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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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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안 보고 먹을 순 없나요

등록 2005-10-04 00:00 수정 2020-05-02 04:24

허름한 분식집이나 패스트푸드점 외엔 식당에서 혼자 먹기 힘든 문화
전용 좌석 설치한 식당, 만들어 먹는 테이크아웃 코너 등이 싱글족에게 유용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혼자 먹기를 좋아하는 신아무개(33)씨. 방해받지 않는 여유로운 식사를 즐긴다. 그는 혼자 먹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적이 있다고 한다. 음식점 주인과 손님이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선 안을 살펴야 한다. 붐빌 때 들어가 4석짜리 테이블을 차지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 맛있는 식당은 가지 못한다. 집 앞의 허름한 분식집이나 패스트푸드점이 그나마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장소다.

좌석회전율 높인 ‘페퍼런치’

식당에 들어가도 일단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한다. 찌개나 탕 종류는 아예 1인분 주문을 받지 않는다. 혼자 먹는 사람은 주인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손님이기 때문에, 식당의 손이 덜 가는, 조리가 간편한 음식을 시켜야 한다. 비빔밥은 좋지만 부대찌개는 금물이다.

어쨌거나 한국은 아직 사람들이 혼자 먹기 힘든 나라다. 혼자 먹는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혼자 만들어 먹기도 만만치 않다. 혼자 먹는 사람들은 허름한 분식집에서, 정크푸드가 판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조용히 먹어야 한다.

서울 명동의 일본계 퓨전 레스토랑 페퍼런치. 이곳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혼자 먹는 사람들 전용의 좌석 배치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혼자 먹는 사람은 고객의 30%에 이른다. 테이블은 하나도 없고 모두 바 형태다. 페퍼런치의 원정훈 대리는 “처음엔 100% 바 형태로 좌석 배치를 했더니 함께 오는 손님들의 거부감이 있어, 새로 문을 연 여의도·홍대·압구정 지점에는 바와 테이블을 병행 설치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혼자 먹는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원 대리는 “바 형태의 좌석은 점심시간에 명동과 여의도 지점에서 인기”라며 “인근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직장인들이 주고객층”이라고 말했다. 페퍼런치 외에도 토니로마스, 아웃백스테이크 등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바와 테이블을 함께 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페퍼런치는 빠른 서비스를 강조한다. 모토도 ‘100초의 맛있는 상상’이다. 3분 남짓만 기다리면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페퍼런치 매장 안에 있는 시계에는 5분 안에 조리를 끝내 15분 안에 식사를 마치는 시간표가 그려져 있다. 그런지라 페퍼런치의 하루 평균 테이블 회전율은 10회다. 즉, 한 자리에 하루 10명의 손님이 왔다간다는 의미다. 일반 레스토랑의 평균 테이블 회전율이 4~5회인 것에 견줘보면, 공간 활용도가 2배에 이른다. 일반 레스토랑처럼 상품(음식)을 대량판매하지 않은 대신 빠른 서비스로 테이블 회전율을 높임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인 셈이다.

일본이나 미국에는 이런 바 형태의 레스토랑이 일반화됐다. 테이블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한쪽에는 바가 있다. 혼자 먹는 사람들을 위한 편리와 이에 대한 자본의 서비스가 조응한 외식문화다. 물론 자본이 혼자 먹는 사람들을 만들었는지, 혼자 먹는 사람들이 그런 자본의 서비스를 이끌었는지, 그 선후관계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혼자먹는 것에도 빈부격차가…

혼자 먹는 사람들에게 만들어 먹기는 밖에서 사 먹기보다는 그나마 편하다. 3~4년 전부터 백화점 슈퍼와 할인매장을 중심으로 채소·야채류의 조각 판매가 보편화됐다. 최근에는 백화점의 테이크아웃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비빔밥·오므라이스·국수 등 일품 정식을 패스트푸드화해 즉석에서 먹거나 포장해 판매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퇴근 전에 백화점에 들러 사가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며 “2001년 일본에서 벤치마킹해 신세계 강남점이 이런 형태의 테이크아웃 코너를 만든 뒤, 서울 시내 백화점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싱글족 음식문화는 비교적 고소득층에게만 해당한다. 바가 설치된 퓨전 레스토랑은 아직 고가이고, 자동차를 가져가야 편리한 할인매장과 시내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에 대한 접근 편의성은 아무래도 대학생이나 생산직 노동자보다는 화이트칼라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혼자 먹기 힘든 문화에도 소득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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