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연예 기사 쏟아내는 신형 엔진, 시민들의 무의식과 일상을 지배… 언론은 황폐해지고 사회적 소통은 참담해지는데 비판의 목소리 들리지 않아
▣ 원용진 서강대 교수·언론학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서양의 핼러윈 파티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복장은? 드라큘라나 좀비 복장도 모습을 드러내지만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에는 미치지 못한다.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 핼러윈 복장의 주류가 된 데는 미국 베이비부머들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자신이 즐겨하던 만화, 영화 속 주인공들을 생활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현실과 대중문화를 범벅시켰다. 베이비부머 이후 스타, 연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억의 원천이 되고, 생활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몇몇 사상가들은 베이비부머들의 역사적 무의식에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혹 그들의 역사적 무의식이 픽션 안의 스타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옛일을 역사적 사건과 함께 떠올리던 과거 인류와는 달리 영혼까지 상업적 의도에 잠식되지 않았을까 걱정한 셈이다.
가장 큰 매력, 가벼움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의 기억법도 점차 베이비부머들의 그것과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면서 같은 시간을 살았음을 확인하는 젊은이들, 자신의 일생사를 좋아했던 스타를 중심으로 엮어내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사회적 파장, 정치적 굴곡, 경제적 사건과 자신의 과거를 대비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던 사람들은 이제 이 땅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 속에도 연예 이야기는 꼭짓점이 되고 있으며, 다른 기억들을 이끌고 있다.
그같은 현상에 제동을 걸 장치들은 부재하고 가속시키는 장치들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을 정복해버린 매체들은 연예 소식에 미쳐 있다. 텔레비전은 아침부터 자정까지, 심지어 뉴스 시간까지도 그에 집착하고 있다. 연예 기사만을 전달하는 전문 채널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거리를 둘 것 같았던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 섹션이 강화되면서 연예기사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인터넷으로 가면 사정은 더 심각해진다. 인터넷, 그 안의 포털을 들여다볼라치면 그것은 마치 문제의 신형 엔진처럼 보인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등의 포털 서비스는 인터넷 정보의 유통을 독과점하고 있다. 독과점 구조를 기반으로 포털 서비스는 한국 사회의 정보 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학생들의 약 80%가 사회에 대한 1차 정보를 포털 서비스에서 얻는다는 통계도 있다. 포털은 각 언론사들이 생산한 기사를 한데 모아놓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한다. 실시간 업데이트 방식을 택하고 있어 마치 방송을 접하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포털 뉴스의 가장 큰 매력은 ‘가벼움’이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포털은 압도적인 비율로 방송·연예 기사(24.3%)에 화면을 할애하고 있다(박혜준, 2005년 서강대 대학원 석사논문).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사회 기사가 19.5%라 하니 포털 뉴스는 가벼운 읽을거리인 연예 기사로 승부를 건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 포털은 기사의 포장과 재배열로 그 위력을 발휘한다. 포털은 연예 기사의 제목 화끈하게 뽑기, 비슷한 연예 기사 병렬 배치, 독점이나 속보 등의 용어를 동원한 호기심 자극하기 등의 솜씨를 동원한다. 개별 언론사에서 만들어져 별 재미가 없어 보이는 기사라 할지라도 포털의 미다스 손을 거치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거기에 ‘낚이지’ 않을 네티즌들은 많지 않다.
연예인 인권 문제도 불거져
신문이나 방송, 통신은 생산한 정보를 어차피 한번 가치를 뽑은 것으로 인식하고 포털에 헐값으로 팔아넘겼다. 포털은 원본보다 재미있는 정보가 되도록 조화를 부렸다. 재주와 조화 덕에 몸집이 커진 포털 서비스에 언론은 줄을 서고, 자신의 기사가 더 빈번하게 유통되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유통의 입맛에 맞는 기사 생산은 불가피해졌다. 포털 담당자들의 머릿속까지 미리 감안한 언론의 기사 생산도 일반화되고 있다. 심지어 포털에 맞는 제목 따기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포털에 실리기 위한 피눈물 나는 경쟁에서 연예 기사에 더욱 깊숙이 속옷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과잉, 장착되는 일은 뻔한 수순이었다.
포털의 연예 기사만을 골라 팬다는 불만을 포털은 자주 내비쳤다. 그건 큰 오해다. 큰 맥락에서 연예 기사의 과잉과 내용을 문제 삼을 뿐이다. 포털의 연예 기사 제공을 둘러싼 사회적 책무마저 언급해야 할 정도로 포털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의 입맛에 맞춘 기사 생산이 지속되면 언론은 황폐해지고 사회적 소통의 수준도 참담해진다. 최대공약수적 취향에 맞춘 연예 기사를 포털에 제공하기 위해 진력하는 언론은 사회에 그 정당성을 내세울 수 없게 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언론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과연 여론 수렴과 사회적 합의 도출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경쟁적인 연예 기사 만들기로 인한 연예인 인권 문제도 불거졌다. 지난번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포털이 그 중심에 있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정적 연예 기사의 과잉은 궁극적으로 포털에 자승자박 역습을 초래할 수도 있다. 포털의 질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도 오래됐다. 지금과 같은 포털 서비스가 언제든 다른 서비스에 대체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질적 수준은 반드시 제고돼야 한다. 지금 포털이 펼쳐내는 연예 기사의 선정성, 과잉의 문제는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포털을 역습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뉴스 읽기는 반복적 학습에 의해 가능해진다. 만약 포털 뉴스 서비스가 가장 중요한 뉴스원으로 지속적으로 자리잡아간다면 전혀 새로운 뉴스 읽기가 형성될 전망이다. 연예 기사가 가장 많아야 하고, 다른 기사는 덜 중요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일상과 연예 기사는 늘 범벅이 되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할 독자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연예적 서사와 스타 사진으로 점철된 역사적 무의식의 소유자들이 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날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왜 사회적 저항 일어나지 않나
SBS가 <한밤의 TV연예>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매주 한 번씩 하던 그 프로그램을 주 2회로 늘리겠다고 공표한 적이 있었다. 서태지 팬클럽에서 들고 일어났다. 연예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억지스러운 내용들이 늘어날 것이고, 연예인의 인권 침해는 물론 경쟁으로 인해 선정성이 증대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인터넷 서명운동, 광고주 불매운동 등을 벌였고 결국 SBS는 백기를 들었다. 포털의 연예 기사의 선정성과 과잉도 그같은 사회적 저항을 받을 만큼의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아직 포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한가하기만 하다. 포털을 언론사로 규정하고 사회적 규제를 해야 한다는 학문적 담론이 있지만 대학의 담장을 넘지 못하고 있다. 팬클럽에서 자신들의 스타에 대한 기사를 항의할 때도 포털을 바꾸어 활용하는 수준에서 마감하고 만다. 포털에 목을 대고 있는 언론들은 포털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무의식까지 손을 뻗칠 포털이지만 그를 두고 크게 꾸짖는 주체로 자처하며 나서는 자가 없다. 한국방송 <상상플러스>의 왼쪽 줄이 터가 세서 출연진들이 구설에 오른다는 기사가 온 포털을 도배하고 있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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