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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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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과학 신화’

등록 2005-12-21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믿었던 지지자들과 난치병 환자들의 상실감은 어느 것으로도 달랠 수 없어
‘국가 브랜드’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치명적인 불신이 다른 연구에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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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미국의 월간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한국어판 <사이언스 올제> 발행인인 고려대 박성근 교수(이론물리학)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박 교수의 고민은 황우석 교수의 조작극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지난 11월24일 황 교수가 난자 수급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과학 분야 공헌자 50인(단체 포함)을 뽑았다. 문제는 ‘톱 3 수상자’로 연구 분야에서 황 교수를, 비즈니스 분야에서 구글을, 정책 분야에서 캐블리 재단 설립자 프레드 캐블리를 선정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어판 신년호 표지로 맞춤한 내용이었지만 끝내 편집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황 교수팀이 올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관련 의혹이 너무나 명백한 때문이었다.

비판자와 지지자, 어지러운 갈림길

이렇게 박 교수가 ‘황우석 신화’를 한 걸음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동안 더욱 깊숙이 빠져든 사람도 있다. 바로 황 교수팀의 개인 자문역을 맡은 팬카페 사이트 ‘아이러브 황우석’의 운영자 윤태일씨다. 윤씨는 문화방송 <pd>의 취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부터 외부의 화살을 피하는 ‘방패막이’ 구실을 톡톡히 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익을 생각하지 않는 보도에 울분을 토하고, 줄기세포 연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해법’ 찾기에 골몰했던 것이다. ‘황우석 죽이기’에 결연히 맞서기로 결심하고 헌신적으로 싸움을 이끌어온 윤씨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모른다. 변함없는 지지자로서 “우리는 줄기세포를 언제든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황 교수의 말을 전하며 지지자를 안심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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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사건의 진실에 눈을 감게 하는 것일까. 어찌됐든 논문 철회에 이른 지구촌 조작극의 방조자가 되는 이유는 지독한 이상주의자로서 현실감각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정황은 지난 12월11일 황 교수팀이 논문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황우석 죽이기’로 규정하면서 보도자료로 내놓은 ‘4대 의혹 반박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사진 중복은 편집상의 실수이고, 일치하는 체세포와 줄기세포의 DNA 지문은 배율이 낮은 데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해명성 반박은 11개 줄기세포 실체가 없어서 규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활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껏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황 교수팀의 명분이 있을 수 없다. 국익으로 포장된 약발은 효력을 다했고, 환자를 볼모로 삼은 신화는 누더기가 됐다. 그럼에도 황 교수팀은 실체도 없는 줄기세포를 검증받으려 하면서 애꿎은 지지자만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전히 윤씨처럼 “과학적 실험에 대해서는 해석이 난무하더라도 황 교수의 연구가 사회의 변화에 이바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는 멀쩡하게 자라던 줄기세포가 “개 사육장에서 날아온 곰팡이로 훼손됐”기에 보여줄 수 없는 게 ‘천추의 한’이라는 뜬구름 잡는 변명이 가능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라고 하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유언비어에 가깝지 않은가.

연구자들에게서 공범의 혐의 벗겨야

지금 줄기세포 선구자에 관한 진실의 회오리는 강력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다. 다른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난자 기증 서약서에 진달래꽃을 달아 황 교수 연구실 앞에 놓았던 여성들과 생명공학 주도국가로서 최대 33조원으로 추정되는 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기대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 과학자’가 나서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라 믿었던 척수 손상을 비롯한 난치병 환자들의 상실감은 어느 것으로도 달랠 길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황 교수를 ‘아버지’라 불렀던 가수 강원래씨는 0.1%의 가능성마저 접거나 수년 뒤에나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재로선 체세포 핵이식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당연히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제 개발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동결냉동 줄기세포주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야 한다. 그마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황 교수팀이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해도 잠시 배양하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줄기세포주로 확립하려면 배반포기 단계에서 내세포 덩어리를 분리해 배양했을 때 적어도 6개월 가량 무한 증식하면서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방법으로 이런 과정을 지켜본 줄기세포 연구자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제 개발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황 교수가 줄기세포의 경제성에 매달려 과욕을 부리다가 줄기세포 연구를 통째로 날릴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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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다른 배아 줄기세포 전문가들의 실험실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인간 냉동 배반포기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해 미국 특허까지 받았지만 앞일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박 소장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이라며 “생명공학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에 위기를 맞았다. 생명공학 연구자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포천중문의대 정형민 교수(분자발생학·차바이오텍 대표이사)처럼 성체 줄기세포이면서도 배아 줄기세포처럼 분화 능력이 뛰어난 ‘맵시’ 같은 만능성인전구세포를 찾아내는 게 위기의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정녕 무엇을 위한 희대의 조작극이었을까. 누구도 믿고 싶지 않았던 사태, 아니 과학계 최악의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올해 <사이언스> 논문은 철회됐고, 2004년 논문마저 의심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지구촌 조작극이 막을 내리면서 황금빛 신화가 참담한 전설로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형국이다. 황우석이라는 ‘국가 브랜드’이자 ‘과학 권력’이 무너진 자리엔 치명적인 불신만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이제라도 황우석 신화에 가려졌던 연구자들이 불신의 자리를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한 시작은 시스템 부재 속에서 나름의 몫을 했던 황 교수팀의 연구자들에게 공동 정범의 혐의를 벗겨내는 작업이어야 한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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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이·스너피, 그것마저…</font>

미국에서 체세포 들여온 무균 미니돼지 복제가 가장 큰 성과일 듯

줄기세포 선구자인 황우석 교수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 기대는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올해 봄 ‘황우석 효과’가 나타나면서 바이오벤처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10년은 족히 먹고살 만한 뭉칫돈을 챙긴 사람이 적지 않다. 이제 황 교수의 한마디에 춤을 추던 주가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손자까지 군역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로 국민적 신뢰를 받았던 황 교수의 추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른바 ‘황우석 신화’는 가난한 시골 출신 학생이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를 엮어나가며 형성됐다. 황 교수는 지난 1993년 11월 국내 최초로 시험관 송아지를 생산해 ‘축산 혁명’을 예고하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1999년 2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켜 세계적인 복제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당시 황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이름을 받는 ‘민첩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복제소의 진위 여부도 의심받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 교수는 복제 전문가로서 연구팀을 이끌었다. ‘신의 손’이라는 별칭에 부응하듯,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해 백두산 호랑이 복제를 시도하기도 했다. 올해 초 황 교수는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해 민족혼을 떨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고능력 젖소를 복제한 데 이어 지구촌이 소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자 광우병 내성소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아직까지 광우병 내성소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본과 복제동물의 DNA 지문을 검사하면 수일이면 확인할 수 있다.
만일 황 교수가 2002년 상반기에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동물 복제 전문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복제한 동물을 이용해 부를 창출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황 교수가 “영롱이 논문을 쓰더라도 실어주는 데가 없다”고 밝힌 것은 동물 복제가 ‘최초’라는 수식어만 안겨줄 뿐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강성근 교수는 “영롱이 관련 논문이 있는데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는데, 이 대목도 검증이 필요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올해의 발명품 복제 개 ‘스너피’도 의혹의 대상이다.
지금으로선 황 교수의 뚜렷한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무균 미니돼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 김윤범 교수가 제공한 미니돼지 체세포를 ‘몰래’ 들여와 복제에 성공했다. 현재 미니돼지는 충남 홍성 농장과 서울대 특수생명자원연구동 등지에서 기르면서 이종장기 이식 관련 실험에 쓰이고 있다. 황 교수팀의 대변인 구실을 한 안규리 교수가 연구팀에 합류한 것은 미니돼지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도세포를 얻어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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