는데 자꾸 보게 된다면서 “업무 방해야”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는 연예뉴스가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다면서 “종량제를 실시해야 해”라고 주장했다. 혼자서 중독됐다고 고민하지 말고, 주변의 중독자들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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