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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은 내 싸움의 종착역”

등록 2005-12-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주민들과 살을 맞대며 미군 탱크를 막기 위한 투쟁 벌이는 문정현 신부
미 대사관과 청와대를 바꾸는 것은 민중의 힘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야

▣ 평택=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길 위의 신부’는 여전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러 온 가족들을 사무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32년 동안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 미국을 향한 그의 분노의 외침은 군산 지역 미군기지를 돌려달라는 몸부림을 시작으로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매향리, 노근리를 거쳐 미선이·효순이를 위한 거대한 촛불 물결에 이르기까지 그침이 없었다. 문정현(66) 신부는 평택으로 몰려드는 미군 탱크의 캐터필러 소음을 멈추기 위해 평택역 앞 광장에 다시 천막을 세웠다. 그는 “날씨가 추워져 이제 늙은 몸뚱아리가 힘들다”며 “평택을 내 평생의 마지막 싸움터로 삼겠다”고 말했다.

평화유랑을 통해 평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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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투쟁을 시작한 계기는.

=2003년 말로 기억된다. 그해의 가장 큰 이슈는 이라크 파병 반대와 용산·미 2사단의 평택 재배치였다. 많은 시민들이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지만, 대한민국 군대는 결국 이라크로 떠났다. 2003년 11월14일 미국 대사관 옆에 있는 열린시민광장에서 출범식을 열고 평화유랑을 시작했다. 2004년 내내 60개 마을을 다니면서 사람들과 만나 평화를 얘기했다. 가는 데마다 텐트를 치고 거리에서 밥을 해먹을 생각이었지만 곳곳에서 큰 환대를 받았다. 노동·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육아 공동체, 장애인 공동체, 청주의 원흥이 방죽 살리기 운동 등 풀뿌리 환경운동 단체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평화운동이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배우게 됐다. 2004년 5월29일 평택 공설운동장에서 평화 축제를 연 것을 인연으로 평택과 연결이 됐다. 올해 2월14일에 평택 주민이 됐다. 그들과 살을 맞대며 부대끼고 있다.

신부에게 투쟁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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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30년 넘게 해오다 보니, 10년마다 한 번씩 큰 변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금이가 그랬고, 미선이·효순이가 그랬다. 아마도 평택이 내 싸움의 종착역이 아닐까 싶다. 나이도 그렇고 몸뚱아리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이곳이 내 투쟁의 마지막이다. 정부는 토지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는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낼 계획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추리·도두리 사람들은 갯벌을 막아 한 뼘씩 농토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이들을 땅에서 몰아낼 명분은 없다. 미군은 이곳에 100년 동안 지낼 튼튼한 시설을 짓겠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땅에 60년 지낸 것도 모자라 앞으로 100년을 더 있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준독립운동이다. 미 대사관 조선총독부와 그에 놀아나는 청와대를 바꾸는 것은 밑에서부터 치받고 올라오는 민중의 힘뿐이다.

투쟁에 참여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평택으로 몰려오면 된다. 조세 보베가 이끈 프랑스 라르작 투쟁의 승리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에 가능했다. 군사기지를 넓히자는 프랑스 정부의 방침에 주민들이 불복종 투쟁으로 저항했다. 마을로 미술·음악·문학을 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회를 한 번 열려고 하면 전국에서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주최 쪽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인원 통제가 안 되니 사람들을 그만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 오케스트라처럼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이사왔으면 좋겠다. 너른 들판에 텐트 치고 살면서, 용역들과 맞서고 트랙터·포클레인에 저항하자. 평택 황새울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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