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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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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없는 이혼의 상처!

등록 2005-11-08 00:00 수정 2020-05-02 04:24

양육비 체불에 아이 숨기기 등 준비 없는 협의이혼이 부르는 또 다른 파경
당사자들의 매너, 주변인들의 매너, 법과 제도의 매너까지 총체적으로 필요하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경기도에 사는 고교 3년생 유선(가명·18)이는 지난 10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수시모집 농어촌 특례입학에 지원하려다 포기했다. 유선이의 학교와 집은 특례입학 대상지역에 속했고 성적도 맞춤했던 터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지원자격에 부모가 고교 3년 내내 같이 살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유선이 부모는 5년 전 이혼했다. 부모가 이혼했다면 친권이 있는 부 또는 모가, 친권과 양육권이 경합한다면 양육권이 있는 이가 같이 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선이의 농어촌특례입학 무산된 사연

엄마와 살아온 유선이는 당연히 엄마가 자신의 양육권자인 줄 알았다.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주민등록등본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학교에 전화해보니 “양육권자 지정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선이 엄마는 이혼하면서 구두로만 합의하고 양육자 지정을 해놓지 않았다. 별도로 하지 않으면 유선이 아빠가 갖고 있는 친권에 자동으로 포함된다.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마음도 심란해 유선이는 지원을 접었다. 엄마 박정심(가명·45)씨는 속만 태웠다. 대학 당국에 사정을 말하거나 법원에 양육자 변경 신청을 하고 사정을 설명해 빠른 처리를 요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둘 다 유선이 아빠의 동의서가 있어야 했다. 이런 일조차 제대로 해놓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박씨는 몹시 우울했다.

이혼한 이들은 박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박씨 처지에서 법원에 갈 시간도 빠듯했으리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빨리 일을 처리해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대학 당국도 이들의 처지를 배려해줄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아오다 보니, 당연한 권리를 찾는 일에도 주눅 든다는 게 모녀의 사연을 들은 이혼 경력자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한 광역시에 살고 있는 윤아무개(33)씨는 아이를 유치원 보낼 때마다 난감하다. 수위 아저씨가 “○○이 아빠는 왜 안 보이세요?” 거듭 묻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 같이 안 살아요” 그랬다. 그러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해외에 계신가요? 다른 지역에 계신가요?” 꼬치꼬치 캐물었다. “저 사람이 알면서도 저러나” 싶다. 꼭 아이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유치원 차를 기다릴 때마다 쫓아나와 말을 걸기 때문이다. 수위 아저씨뿐만이 아니다. 친지들은 친지들대로 만날 때마다 “빨리 새 출발 해야 할 텐데… 만나는 사람은 없어?”라며 측은한 눈길을 던진다. 선의의 호기심일지라도 윤씨 처지에서는 ‘악의적 호기심’ 같다. 이혼한 게 죄도 아니고 이혼해야 철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에 이혼자들이 넘치는데 왜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일까. 엄마 아빠가 건재한 가정만이 ‘정상 가정’이라고 보는 편견, 방송이나 신문 보도에 등장하는 ‘결손 가정’이라는 표현, 툭하면 ‘부모님의 날’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기획하는 유치원의 ‘오버’까지 세상은 이혼자에게 정말 너무 ‘매너’가 없다는 게 윤씨의 항변이다.

윤씨의 말대로 이혼이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다. 지난 한 해 하루 평균 850쌍이 혼인했으나 하루 평균 381쌍이 이혼했다. 이 수치는 결혼한 사람 대비 이혼한 사람의 비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 인구와 이혼·사별자의 비율은 대략 7 대 1꼴이다. 재혼한 사람들의 수치가 유배우 인구에 포함돼 있으므로 이혼자, 구체적으로 이혼 경력자만을 추려내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대신 올해 처음 작성해 발표한 2004년의 유배우 이혼율(유배우자 1천 명당 이혼 건수)은 5.8건으로 나타났다. 결혼한 사람 1천 명당 12명꼴로 지난 한 해에 이혼했다는 얘기다. 누적 수치를 짐작할 만하다. 인구 1천 명당 이혼 발생 건수를 보여주는 조이혼율은 2003년 3.5건(7명)으로 피크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2.9건(5.8명)으로 주춤했지만, 이는 결혼 인구가 줄어든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갈라선 부부의 절반 이상(65∼72%)이 미성년자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통계청, 2005년).

양육비 안 줘 감치처분까지 내렸지만…

높은 이혼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혼은 상처다. 이혼율의 증가 속도에 견줘 이혼을 대하는 세상의 변화는 더디다.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태도, 사회문화적 시선, 법·제도적 장치는 이혼을 곧 가족 해체로 여긴다. 이혼만로도 심리적인 고통이 크지만, 준비 없이 이혼해 후회하거나 법을 몰라 법적 권리를 침해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입는다.

지난해 협의이혼 수치는 전체 이혼의 84.4%를 차지하고 있다. 양육권·양육비·면접교섭권·재산분할 및 위자료 등을 ‘구두’로만 합의하고 이혼하는 이들의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재판이혼에서는 조정이나 조사 단계에서부터 일일이 확인·검토를 하지만, 오전에 신청해 오후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협의이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검토가 생략된다. 판사가 “아이는 누가 키우시나?” 등을 묻고, 이에 답하면 도장을 찍을 수 있다. 특별히 공증을 받아놓지 않는 한 구두 합의는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가장 문제되는 게 양육비와 면접교섭권이다. 약속을 안 지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별도의 소송을 내어 지루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때 살 비비고 살았던 상대방의 ‘매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혼의 매너를 당사자와 공동체가 함께 지키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10월28일 이화여대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는 눈에 띄는 강연이 열렸다. 독일의 가족법학자 라이너 프랑크 교수의 초청 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본 부부재산제와 양육비 이행확보 제언’. 독일에서는 전업주부라도 결혼 과정에서 생긴 재산에 대해서는 절반의 권리를 갖는다. 또 양육비를 내지 않는 부모 한쪽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정 액수를 미리 내주고 뒤에 그 부모 한쪽에게 청구권을 갖는다. 이날 참석자의 눈길을 끈 것은 사례로 소개된 40대 안아무개씨의 사연이었다.

세 아이를 둔 안씨는 2001년 남편 문아무개씨의 이혼소송 제기로 파경을 맞았다. 둘째와 셋째아이의 양육비를 받기로 조정했다. 1년 동안은 잘 지급됐으나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행 명령 소송을 냈으나 상대방이 참석하지 않아 기일이 계속 미뤄졌다. 2004년 9월에 신청한 이행 명령이 2005년 1월 말에야 내려졌다. 밀린 양육비를 몇 달간 분할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재판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명령을 위반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으며 정기적 의무를 3기(월별 지급할 경우는 3달) 이상 불이행하면 30일 범위 내에서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아이들 아빠 문씨는 이 이행 명령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 밀린 양육비를 못 줄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안씨는 문씨에 대한 감치 처분을 요구했고, 법원은 20일 감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법적 시효인 3달이 다 되도록 제대로 감치 처분이 됐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효 하루 전날 감치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감치 처분까지 1년이 걸렸지만 양육비는 여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 안씨는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너무 지쳤다”고 말했다.

“매는 내가 맞고 돈은 국가가 벌다”

그나마 안씨는 법적 절차를 밟았지만, ‘수많은 안씨들’은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양육비를 계속 주지 않으면 월급을 차압하는 등 강제집행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해결하는 처지에서는 엄두를 못 낸다. 또 청구를 할 때에도 일정한 수입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청구자가 증명해야 한다. 그마저도 상대가 연락을 끊거나 거처를 모르면 속수무책이다. 아이를 빼앗겼다고 여기거나 이혼한 상대에게 고통을 주려고 일부러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일도 많다. 지난해 가정법률상담소가 주최한 양육비 이행 공청회에서 발표된 한 젊은 엄마의 사례를 보자.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과 외도를 견디지 못해 임신 8개월 무렵부터 별거생활을 하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이혼해 친정으로 왔다. 이혼 전부터 아이 아빠는 교묘하게 재산을 빼돌렸다.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시아버지가 근저당 설정하고 시어머니가 매입하는 식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재산을 모두 없앴다. 아이가 자폐증이라 특수교육이 필요했다. 살림은 노모가 돌봐줬지만 아이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혼자 감당하기는 버거웠다. 양육비 청구를 했고 판결을 받았지만 아이 아빠는 돈이 없다고 버텼다. 명의를 바꾼 그 아파트에서 여전히 살고 차도 더 좋은 것으로 바꿨으면서도 그랬다. 웃지 못할 일은 돈이 한 푼도 없다면서 폭력 때문에 선고받은 벌금 200만원은 얼른 납부한 것이다. 매는 내가 맞았는데 돈은 국가가 벌었다….”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양육비 지급 판결이 났는데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를 적용해 형사처벌 하는 강제규정을 둘 수 있다”면서 “각종 면허를 압류하거나 국가가 우선 지급한 뒤 의무자에게 청구하는 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양육비 문제 못지않게 이혼 뒤 아이 양육을 둘러싼 중요한 다툼 중의 하나는 면접교섭권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혼 뒤 아이를 볼 수 있는 권리(동시에 의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 상대방이 미워서 일부러 아이를 안 보기도 하고, 일부러 아이를 안 보여주기도 한다. 이혼 4년차인 김아무개(37)씨는 이혼 뒤 두 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이들 엄마가 다른 남자가 있었고 이혼을 원했다. 어차피 살 수 없으니 ‘깨끗하게 갈라서자’고 했고 두 딸은 아무래도 엄마인 자신이 맡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중에는 처가에서까지 나서서 이혼을 종용했다. 애초부터 재력에서 특히 차이가 나는 결혼이었지만 허무하게 쫓겨나다시피 했다. 딸들은 엄마랑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했다. 그런데 아이들 엄마가 주소를 바꾸고 거의 잠적하다시피 해버렸다. 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아이들 엄마가 의도적으로 피한 게 분명하지만 그런 ‘의도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면접교섭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낼까 고민했지만 소송을 통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또다시 교묘한 방법으로 피하면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돈이 오고 간 ‘증거’가 분명한 양육비 지급과는 달리, 면접교섭권은 여러 핑계로 어길 여지가 많다. 심지어 아이를 ‘세뇌’해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아이가 만나기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힐 경우 재판부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혼숙려제도 법제화의 딜레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과정 실태조사(2004년)를 보면 기혼자의 57.1%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전국 20살 이상 성인남녀 1210명 조사). 이혼을 고려했거나 이혼한 사람들의 숙고 실태를 분석해보니, 이혼 뒤 자녀 양육대책(37.2%), 주변 사람들과 상의(30%), 가족 및 대인관계 검토(29.4%), 이혼 뒤 심리적 문제(28.2%), 이혼 뒤 생활대책(25.4%) 등은 비교적 충분히 고려했으나, 정작 이에 필요한 법률적인 지식과 객관적인 정보를 얻는 데에는 게으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상담기관을 찾은 비율은 17.5%, 이혼관련 법률 확인은 16%, 이혼 관련 정보 수집은 8.8% 등에 그쳤다. 심리·법률 상담도 전문가를 찾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는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속앓이를 하며 고민했다 해도 객관적으로 숙고하지 않고 이혼을 결정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뜻이다.

또 이혼 과정에서 부부 쌍방의 합의 정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쌍방이 완전하게 합의한 내용은 친권과 양육권의 경우 46%,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20.1%에 그쳤다. 반면 양육비는 45.6%가 전혀 합의되지 않았고, 면접교섭권은 40%,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39.7%가 합의되지 않았다. 친권과 양육권이 전혀 합의되지 않은 비율도 17.4%에 이르렀다. 합의되지 않은 이유는 친권과 양육권의 경우 상대방의 거부와 강압(44.8%), 본인 스스로 포기(32.8%), 이혼이 급해서(14.9%)의 순서로 꼽혔다. 양육비와 면접교섭권은 생각할 여지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전체 이혼자 가운데 이혼을 후회하는 사람의 비율은 22.9%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생활 3년 이내에 조기이혼을 했거나 협의이혼을 한 사람들의 후회율이 더 높았다.

이혼 경험자들은 준비 없는 이혼으로 후회하거나 법적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일정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가정법원과 법무부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혼숙려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혼숙려제도는 협의이혼의 경우 이혼신청 뒤 일정 기간 숙려기간을 두는 것이다. 지난 5월까지 활동한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소년제도개선위원회는 이혼 신청 뒤 결정 전까지 3달가량의 숙려기간을 두고 상담을 의무화하는 특례법안을 제안했다. 가정법원을 이를 위해 지난 3월부터 1주일의 숙려기간을 시범적으로 두어 ‘이혼율을 줄이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반면 법무부가 준비 중인 민법 개정안은 자녀가 있는 경우 3달, 자녀가 없는 경우 1달가량의 기간을 두고 상담은 권고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 의무화에 대해서는 여성계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상담 필수’에 무게를 두고 있고, 한국 여성의전화연합 등 여성단체에서는 ‘상담 권고’에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다. 그러나 ‘상담 필수’ 진영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혼 당사자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고 이혼 전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 ‘제대로 이혼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담 제도를 강화하자는 쪽이지만, 가정법원의 특례법안은 ‘이혼을 예방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또 특례법안은 외부 유료 상담을 포괄하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가사소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자격으로 법안을 넘겨받은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선뜻 발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의 ‘공부하는 이혼’을 보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신연숙 국장은 “당사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되 이들을 돕기 위한 방향으로의 상담 활성화와 이혼 냉각기를 두는 것은 찬성하지만, 이것이 이혼을 줄이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특히 상담만이 이혼 냉각기에 필요한 공적 지원의 전부로 이해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숙려기간에 동거를 할지 별거를 할지, 생활비와 양육비는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 않으면 ‘힘있는 배우자 일방’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신 국장은 현재의 법원 무료 가사상담실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협의이혼 과정에서의 구두 확인을 쌍방의 합의 내용이 올바른지 판단하도록 하는 절차로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 이강원 부장판사는 “‘충동 이혼’을 줄이기 위해 제3자에게 객관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무료 상담을 두되,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차단할 필요는 없다”면서 “우선 시작한 뒤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낫다”고 특례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나라마다 이혼 제도와 절차는 제각각이다. 캐나다는 ‘이혼 뒤 자녀 양육’에 대해 이혼 결정 전에 꼼꼼한 합의 내용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혼 뒤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며 지속할 것인가 △누가 어떤 이유로 자녀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가 △부모의 감정과 정신적 충격이 자녀에게 미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나 △양육에 필요한 법적 절차는 얼마나 알고 있고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등 ‘철학적’인 내용까지 미리 생각하고 합의해야 한다. 합의서를 내지 않으면 이혼 전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6시간의 의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합의서를 내도 판사가 내용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증명서가 첨부돼야만 별거나 이혼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런 ‘공부하는 이혼’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으나, 시민권자인 부모의 결정에 따라 또 다른 시민권자인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최대한 예방한다는 뜻에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평가받는다.

이혼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다. 우리 사회가 ‘이혼 전 상담’을 둘러싼 초보적인 논의로라도 이혼에 대한 ‘법과 제도의 매너’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일까.



기처 제도가 낳은 협의이혼

‘판사 확인 절차’도 유림 반발 끝에 1977년 시작

협의이혼 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정도다. 조선시대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칠거지악의 개념에 따라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버릴 수 있는 ‘기처 제도’가 팽배했다. 협의이혼 제도는 일제시대 일본의 법제를 따르면서 도입돼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일본은 지금도 협의이혼 과정이 결혼신고만큼이나 간단하다. 가정법원도 거치지 않는다. 한국의 가족법학자들은 이런 일본식 협의이혼 제도는 ‘기처 제도’의 변형된 형태로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혼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받아들여 1960년대 초반부터는 구청이나 면사무소에 이혼신고를 하면 호적공무원이 당사자들을 출석시켜 의사 확인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와 교육 수준이 낮고 사회적으로도 가부장제가 극심했던 터라 여전히 ‘강제이혼’이 횡행했다. 실제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는 ‘축첩제 폐지’였다. 또 1970년대 중반까지의 재판이혼을 보면 6 대 4 정도로 아내 쪽의 청구가 많았다. 남편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아내를 내쫓거나 강제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이 생기고 1977년 가족법을 개정하면서 판사 앞에서 의사 확인을 받도록 했다.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이 맞물린 결과다. 당시 가족법 개정을 주도했던 김주수(78) 경희대 법대 객원교수는 “유림 등의 반발은 최근 ‘호주제 폐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고 회상한다. “아이를 못 낳으면 대가 끊기는데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하나” “그렇다면 축첩을 법적으로 허용하라” “남편은 하늘인데 마음대로 이혼을 못하면 결국 가정이 무너진다”는 식이었다. 가족법 개정에 찬성하는 법학자들에게는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잇따랐다. 그 뒤로도 여성은 이혼과 동시에 아이를 ‘빼앗겼다’. “갓난아이를 기를 수만 있게 해달라”는 엄마들의 호소가 줄이었다. 1990년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여성도 친권자가 될 수 있게 됐다.
세월이 흘러 이혼 상담은 여성이 남성보다 5.1배가 많고 재판이혼 청구 비율도 여성이 월등히 높다. 이혼 사유도 바뀌었다. ‘배우자의 부정’ 대신 성격 차이로 대표되는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남녀 모두에게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여성은 그 다음으로 가정폭력 등 ‘부당한 대우’를 꼽은 데 견줘 남성은 여성의 가출을 뜻하는 ‘악의적 유기’를 두 번째로 꼽았다. 여성이 집을 나갈 수밖에 없는 배경을 고려하면 이런 차이가 왜 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혼자의 22.9%가 이혼을 후회하는데 남성들의 후회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과정 실태조사(2004년)를 보면 이혼한 남성의 40.5%가 이혼을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이혼한 여성은 17.5%만 이혼을 후회한다고 했다. 이혼 뒤 생활에 남성들이 더 ‘부적응’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혼 생활이 여전히 남성에게 ‘유리한 구조’임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필요하면 사정없이 개입한다

보좌제도·양육비선급법 등 국가가 양육 책임지는 독일

이혼 뒤 재산분할과 자녀양육을 둘러싸고 수십 년 동안 ‘지지고 볶은’ 덕분에 독일은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전세계 가족법학자들은 독일의 이혼 제도를 ‘사회적 경험과 총의에 따른 모범 사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이혼전쟁’이라는 말이 일상어로 쓰일 정도로 갑론을박이 오간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되 국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은 사정없이 개입하는 게 특징이다.
독일은 1957년 남녀동권법을 제정하면서 가사노동과 소득노동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혼을 할 때 전업주부도 결혼생활 중에 발생한 재산에 대해 절반의 분할권을 갖는다. 혼인 전부터 갖고 있던 부동산이나 상속·증여 재산을 제외한, 부동산 가격 상승분이나 임대 소득, 주식가치 상승분은 물론 복권 당첨금까지 포함된다. 결혼 생활 도중에도 (혹시 이혼에 대비하거나 배우자를 애먹이기 위한 목적으로 재산을 빼돌릴까봐) 배우자 한쪽이 일정 규모의 재산을 처분할 때에는 반드시 다른 배우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가재도구도 부부 공동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처분할 수 없다.
양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도 일찍이 정착된 ‘보좌제도’가 대표적이다. 이혼 뒤 미성년자인 아이를 대신해 양육자가 양육비 지급자에게 부양청구를 할 때 아동복지 기관에 무료로 ‘보좌’를 신청할 수 있다. 이 보좌인이 재판을 대신 받고 필요하면 강제집행도 대리한다. 1979년부터는 혼자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비선급법’을 도입했다.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모 한쪽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국가가 일정한 액수까지 미리 지급하고, 그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 한쪽에게 청구권을 갖는다. 양육비 청구를 국가가 대리하는 셈이다. 또 ‘기준양육비에 관한 법령’에서 자녀 연령에 따라 양육비 액수를 2년마다 생활물가에 연동해 자동 조절한다. 양육비가 많네 적네 다툴 소지가 줄어든다. 이 밖에도 혼자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는 양육에 따라 소득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출산 뒤 3년까지 자신의 생활비도 아이 아버지에게 청구할 수 있다. 이런 보호장치는 비혼모에게도 동등하게 해당된다.
아이 친부가 책임을 회피할 경우 보좌인은 친부를 확인할 ‘인지 과제’를 어머니에게서 넘겨받는다. 역시 무료이고 어머니가 아동복지 기관에 서면으로 신청하는 즉시 보좌가 시작된다. 따라서 한 동네에서 아이의 친부를 찾기 위해 동네 축구클럽 멤버들의 혈액조사를 한다는 건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아버지가 확인된다면 혈액검사 비용은 아버지가 부담해야 한다. 어머니가 친부 확인을 게을리한다면 이는 친권의 부분 상실 사유에 해당돼, 법원이 직권으로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다. 또 이혼 뒤에 아이를 기르지 않는 부모 한쪽이 아이를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의무로 정하고 있다.




만약 아이를 안 보여주면?

자녀양육·재산분할·위자료 등에 관한 궁금증 풀이

아이를 볼 수 있는 면접교섭권은 법적 강제력이 있나?

= 재판이혼에서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협의이혼에서는 양육권, 양육비, 면접교섭권, 재산분할 등에 대해 명시하는 절차가 없다. 공증을 받아놓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일종의 증거자료가 된다. 구두로 합의했는데 지키지 않는다면 나중에 각각에 대해 이행 명령을 촉구하는 소송을 낼 수 있다. 공증을 거쳤거나 소송을 통해 이행 명령을 하더라도 교묘하게 아이를 안 보여줄 수 있으므로 부모 쌍방이 이혼 전에 충분히 합의하고 설득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이를 볼지 분명하게 해놓지 않으면 또 다른 다툼이 생길 위험이 있다.
이혼 당시에 아이를 맡지 않았는데 나중에 양육권을 가질 수 있나?

= 법원에서 양육자 지정 변경을 할 수 있다. 부모 쌍방의 합의가 있으면 된다.
공증을 받아두지 않았는데 양육비를 강제할 수 있나?

= 나중에라도 쌍방 합의로 공증을 받을 수 있다. 재판이혼 과정에서나 협의이혼 뒤 추후 소송에서 이행 명령이 있었는데도 지키지 않으면 월급 차압 등 강제집행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양육비 기준은?

= 양육 대상자에게 부나 모가 된 의무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양육자의 경제적 수준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청구 소송이 가능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1년에서 1년 반이 걸린다. 미리 공증해놓는 게 가장 좋다. 통상 아이 한 명당 30만∼50만원 선인데, 달라질 수 있다.
재산분할은 한쪽에 최소 30%를 보장해준다고 하던데 기준이 있나?

= 재산 형성 기여도에 따라 다르다. 전업주부였다 해도 공동재산에 기여했으니까 판례상 3분의 1 정도로 본다. 이혼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맞벌이였고 공동기여가 인정된다면 재판을 해도 반반 정도 나온다.
위자료 계산법은 별도로 있나?

= 없다. 재산분할 개념이 없을 때에는 위자료에 포함돼 계산됐지만, 재산분할 개념이 생기면서 위자료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3천만원선을 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혼 유책자에게 손해배상 차원에서 요구를 하는 것이므로 소득과는 관련이 없다.
도움말: 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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