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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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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주의는 무시무시한 부메랑!

등록 2005-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만난 부시의 미국
“안보 안보” 하면서도 국민들의 안전을 내팽개친 이 치명적인 역설이여

▣ 정욱식/ 한반도평화네트워크 대표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9·11 테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4년째가 되었다. 그러나 9·11 4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미국의 자화상은 우울하기만 하다. ‘제국의 문’이라고 일컬어지던 이라크 침공은 아랍연맹 전 사무총장의 표현처럼 ‘지옥의 문’을 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9·11 테러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인적·물적 피해와 함께 미국식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오고 있다. 이라크 전비를 포함해 국방비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사이에 미국은 8조달러에 달하는 빚더미에 앉았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라며 제국의 종말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시가 이라크의 절반만 미국 국민들에게 신경썼다면 카트리나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울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9·11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카트리나 참사는 미국의 굴절된 안보관과 왜곡된 자원분배 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9·11 4주년, 미국의 신뢰는 바닥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오늘날 미국은 군사주의와 일방주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는 이라크 침공과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될 카트리나는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이라크 침공은 부시의 일방주의와 그 실패를 상징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라크 침공을 주창해온 미국 네오콘들에게 부시의 당선과 9·11 테러는 자신들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됐다. 그리고 이라크 점령을 통해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장악하고 중동 전체를 친미 질서로 대체하면, ‘제국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알카에다와 후세인 정권 사이의 연계설도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더구나 2003년 5월1일 부시가 승리를 선언한 이후 오히려 전쟁이 본격화되고 전쟁 비용도 폭등하면서 미국 안팎의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당황한 부시 행정부는 미군 사망자가 2천명에 육박하고 연일 수십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이라크 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항전을 다짐하는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 여론은 싸늘해지고 있다. 침공 초기 70%를 넘나들던 부시에 대한 지지율은 40% 미만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특히 미국 내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군 철수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전쟁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빗나간 애국주의 열풍도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이라크의 민심이다. 후세인 정권의 주된 지지기반이었던 수니파는 물론이고, 침공 초기 미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시아파들도 미군 주둔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공언해온 것처럼 자유선거를 통해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수립될 경우, 새로운 정부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시아파가 주축이 될 이라크 정부가 이란과 연대할 경우 미국의 중동전략은 총체적인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카트리나 참사 역시 미국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굳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교토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지구적 노력에서 이탈한 원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이번 참사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참사는 미국의 자원분배 체계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말해준다.

‘군사주의 드림팀’ 꾸려왔다

부시 행정부는 매년 전세계 군사비의 절반에 가까운 5천억달러를 군사비로 쓰고 있다. 이는 연방정부 총예산의 20%를 웃돈다. 2001년 취임 이후 군사비를 무려 41%나 늘린 부시 행정부는 정작 재난 방지 및 사회복지 예산은 엄청 줄였다. 특히 이번 참사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인 뉴올리언스의 콘크리트 제방을 보수하기 위해 주정부가 요청한 1억400만달러를 4천만달러로 깎았다. 참고로 부시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 실험을 한번 하는 데 약 1억달러가 소요된다. 또한 긴급 복구에 필요한 주 방위군의 30%와 장비의 절반이 이라크로 투입돼 신속한 대처와 복구를 어렵게 했다. 카트리나 참사를 인재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개의 키워드를 새겨둘 필요가 있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그것이다. 부시의 화법에서 잘 드러나듯이 오늘날 미국 정부는 세계를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구조로 보면서, “악을 제거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미국과 미국을 따르는 나라는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다라는 극단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부시의 기독교 원리주의는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된 군사주의와 만나게 되었다. 부시의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인물들을 보면 ‘군사주의의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부시 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군수산업체을 두루 거쳤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평가받는 딕 체니, MD 및 우주의 군사적 선점의 주창자이자 이라크 침공과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대표적인 네오콘 이론가이자 아버지 부시 때 국방부 차관을 지낸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1기 때 국방부 부장관), 협상보다는 군사력으로 북한과 이라크를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1기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으로 구성된 부시의 외교안보팀은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패권 강화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 때를 ‘잃어버린 8년’이라고 규정하고는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자신들이 꿈꿔온 군사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추진해왔다.

또 한 가지 최악의 만남은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의 만남이다.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은 것으로, “미국은 우월하기 때문에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에 있어 다른 나라의 모범이자 다른 나라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이상이기 때문에 미국식 체제는 가장 우월하고, 이러한 미국을 보호하고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규범에 미국이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주권의 제한’에 있다는 상식조차 오늘날 미국에서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군사전략엔 과도, 인간안보엔 무관심

부시는 안보를 전면에 내세워 두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미국이 안전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부시 행정부 말고는 없는 듯하다. 기실 9·11 테러도 부시가 말한 위협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MD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던 부시는 북한, 이란 등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다가, 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여객기에 당하고 말았다. MD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테러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또한 9·11 테러나 대량살상무기와도 관계가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 수천명의 미군과 수만명의 이라크인을 희생시켰고, 테러 위협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부의 문제를 외면하다가 카트리나의 피해를 키웠다. 부시의 미국으로 인해 국제 안보도, 미국의 안보도, 미국민의 안보도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유엔이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군사전략만 과도하게 개발하고 있으며 인간안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의 모순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빈곤과 차별, 환경오염과 질병 등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소홀하면, 그 부메랑에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위협 인식과 대응 방식이다. 9·11 이후 미국은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사용해왔다. 그러나 군사적 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군사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사이에 비군사적 위협에 취약성을 드러냈고,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소홀했다. 이를 반영하듯 유엔은 미국 하층민의 ‘인간안보’가 제3세계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안보 안보” 하면서도 미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전례 없는 위협에 봉착하고 있는 지독한 역설이 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다가, 한국도 반미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보다 3~4배의 군사비를 쓰고도, “아직도 우리가 약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을 확보한다며,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군사비를 쓰고 있다.

노무현 정부 국방비 증액도 위험하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빈곤 문제와 군비 증강의 악순환이다. ‘빈곤층 700만 시대’가 말해주듯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절대빈곤과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빈곤의 대물림이 결합된 일부 남미 국가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그러나 ‘서민 대통령’ ‘국민 통합’을 내세우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 들어 빈곤 문제는 날로 악화되는 반면에 국방비는 매년 10% 안팎씩 증액되고 있고, 이러한 증가 추세는 국방개혁을 명분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국방비를 줄인다고 해서 빈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필요한 전력증강 사업을 줄이고 장교를 포함해 병력을 감축한다면 상당액의 국방비 절감은 가능하다. 가령 올해 국방비의 2%만 줄이면, 2006년 예산안 가운데 약 3조원을 사회복지비에 추가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3조원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와 같은 예산 전환과 다른 사회복지 대책이 조화를 이룬다면 빈곤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수백만의 국민들에게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고사에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말이 있다.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호(胡=오랑캐)가 아니라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胡亥)였다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군사 패권주의에 빠져 있는 부시 대통령과 ‘돈과 무기’로 자주국방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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