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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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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맹신, 박기영의 태만

등록 2005-12-2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황우석을 정치적으로 뻥튀기했나” 국가적 영웅 만들다 후폭풍 몰아치는 청와대…대통령의 ‘묻지마 지원’에는 검증 시스템 작동하지 못한 박기영 보좌관의 책임도</font>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좀더 지켜보자”(12월15일 필리핀, 노무현 대통령), “일단 제반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자”(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지켜보고 대응하기로 했다”(총리 주재 긴급관계장관회의)….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황우석 교수의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폭탄 발언 이후 “기다리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는 있다”고 반격하며 진실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곤혹스러움을 드러낸 것이다.

‘황우석 독식 구조’ 비판 나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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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의 12월16일 회견으로 진실 규명은 당분간 미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우석 폭풍은 고스란히 북악산 자락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별다른 검증 없이 ‘황우석 신드롬’을 양산한 든든한 뒷배경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황 교수의 인연은 당선자 시절인 2003년 초, 황 교수의 신문 칼럼을 보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는 이후 참여정부 첫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로 밀도 있게 검토됐지만 입각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2003년 8월 황 교수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했고, 12월 광우병 내성소를 만든 황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동북아 시대, 2만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지가 문제였는데,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 대통령이 된 뒤 이처럼 가슴 뻐근하게 기쁜 날은 처음”이라고 극찬했다. 참여정부를 상징할 슬로건인 ‘동북아 중심국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할 재목으로 본 것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생명공학을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황 교수팀을 향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다.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2004년, 서울대병원에 ‘세계줄기세포허브센터’ 건립 비용 65억원을 지원했다. 6월에는 황 교수를 ‘제1호 최고과학자’로 지정해 5년 동안 해마다 30억원씩 지원하는 선물꾸러미를 안겼다. 노 대통령이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 11명에게 과학기술 최고훈장을 달아준 것도 이즈음이다. 2005년에는 서울대 수의대에 ‘황우석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265억원의 지원비 가운데 100억원을 집행했다. 민주노동당과 과학계 일각에서 “황우석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은 과학 발전에 역행한다”며 ‘황우석 독식 구조’를 비판했지만 노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지난 10월 서울대 세계줄기세포허브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앞으로 확실하게 밀겠다”고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공동간사와 내부기획단장을 맡은 ‘대통령 소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황 교수의 연구성과를 시장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황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과학입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능한 과학자를 발굴·지원하는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 교수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에서 상업적 성과를 얻으려는 노 대통령과 정부의 조급증은 사실상 ‘묻지마 지원’으로 이어졌다.

진위 논란 일자 서둘러 면죄부

무엇보다 황 교수의 연구성과와 관련해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정부 차원에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 <pd>이 줄기세포 연구의 허위 가능성에 대한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한 게 6월.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pd>의 취재 내막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서에는 ‘<pd>의 취재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취재의 출발점인 줄기세포의 진위를 가리거나 난자 기증 과정의 도덕성 논란에 대해 성찰한 흔적은 별로 없다. 노 대통령이 지난 11월27일 청와대 홈페이지 기고문에서 “처음 취재 방향은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수십 명의 교수, 박사들이 황 교수와 짜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세계가 그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었단 말인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도 MBC 기사가 짜증스럽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의혹을 증명한다. 노 대통령은 <pd> 방영 이후 광고 중단 사태까지 치달은 우리 사회의 ‘획일주의’를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글을 썼지만, 정황과 심증만으로 황 교수를 두둔하고, <pd>의 협박 취재를 언급한 것은 오히려 황 교수팀과 보수언론에게 맹목적 반격의 빌미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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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황 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한 진위 논란이 가열된 시점에서는 그 실체를 가리기보다 그만 덮고 가자는 듯한 태도를 보여 또 한 번 논란을 빚었다. 지난 12월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 황 교수팀의 연구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며 황 교수팀에게 서둘러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이런 처신으로 황 교수의 연구성과를 자신이 그토록 외쳤던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육성’의 가시적 성과로 연결짓기 위해 조급하게, 그리고 정치적으로 뻥튀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부는 한 과학자의 학문적 성과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먹여살릴 산업으로 성장할 것처럼 환상을 심었다. 황 교수에 대한 사회적 의혹과 논란을 철저히 외면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맹목적인 감싸기로 문제의 조기 해결을 막았다”고 노 대통령의 맹목적 업적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어떻게 과학기술 분야의 세세한 내용을 다 알겠냐”며 억울하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온다.
결국 화살은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박 보좌관은 황 교수에 대한 사회적 의혹과 경고, 연구성과의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해 대통령의 판단을 흐렸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박 보좌관은 2004년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로 황 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과 충직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출발부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가 황 교수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도 거듭 제기됐다.

논문 공동저자가 과학 보좌관 역할

황 교수의 연구에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의 난자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11월 말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14개 단체는 박 보좌관의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2004년 황 교수 논문에 생명윤리를 자문했다는 이유로 공동 저자에 포함된 박 보좌관이 정작 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한발 빼는 것은 부도덕한 처사”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닫았다. <pd> 취재에 대한 대통령 보고서를 황 교수에게 유리하게 허위 과장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역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 대통령이 두 차례의 의견 표시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지만, 그는 직접 나서 대통령을 변호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참모가 대통령 등 뒤에 숨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박 보좌관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폭탄선언 직후인 12월15일 밤 “지금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12월16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 청와대 역시 “아직 박기영 보좌관의 거취에 대해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이 “사태를 조기에 신속히 조사할 수 있었는데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한나라당), “황 교수에게 과다한 국가 예산이 지원된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했고, 박 보좌관이 역할을 했다”(민주노동당)며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고, 여권 안에서도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그는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맞춤형 줄기세포의 진실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pd></pd></pd></pd></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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