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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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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했다, 사랑한다…

등록 2005-08-23 00:00 수정 2020-05-02 04:24

도청 사건에서도 DJ 책임 살짝 눈 감아 주고 호남에 구애하는 한나라당
오랜‘적’을 끌어안으며 ‘어부지리’ 노리지만 효과는 의문으로 남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DJ를 굳이 공격할 의사는 없다.”

한나라당 당직자의 말이다. DJ가 한나라당의 타킷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옛 안기부)의 불법 도·감청이 ‘국민의 정부’ 때도 있었다는 국정원의 발표가 나온 뒤, ‘X파일’ 국면이 김대중 정부로 옮겨붙는 과정에서 나온 한나라당의 반응을 압축해 보여준다. 논평을 통해서도 가급적 ‘김대중 정부’ 등 DJ를 직접 겨낭하는 듯한 표현은 피하고, ‘노무현 정권을 만든 전신 정권’으로 누그러뜨리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초점은 한나라당의 표현대로라면 “공작정치의 산물”인 참여정부로 모아졌다. 한나라당이 뿌리부터 따지자면 30년의 경쟁관계에 있는 DJ의 ‘잘못’을 살짝 눈감아주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DJ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었기에, 이러한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일까.

“모든 것을 노무현 책임으로”

DJ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의 정치적 ‘적’이었다. 때론 밟고 일어서고 때론 끌어내려야 할 운명이었다. 지난 두번의 대선 때도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략이 유지됐다. 그러나 두번 다 실패했다. DJ와 극단적인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곧 호남을 버리는 것을 뜻했다. DJ와 호남은 분리될 수 없는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호남 출신 의원은 121명의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한명도 나오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전략을 바꿨다. 아니,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 진정성은 제쳐놓고라도 ‘서진정책’으로 불리는 호남 끌어안기에 정성을 쏟았다. 수도권까지 포함해 20~25%에 이르는 호남세력을 버리고서는 집권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행동에 앞장선 것은 박근혜 대표다. 정치적으로 DJ를 혹독하게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그는 지난해 8월12일 DJ를 찾았다.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4월에는 DJ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을 방문했다. 지난해 3월28일 당 대표를 맡자마자 광주 국립 5·18묘역을 참배한 이후, 부쩍 호남행이 잦아졌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대비되는 모습이자, 한나라당의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확실히 DJ와 호남을 대하는 한나라당의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X파일 국면에선 DJ를 옹호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국민의 정부 때 도청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한나라당)가 봐도 DJ가 도청을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DJ의 말을 신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DJ를 감싸고 돌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정부의 과오를 참여정부로 귀결시키려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DJ에게 또 한번 화해의 손짓을 보낸 것이기도 하다. 한 당직자는 “모든 것을 노무현 대통령으로 연관시킬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운명적인 대립관계인 DJ가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표적이 살아 있는 권력으로 이동한 것은 한나라당의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한나라당으로선 굳이 DJ와 게임을 할 이유가 없게 됐다. 물론 바탕엔 ‘김대중 선생님’을 물어뜯어 다시 호남민들과 앙금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영남 보수파 의원들은 부정적 평가

6·15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DJ의 업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당내 분위기가 확산된 것도 DJ를 향한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한 요인이다. 당내 지역화합특위(위원장 정의화 의원) 차원에서 DJ의 생가 방문과 재평가 작업도 이뤄졌다. 한나라당이 DJ를 다시 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당내 영남 보수파 의원 상당수의 생각은 현 당 지도부와 사뭇 다르다. 이방호 의원은 “불법 대북송금을 통해 정상회담 뒷거래를 하고, 햇볕정책이 남한의 이념적 무장해제를 가져온 것을 고려할 때 아직까지 DJ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이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호남에 보내는 ‘러브콜’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시발이 될 순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나라당이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지만 호남의 민심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이후 2~12%의 폭 안에서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일관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표 참조). 물론 통계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의 거부감이 많이 준 것은 그나마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닥쳤을 때 호남 민심이 한나라당을 선택할까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DJ의 마음을 얻어야 할 처지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DJ와 호남에 ‘올인’하는 듯한 인상은 영남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데다, 마땅히 줄 것도 없는 형편이다.

최근 DJ와 노무현의 갈등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은근히 국면을 즐길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YS만 부각되면 한나라당에 치명타지만, DJ도 (불법 도청을) 했다고 하면 희석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노무현이 DJ를 걸고넘어지면 한나라당에 좋은 것일 수 있다. 우리로서는 DJ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과 DJ의 갈등이 개혁세력의 내분이든 뭐든 간에 호남의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설 수 있다. 어부지리를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현 정부에 대한 호남소외론이 확산되는 것은, 호남민이 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눈길을 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대통령이 정치권 전체를 겨냥하면…

그러나 노무현과 DJ의 분열과 갈등은 한나라당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DJ까지 끌어낸 마당에, 정치권 전체를 향해 칼을 휘두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주류세력 교체 시나리오가 그 실현 가능성은 놔두고서, 노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론과 맞물려 한나라당이 가장 경계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한나라당은 집권을 위해서나 집권 뒤 국민통합 차원에서라도 DJ와 호남을 끌어안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DJ와 호남이 한나라당의 품에 안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둘 사이의 비대칭은 한나라당에서 호남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이 전면에 나서거나, 상대적으로 진보개혁 성향이 강한 호남민의 정치적 요구가 한나라당에서도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시점이 돼서야 겨우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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