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치단체장감’과 ‘대통령감’ 사이

등록 2005-10-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치단체장 경력으로 대권 도전하는 추세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표를 위한 업적 쌓기와 인기 얻기에 치우친다면 공익성 해칠 수도

▣ 김진애/ 도시건축가·서울포럼 대표

조순, 고건,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의 공통점이라면? 자치단체장 경력으로 대권에 도전했거나 후보로 여겨지는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몇이 더 있다. 특히 고건과 이명박은 현재 여론조사 1, 2위로 거론되니, 지방자치 10년의 부수적 성과라 할 수도 있겠다.

지방자치는 미시적, 국정은 거시적

좋은 일이다. 지방자치 역사가 오래된 외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꽤 된다. 미국의 부시, 클린턴, 레이건, 카터 대통령이 주지사 출신이었고, 특히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항상 막강한 후보로 거론된다. 일본에서는 보수우익 인사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도지사가 총리감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프랑스에도 파리 시장 출신의 시라크 대통령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정치와 국가정치의 연계, 지방자치 경영과 국가 경영의 접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민’이자 ‘국민’이 생각해볼 관점들을 짚어보자.

공정하기 위해 먼저 짚어두자면, 자치단체장 경력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되는 길은 물론 있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박근혜,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은 앞으로의 경력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으나, 국정 경륜 키우기의 궤적이 다르다.

자치단체장감과 대통령감은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예단일 수 있겠으나, 박근혜 대표가 자치단체장을 하는 것을 상상하는 국민은 없을 듯싶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서울시 초대 민선시장이었던 조순 전 총리는 ‘대통령감’으로서는 몰라도 ‘시장감’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조순이나 고건은 총리 경력이 고려됐거나 고려되는 셈이다.

자치단체 경영과 국가 경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예산 계획과 집행, 정책 수립과 사업 추진의 업무와 행정, 경제, 산업, 교육, 사회, 문화, 복지, 주택, 도시, 국제 교류 등 영역은 비슷하나, 국정에는 내치뿐 아니라 외교통상, 국방, 남북관계 등 외치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지방자치는 상대적으로 ‘미시적 경영’이 강조되는 반면 국정은 ‘거시적 통할’이 강조된다. 광역자치단체 내에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국가가 되면 사회 통합과 갈등 조정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점도 있다.

자치단체장 경력이 대권으로 가는 길로 여겨지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다섯 인물이 모두 단체장은 한번만 하겠다고 표명해왔다. 조순과 이인제는 대권 도전을 위해 일찍이 사임하기도 했다. 자치단체장이 자발적으로 단임을 천명하는 것이 도시와 지역의 발전에 바람직하기만 할까? 이것은 향후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선택의 변수가 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은 자치단체장 중에서도 주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대통령감으로 거론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하다는 증거다. 세계화와 지방화를 합친 ‘세방화’와 국토 균형 발전이 중요한 이 시대에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사고인가?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정과 시정이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자치단체장의 업무 수행이 대권으로 가는 실적과 인기를 높이는 것으로 정치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문제고, 또 실제로 그런 성향이 ‘지나치다면’ 그것도 문제다. 업적 쌓기와 인기 얻기는 선출직의 자연스런 성장 동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표를 위한 정치공학의 과도함은 공익성을 해치고 그 사회 비용이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단체장감’과 ‘대통령감’에 대해서 시민이자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요새 여러 생각들이 오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국정과 시정이란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권력 의지는 건강한 것으로 인정하되, 과연 현직을 정치 도구화하는 것이 아닌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것이 아닌지, 정책과 예산의 우선순위와 적실성이 지켜지고 있는지, 나라와 사회의 성장과 통합에 도움이 되는지, 정치인의 립 서비스인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수미일관한 언행인지, 시민과 국민이 냉철하게 평가할 일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