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국보위에서 블랙코미디 연출하며 통과된 택촉법의 역사
빈 땅만 보이면 건설자본 끌어들이는 행태를 지금도 계속해야 하나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우리나라 도시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2003년 펴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넷째권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법 가운데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만 한 위력을 가진 법률이 몇개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고 적었다. 1981년부터 효력을 발휘한 이 법은 7월 현재까지 632개 지구, 1억5861만7천평의 땅을 아파트 숲으로 바꿔버렸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여의도(89만평)의 178배나 된다.
지난해에만 1541만5천평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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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택촉법의 세례를 받은 곳은 1981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서울 고덕과 개포지구였다. 택촉법은 이후 우리 사회에 ‘주거권’ 개념을 처음 각인시킨 목동지구(1984년)의 가열찬 철거 투쟁을 넘어, 서울 동북쪽에 형성된 마들평야를 갈아엎기까지(상계·중계지구 개발) 거침없는 속도로 서울 곳곳을 대단위 아파트로 채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상계동 주민들의 철거 투쟁을 그린 기록영화 <상계동 올림픽>과, 영화 <초록 물고기>(고양 일산지구 개발)가 만들어졌지만, 택촉법의 거침없는 수레바퀴를 멈출 수는 없었다.
1989년 분당 택지개발 사업을 시작으로 도시는 남쪽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경기 남부의 너른 평야는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5대 신도시로 탈바꿈했고, 대전 둔산지구, 청주 용암지구, 대구 성서지구, 김해 내외지구 등 주요 지방 도시 주변에도 아파트 숲이 빽빽이 들어섰다. 2004년 현재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2.2%에 달했는데도, 건설교통부는 “여전히 집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지난해에만 여의도의 17.3배 넓이인 1541만5천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묶어버렸다. 이는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가 개발된 1989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이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급 부족을 논리로 빈 땅만 보이면 택촉법을 ‘들이대는’ 건설자본의 횡포에 눈이 휘둥그레진다”고 말했다(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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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촉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노라면, 우연과 필연이 절묘하게 결합된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4권 참조). 전두환이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체육관 선거’를 가능하게 만든 제5공화국 헌법을 제정·공포한 것은 1980년 10월27일이다. 이 헌법으로 10대 국회가 해산됐고,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를 거쳐 다음 국회가 문을 열 때까지 6개월 동안의 공백이 생겼다. 이 기간 동안 정치인·학자·공무원 81명으로 꾸려진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가 국회를 대신해 입법 기능을 담당했다.
토지개발공사(현 한국토지공사)법 제정으로 토개공이 설립·출범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전인 1979년 3월27일이다. 초대 사장은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차관·원호처장(현 국가보훈처)을 지낸 유근창, 부사장은 국방부 시절 시설국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소장 이종열이 임명됐다. 발족 직후 토개공이 처음 한 일은 전국에 택지로 개발 가능한 땅이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전국에 1797개 지구 3억3092만7천㎡의 땅이 자연녹지나 생산녹지(절대농지)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1980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56.1%에 불과했다. 국보위 경제과학분과 위원이자 현역 육군 중령이었던 오관치는 경제과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김재익과 주택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에 집이 부족한 원인은 비싼 땅값이었다. 둘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택지를 싼 값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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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택지개발 촉진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이름의 법률 초안이 만들어졌다. 택촉법 시행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는 토개공의 이송만 기획조정본부장과 오관치가 1980년 7월 공동으로 법안의 뼈대를 잡았다. 그 법안은 같은 해 8월5일에 건설부로 넘어와 주택국·토지국 간부들에 의해 말끔히 손질된다. 택촉법은 토공과 주공에 원하는 땅은 어디든지 택지로 개발해 ‘공공’의 이름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 법률이 시행된 첫해인 1981년 당시 1320억원에 불과했던 토공의 자본금은 2004년 현재 15조3825억원으로 100배 넘게 성장했다. 토공의 급격한 사세 확장은 택촉법이 있기에 가능했다.
박정희 독재권력도 감히 생각 못했다
손 명예교수는 “택촉법과 같이 사유재산권을 엄청나게 침해하는 법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권력으로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보위 시절 전두환 정권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1980년 12월11일 법률은 국보위 입법회의에 제출됐고, 토개공 간부들의 치열한 로비가 펼쳐졌다. 법률을 심의한 국보위 입법회의 경제2분과위원회 인사 13명의 직업은 목사·신부·전몰군경 유가족 대표·노동운동가·사관학교 출신의 직업군인·대학총장 등이었다. 그들이 법안의 내용과 파급효과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회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법의 원안은 ‘택지개발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었는데, 나중에 ‘큰 특례도 아니니 특례법이라는 것을 삭제해버리자”는 정순호 경제 제2분과위원회 전문위원(당시 건설부 토지국장)의 의견에 따라 ‘택지개발촉진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법안은 그 이름으로 국보위를 통과했다. 1980년 12월16일 오후 2시32분이었다. 손 명예교수는 “건설부 간부들이 모여 북 치고 장구 친 꼴”이라고 입법 과정을 비꼬았다.
전문가들은 “택촉법으로 우리나라 주택난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만 택촉법은 이제 사회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법이다.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주공·토공의 ‘땅장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강제 수용된 ‘공공’택지는, 땅을 분양받은 ‘민간’ 건설회사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안명균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한해 동안에만 경기도 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서 800만평 가까운 땅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다”며 “환경을 파괴하고 수도권 인구 집중을 조장하는 택촉법의 횡포에 맞서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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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입자들에겐 더 가혹하다 |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의 또 다른 문제는 세입자 대책이다. 택지개발예정지구에 사는 세입자들은 ‘3개월치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가계지출비’에 맞춰 지급되는 주거이전비(4인 가족 기준 870만원)나 임대아파트 입주권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공람 공고일 3개월 전부터 사업지구에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윤임순 판교주민통합위원회 조직국장은 “택지개발예정지구에 사는 세입자 대부분은 무허가 건물에 살거나 주민등록 이전을 하지 않아 보상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철거민 단체들은 생활 기반을 잡을 때까지 임시로 살 수 있는 가이주단지와 영구임대 아파트 수준의 저렴한 주택 제공 등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 시행자인 주공·토공쪽과 철거민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져 지난 4월 오산 사건 때처럼 사람이 죽기도 한다.
보상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도 문제다. 주거이전비를 받는 경우, 택지개발로 주변 동네 집값이 크게 올라 생계 터전을 벗어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한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은 사람은 1천만원이 넘는 임대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는다. 이호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택지개발로 극빈층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거지가 크게 줄고 있지만, 현행 법령으로는 이들을 흡수할 만한 공간 마련이 마땅치 않다”며 “수조원에 달하는 개발이익을 도시 빈민들을 위해 사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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