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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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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의 스피드, 이건희의 카리스마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세계 자동차시장 1위 노리는 도요타와 소니를 제친 삼성이 기업·기업인 부문 선두 중국 경제 성장과 함께 화교자본가 리자청 3위, 사회공헌 모범생 타타그룹도 주목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아시아 지역 기자들을 상대로 벌인 <한겨레21>의 설문 조사 중 기업, 기업인 부분에서는 도요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힘이 두드러졌다. 도요타와 삼성은 ‘아시아 최고의 기업’에서 나란히 1, 2위에 올랐으며 두 회사의 설립자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경제에서 비중을 키워가고 있는 인도 기업인과 화교 기업인(화상)들의 이름도 눈에 많이 띄었다.

경리 출신 오쿠다, 개혁을 이끌다

‘아시아 최고 기업’ 조사에서 1위(응답자 90명 가운데 27명)를 차지한 도요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도요타는 내년 자동차 생산대수가 올해보다 10% 늘어난 연산 906만대에 이르러 전통의 1위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앞지를 것이라고 공식 선언해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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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년에 이르는 세계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아시아 기업이 처음 선두에 나서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또 부품 협력업체와 주식 지분을 상호 보유하면서 상생 협력의 긴밀한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도요타의 성과에 힘입어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에 이어 ‘영향력있는 기업인’ 2위를 차지했다. 오쿠다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달리 대주주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도요타자동차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인공으로 꼽힌다. 경리 출신인 오쿠다 회장은 필리핀 근무를 오래한 탓에 사내 기반이 약했는데, 필리핀 근무 중 거액의 미수 채권을 해결해 주목을 끌었으며, 최고경영진 반열에까지 올랐다. 도요타에선 생산과 기술 부문을 거쳐야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불문율을 깬 게 바로 그였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 가문 밖에서 최고경영자로 올라선 첫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영화광인 그는 한국 영화와 배우, 가수들에 대해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쿠다 회장은 1995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라며 타성에 젖은 도요타 조직에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연공서열제 대신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사내벤처를 육성했다. 또 전임 경영진이 몇년 동안 결론짓지 못했던 중국 톈진 공장과 미국 동부지역 엔진공장 건립 방안에 대한 결정을 취임 직후 일찌감치 내리는 ‘스피드 경영’을 선보였다. 스피드 경영은 미래형 친환경 자동차인 하이브리드카(전기와 기름으로 가는 자동차) 개발에서 도요타가 선두로 나서는 계기도 됐던 것으로 평가된다. 와타나베 가츠사키 현 도요타 사장이 영향력있는 기업인 8위에 오른 것도 이런 도요타의 성과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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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아시아최고 기업’ 조사에서 도요타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이건희 회장은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제치고 영향력있는 기업가 1위에 오른 것은 삼성전자가 한국의 대표 기업을 넘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7월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의 ‘세계 100대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일본의 소니를 제치고 20위에 오르는 등 도요타를 빼고는 아시아 기업으로 가장 높은 지명도를 얻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삼성은 일본의 소니(3위)와 도시바(공동 4위)를 제쳤다.

‘벤처 1세대’ 이민화 회장 4위

‘영향력있는 기업가’ 조사는 중요도 순으로 다섯명을 꼽아달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응답자 97명 가운데 22명이 이건희 회장을 꼽았으며,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꼽은 이들은 모두 16명이었다. 중요도 순으로 꼽은 답변에 가중치를 둔 분석 평가에서 이건희 회장은 89점,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61점을 얻었다. 이건희 회장이 오쿠다 회장보다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삼성의 눈부신 성과와 함께 재벌 총수직에서 비롯되는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성과에 힘입어 설립자인 이병철 전 회장도 ‘영향력있는 기업인’ 공동 9위에 올랐다.

한국인 기업인으로는 이 밖에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4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공동 12위)이 영향력있는 기업인으로 꼽혔다. 이민화 전 회장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은 한국의 ‘벤처 1세대’인데다 <아시아위크> 선정 ‘아시아 밀레니엄 리더 20인’(1999년6월), <비즈니스위크> 선정 ‘아시아 스타 50인’(2000년6월)에 꼽히는 등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화교 자본이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듯 홍콩 허치슨왐포아와 청쿵실업 회장인 리자청이 오쿠다 히로시 회장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리자청 일가의 재산은 91억달러(2000년 기준)로, 전세계 화상 가운데 최고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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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청 회장은 중·일전쟁이 터진 1939년 전란을 피해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1945년 조그마한 플라스틱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가 청쿵공업공사로, 현재 리자청 기업집단의 핵심인 청쿵실업의 모태다. 청쿵공업공사가 만든 플라스틱제 완구와 생활용품은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 그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줬다. 리자청 회장은 그뒤 부동산업에도 손을 댔으며, 1979년에는 홍콩상하이은행그룹의 허치슨왐포아 주식 22.4%를 취득해 금융업에 나섰다. 리자청의 사업은 부동산, 항만, 창고, 유통, 통신 분야에 두루 걸쳐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북미·유럽·호주 등지에 뻗어있다. 중국 베이징에 ‘동방광장’이란 거대한 건물을 짓고 있는 주인공도 리자청이다.

인도 최대 민간 기업인 타타그룹의 설립자인 잠세티 타타(6위), 현재 최고경영자인 라탄 타타(공동 9위)도 ‘아시아의 영향력있는 기업인’ 조사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잠세티 타타는 영국식민통치 아래에서 자동차, 건설, 화학 등 중공업 분야 기업을 키워낸 인물이다. 1989년 인도과학원 설립안을 주도함으로써 마련함으로써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기초를 닦은 것도 그였다. 잠세티 타타는 20여개의 초중등학교를 세웠으며 빈민구제 사업에 앞장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종교 갈등이 심한 인도에서 소수 종파(조로아스트교)인 타타가 국민들로부터 두루 존경을 받고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타타, 지분 65%를 자선재단이 보유

현재 타타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는 라탄 타타 회장은 잠세티 타타의 증손자뻘되는 친척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그는 1962년 타타철강에 입사해 실무를 익힌 뒤 1991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인도에서 총리 자문위원과 인도 연방은행 중앙위원을 맡고 있고, 세계적인 민간 정책연구소인 미국 랜드연구소와 빌 게이츠 재단의 인도 에이즈(AIDS) 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선즈의 지분 65%는 자선재단 2곳에서 보유하고 있으며, 타타회장의 지분은 0.5%에 지나지않는다. 수익의 3분의 1을 사회공헌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나, 배당금의 대부분이 자선 사업에 쓰이고 있는 사정은 이런 독특한 지분구조에서 비롯된다. 타타그룹은 대우 상용차 부문을 인수해 타타대우상용차를 설립함으로써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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