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로 승부하는 최초의 보수정치인, 대중들도 감정적 호불호 강해
밀어붙이는 ‘서울사장’이자 마지막 가부장 캐릭터로 민심을 얻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이명박 서울시장의 애칭은 ‘명바기’다. 이명박 시장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 예컨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반대한다보다는 이명박을 ‘조아한다’ ‘시러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성적 찬반보다는 감정적 호불호가 강하다는 뜻이다. “명바기 나빠요.” 한때 누군가는 서울의 버스 정류장에 이명박 시장을 조롱하는 낙서를 휘갈기기도 했다(정치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이 시작되던 지난해 초여름이었다. 당시 인터넷에서 ‘안티 이명박’ 현상은 ‘안티 문희준’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2대 안티 현상이었다. 타이의 무에타이 영화 <옹박>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명박’이 인기를 끌었고, 노래 <서울 구경>을 활용한 ‘안티 버스송’이 히트를 쳤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개편된 서울버스 네 종류에 각각 새겨진 영문 약자 ‘GRYB’를 ‘지랄염병’으로 바꾸어놓기도 했다. 김유식 디씨 인사이드 대표는 “무색무취한 고건, 손학규씨에 대한 패러디는 거의 없지만, 이명박 시장은 캐릭터가 확실해 패러디가 많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조용할 만하면 한건씩 터뜨리니까.”
미디어 플레이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
어언 1년 아니 겨우 1년, 민심은 변했다. 조롱은 호의로 바뀌었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독실한 불교신자를 영입했다. 서울시 봉헌 발언 물타기가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독교인으로서 드문 포용성을 보여주었다는 호의적인 분위기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명바기’를 조롱하던 인터넷에서도 그의 이미지는 ‘미운 털 박힌’에서 ‘예쁜 짓 하는’으로 바뀌고 있다. 이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믿을 만하다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은 그의 캐릭터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고, 그를 더욱 가까운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다. 국회의 법안보다 시장의 사업이 시민 생활에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로 국민의 생활고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교통체계 개편으로 민생고가 더해질 수는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서울시장을 ‘선택’했고, 그의 선택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스타일’로 승부하는 최초의 보수 정치인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명박의 이념보다는 이명박의 스타일에 매혹됐다. 그의 스타일은 일하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은 “그는 어쨌든 무엇이든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의 스타일은 가시적 성과를 내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좋게 말해, 정치인의 공허한 말에 지친 국민에게 청량제 같은 시원함을 선사했다. 이명박 시장 스스로 “입만으로 살아가려는 세상에서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이유로 꼽았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듯, 토목국가 대한민국은 ‘불도저’ 시장을 사랑한다. 서울시민 박기호씨는 “서울 봉헌 같은 ‘막말’이나 히딩크와 가족사진을 찍는 ‘뻘짓’도 청계천에 흐르는 물을 보면, 교통카드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그런 것쯤이야 하고 용서가 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그의 지지자들에게 이명박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덜’ 중요하다. 그저 시원스럽게 일하는 스타일이 좋을 뿐이다. 더구나 그는 미디어의 생리를 안다. 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는 “미디어 플레이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에 능하다”고 평가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명박 시장에게는 연예인스러운 면이 있다”며 “이념보다는 일의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면에서 보수냐, 진보냐의 구분에서 한편으로 벗어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인기를 ‘탈근대적인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장년층엔 향수, 청년층엔 환상
그는 서울시장이 아니라 서울사장이다. 스스로 서울시의 최고경영자(CEO)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김완 활동가는 “한국에서 시장보다는 사장이 이기는 언어게임”이라며 “불황에 시달리는 시민, 특히 취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사장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효과는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21세기의 박정희다. 그는 불도저로 밀어붙여 개울을 만들고, 광장을 열었다. 근대화의 방식으로 생태적인 과제와 문화적인 사업을 수행했다. 어쩌면 전근대적 방식으로 탈근대적 과제를 수행한 것이다. 한 여성단체 간부는 “그를 보면 70~80년대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급훈, ‘하면 된다’가 생각난다”면서도 “밀어붙이기식 사업을 시민의 광장욕구에 어울리는 문화적 장치를 통해 호소력을 극대화한다”고 평가했다. 그가 보여주는 화려한 스펙터클에 민주적 합의를 무시한 독선적 밀어붙이기는 가리워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이미지는 중장년층에게는 개발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청년층에게는 경영성과와 행정 경험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라는 환상을 채워준다. 이동연 교수는 “그에게는 인권 탄압 같은 박정희의 그늘도 없다”며 “20~30대의 신우파들에게 이명박은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면서도 과거지향적이지 않은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장년층에게는 청년 시절과 개발독재는 겹치기 때문에 향수는 더욱 강력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는 양날의 칼을 무기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더구나 한국인에게 개발주의 신화는 잊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과거, 다시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은 어제다.
그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남은 가부장이다. 그의 업적주의는 믿음직한 가부장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언행은 조금 거칠지만 가슴은 따뜻한 아버지 같은 사람, 이라는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불안한 한국인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이미지다. 이명박 시장은 박근혜 대표와 다르고,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 박 대표가 아버지의 유산에 갇힌 ‘유신 공주’라면, 이 시장은 스스로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다. 알다시피, 박 대표는 여성이고 이 시장은 남성이다. 성공신화를 우상화하고 여성을 불편해하는 한국의 보수층에게 누가 호소력이 크겠는가? 그는 다른 경쟁자에 견줘도 가부장의 이미지에 가깝다. 김완 활동가는 “고건이 선비라면, 이명박은 노가다꾼”이라고 비유했다. 이동연 교수는 “손학규씨가 우유부단해 보인다면, 이명박 시장은 단호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회창씨의 이미지가 온실 속의 대쪽이라면, 이 시장은 들판에서 큰 잡초 같다. 물론 비판도 거세다. 최보은 <진주신문> 편집국장은 “보수 언론이 이명박을 ‘띄우는’ 이유는 박근혜 대표는 왠지 기존의 권력 화법으로는 잘 안 통할 것 같지만, 이명박 시장은 자신들과 말이 통하는 한 통속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어떤 점’에서 닮았다. 이명박과 노무현은 누가 뭐라든 제 갈 길을 가는 스타일의 인물이다. 혼자 고민하고, 감으로 결정하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왕자 기질’도 닮았다.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는 면모도 비슷하다. 그리고 둘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의 양태도 비슷하다. 집착하거나 혹은 증오하거나.
소수자 의제에서 ‘상식’이 안 통한다
이명박 시장의 다른 얼굴은 소수자 의제에서 드러난다. 이 시장은 시민단체에 벽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시민사회의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광장, 청계천 복원 등의 사업 방향을 놓고 서울시와 대립해온 문화연대의 김완 활동가는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 시민사회가 서울시의 문제에 개입해왔지만 서울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며 “이 시장은 공공 부문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 이사 선임건을 예로 들었다. 김 활동가는 “요즘 다른 공공기관은 산하단체 재단 이사를 선임할 때,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인사위원회를 구성한다”며 “하지만 서울시는 자신들이 만든 조례까지 무시해가면서 시장 독단으로 이사를 선임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04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탤런트 유인촌씨를 임명했으나, 유씨가 서울시의 공모에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김 활동가는 이 시장의 의사소통 방식을 “직선의 소통”이라고 표현했다. 비판하면 배제하고, 비판자를 비난해서 돌파한다는 것이다. 이 시장의 시야에 노점상의 가난은 있을지 모르지만, 장애인의 불편은 없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위해 소수자는 배제된다. 청계천에서 새물맞이 행사가 열리던 날, 서울장애인철폐연대는 청계천변에서 시위를 벌였다.
청계천변의 인도 폭이 좁아 장애인이 다니기 어렵다는 항의시위였다. 김완 활동가는 “청계천에 장애인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며 “하지만 서울시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그런 사람들까지 다닐 수 있게 하려면 언제 공사를 끝내느냐는 식으로 무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응의 접점을 잃어버린다”며 허탈해했다. 이 시장에게 다양성을 위한 문화정치는 어쩌면 불가해한 것인지 모른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여성학)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개발주의에 효율성을 재고하게 하는 장애인 같은 대립주체들은 무시된다”고 분석했다.
이 시장은 여성단체에도 벽이다. 그는 2003년 여성단체연합(여연)이 주는 ‘여성권익 걸림돌상’을 받았다. 여연은 수상 이유로 “이 시장은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지방행정의 모범사례로 여겨져온 서울시 여성정책관실을 폐지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행정으로 여성정책을 뒷걸음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여성정책관실 폐지에 항의하러 서울시에 갔던 여성운동가는 “이 시장은 오히려 공격적인 방어를 했고, 자기 소신을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고 돌이켰다. 서울시는 여성정책관실을 폐지하고, 복지여성국을 신설했다. 그리고 복지여성국에 최초의 여성국장을 임명했다. 여성단체 간부는 “여성국장이 임명됐지만, 복지여성국 안에 여성 관련 부서는 오히려 축소됐다”며 “이처럼 여성을 상징적 조처의 대상으로 여길 뿐 여성정책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시장을 “탈근대적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정치인”이라고 요약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은 여전히 토목국가이고, 토목국가의 건설시장은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자신감은 지지자들을 열광시킨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저서 <사람 vs 사람>의 ‘이명박 vs 박찬욱’ 편에서 “쿨한 정도가 지나쳐 매사 쉽게 포기하고 타협해버리는 풍토에서 이명박처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당당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성향이 그 사람이 가진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불가능한 파워’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면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라고 썼다. 지금 이명박 시장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가부장 캐릭터로, 추진력이 강한 서울사장 이미지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그가 이끄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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