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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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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왔다는 매직 핸드?

등록 2005-11-02 00:00 수정 2020-05-02 04:24

[한비야의 파키스탄 리포트 7∼8일째]

독일 의사팀의 모습에서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뻔뻔함을 본 날
한국 의료진의 진정성에 감동한 파키스탄 군부, 우호관계여 널리 퍼져라

나와자바드에서 며칠간 함께 지냈던 독일인 의사팀과 약간 마찰이 있었다. 이들도 5명 정도의 인원으로 된 의료진인데, 이들은 무조건 먼 데로, 오지로, 한 번도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만 가고 싶어했다. 군인들이 그렇게 먼 곳에는 마을이 형성돼 있지 않아 환자가 몇십 명 없고 길이 뚫리면 급하고 중한 환자들은 오히려 이곳에 모인다고 해도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깊은 골짜기로 가겠다며 막무가내였다. 마치 헬기가 자기들 자가용인 것처럼 말이다. 현지인 통역으로는 이 지역에 한 명밖에 없는 군의관을 데리고 다니겠다니 더욱 가관이다.

이참에 병사들도 치료해주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많이 보았다. 좀 잘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마치 자기의 인간적인 가치가 높아서인 양 으쓱대는 사람들. 어느 때는 새파란 서양 수련의가 노련한 현지인 의사를 통역으로 쓰면서 진료하는 것도 보았다. 근거도 없이 자기들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뻔뻔스러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이 사람들이 하도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는 지역 군인들의 요청으로 이틀 남은 일정 중 하루는 자바 캠프에, 나머지 하루는 나와자바드 베이스 캠프에 이동병원을 차리기로 했다. 며칠 만에 다시 본 자바 마을 사람들이 무척 반가워한다. 외과의사는 무엇보다 전날에 보았던 외상 환자들을 다시 치료해줄 수 있어서 무척 좋아했다. 며칠간 친해진 타무르 소령과 각 병동의 보조들도 매우 반가워했다.

오후에는 한국에서 김혜자 선생님 일행이 와서 마을과 우리 병동을 둘러보고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동네 여자아이들도 우리가 다시 가니 먼저 좋아라 인사를 하며 십여 명이 떼지어 다니며 하루 종일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산속 동네 아이들은 마음의 문이 이렇게 천천히 열리는가 보다.

내가 우르두어로 “슈크리아”(고마워)라고 하면 자기들은 영어로 “땡큐” 하고, 내가 “땡큐”라고 하면 자기들은 “슈크리아”라고 하면서 톤과 길이를 바꾸어가며 몇십 분을 이 두 단어만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나중에 떠나올 때는 모두가 섭섭해서 ‘호다헤페즈’와 ‘굿바이’를 합창으로 계속 외쳤다. 마을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내일이면 산밑으로 내려가는 날. 우리는 군인들을 상대로 야간 진료를 하기로 했다. 매일 밤 몇몇 군인들이 우리 막사를 찾아와 머리가 아프네, 기침이 나네, 눈이 아프네 하며 약을 원했는데, 가기 전날 아예 군인들만을 대상으로 진료해주자고 우리 의사들이 기특한 제의를 했다. 물론 상주 군의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어쩌면 한국 약이 탐났을 거다.

사방이 깜깜한 병영에 막사를 환히 밝히고 병사들과 마주 앉아 이런 말 저런 말을 나누는 우리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멋져 보였다. 사랑이 넘치는 모습,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헉, 대통령이 직접 온다고?

산골짜기에 있는 동안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준 것은 위성전화 하나였다. 요금을 미리 내서 선불금이 떨어지고 나면 끝인지라 얼마나 마음 졸이며 아껴썼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전화 하나로 5일 동안 문화방송 라디오 생방송과 연결하고, 현장본부에 보고하고, 우리 일행들 돌아가면서 1분씩 집에 안부전화까지 했다. 그래도 보통 때는 배터리 절약 차원으로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 밖에서 오가는 우리에 대한 그 무성한 소문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아랫마을 군의관이 오더니, “당신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매직핸드’들이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웬 ‘마술손’? 사실인즉 그 전날 이런 일이 있었다. 독일인 의사가 한 환자에게 링거를 맞추려고 정맥을 찾는데, 수십 번을 시도하면서 온갖 혈관을 터뜨려놓는 것을 보고 우리 의료진이 한번 해보겠다고 하니, 너희라고 별수 있겠느냐마는 한번 해보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주삿바늘을 건네더란다. 그런데 우리의 마술손 간호사가 단 한 번에 정맥을 찾아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던 아기 환자의 거의 없다시피 하는 정맥까지 역시 단 한 번에 찾아내는 쾌거를 올렸다. 이 소문이 아랫마을까지 난 모양인데,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더 큰일이 생겼다. 어느 날, 우리가 묵고 있는 나와자바드에 무자파드 대통령이 오기로 되어 있다며 전 병력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방문 목적지가 한국 의료진의 이동병원이 있는 자바 캠프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사연은 이랬다. 우리를 도와주었던 아지즈 사단장이 한국 의료진의 인도적 긴급구호 의지와 발빠른 진료에 놀라워했는데, 우리가 걸어서 만다쿠차까지 갔다는 소문까지 들은 거였다. 파키스탄 의사도 가기 꺼리는 곳을 멀리서 온 한국인 의사들이 기꺼이 가주었다는 데 감격한데다 중간에서 타무르 소령 등이 우리의 활동을 잘 전해준 덕분에 사단장은 대통령에게 한국 의료진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한 모양이었다. 대통령은 결국 오지 못했지만 우리가 만세라로 돌아갔을 때 그 사단장은 우리에게 표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다. 이런 한국인의 인도적 구호는 모든 파키스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해서 얼떨결에 파키스탄 국립 라디오와 인터뷰까지 했다.

“왜 한국인들은 힘들어도 웃나요?”

사단장이 물었다.

“어떻게 한국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생글생글 웃을 수 있나요?”

“어머머, 저희가 그런가요?”

“허참, 비야씨는 지금도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고 있잖아요.”

“그건 아마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하여간 이건 정말 잘된 일이다. 군과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작게는 월드비전이 만세라 북쪽 국경 산악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는데 군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고, 크게는 한국과 파키스탄 양국 간의 우호 증진에도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월드비전 국제본부 내에서도 월드비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군부가 얼마 전까지는 시큰둥해하던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하는 월드비전 식량배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긍정적인 답을 한 데는 한국 의료팀의 좋은 이미지가 큰 몫을 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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