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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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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세금을 안 내도 좋은가

등록 2001-01-09 00:00 수정 2020-05-02 04:21

성직자 납세는 개별적 선택사항… ‘돈세탁 통로’ 오명도

종교단체는 비영리법인 중에서도 공익법인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거의 모든 세금이 면제된다. 교회나 사찰이 부동산이나 각종 자산을 취득할 때는 물론이고, 헌금이나 시줏돈, 기부금 등으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수입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기부금 출연재산이나 건물신축 등도 선교, 복음전파, 사회봉사나 교육 등 정관상 나와 있는 고유목적에 해당하는 일에 쓰일 때에는 세금을 물지 않는다. 유일하게 과세되는 영역은 교회건물을 세놓거나 영리목적으로 사업체를 별도로 차려 수익을 얻는 경우다.

하지만 지금의 세법은 헌금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묻지 않는다. 국세청은 “교회가 헌금 사용내역을 세무당국에 제출할 의무가 없는 만큼 받은 헌금을 어디에 쓰는지 그 내용은 알수 없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세금이 실제로 종교 고유목적에 쓰이는지 아니면 비종교적인데로 흘러가는지 그 쓰임새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는 셈이다. 예컨대 유용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무당국이 순복음교회 헌금의 사용처에 대해 세무조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는 성직자나 교직자들은 세금을 낼까? 목사와 신부를 비롯해 교회나 사찰에 근무하는 이들의 월급은 역시 원칙적으로 과세대상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세법에도 교회법에도 딱히 규정이 없다. 목사 월급의 경우 받는 사람에게는 분명 소득이지만, 교회쪽에서 보면 이것도 교회 고유목적에 쓰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개신교의 경우 드물게 일부 목사들이 소득세를 내고 있고, 천주교의 경우 94년 각 교구 총대리신부회의에서 처음 이야기가 나온 이래 교구별로 수입산출 기준을 정하고 면세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신부들은 소득세를 내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권고사항이다.

“애국심 이전에 자존심 문제”

성직자의 월급이 과세대상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그동안 계속 평행선을 그어왔다. 매달 급여를 받으므로 납세의 의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봉사료를 받는 것이므로 근로소득이 아니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전자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의 기본 원칙에 따른 것이고 후자는 이미 납세의 의무를 다한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온 돈이므로 세금을 낸다면 이중과세라는 주장이다.

세법과 교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납세 유무는 개별 성직자들의 선택에 맡겨진 상황이다. 건물신축 때 세금을 내고 다달이 소득세도 내고 있는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 김동호 목사는 “교회이기 때문에 특별히 감면을 받을 생각이 없다”며 이는 “애국심 이전에 자존심 문제”라고 말했다.

교회와 사찰에 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헌금 규모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헌금, 기부금의 사용은 전적으로 개별 교회와 사찰의 소관이며 사용내역을 과세당국에 제출해야 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세무조사 대상도 아니다. 몇몇 교회나 사찰이 돈세탁 통로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안게 된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정당국이나 세무당국이 주요한 공금유용 사건이나 탈세의혹을 조사할 때 난관에 부닥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의 외화밀반출 및 횡령사건이다. 최 전 회장은 96∼98년 사이에 대한생명 보험계약자들이 맡긴 돈 수천억원을 불법으로 빼돌려 대한생명에 엄청난 부실을 초래했고, 이 부실을 지금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모두 메웠다. 최 회장이 빼돌린 돈을 검찰과 금융당국에서 추적을 해 다시 회수하려고 했지만 “교회에 기부했다”는 최 전 회장쪽의 해명 하나로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교회쪽으로서는 수천억원의 눈먼돈이 들어온 셈인데, 장부에 남아 있는 기록은 전혀 없다. 세금을 매기지 않으니까 기록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나 사찰에서 기부금이나 헌금을 받지 않았더라도 기부자의 ‘합법적 탈세’을 도와주기 위해 받았다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법인이나 개인인 연말 세금정산 때 교회와 사찰의 허위 기부금 증서가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만약 교회 사찰의 기부수익에 대해 세금을 메긴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기부액이 늘어나는 만큼 세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세제실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종교적 목적으로 쓴 돈에 대해 선진국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많은 세제혜택을 주다보니까 종교단체가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세제개혁작업을 할 때마다 이 문제를 건드려보려고 시도해보지만 종교단체의 거센 반발을 살 게 뻔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설 엄두를 못낸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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