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연방의회 의원들의 영리 활동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겸직을 허용하는 나라들도 ‘이익 옹호 행위’ 금지하거나 수입 신고 의무화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지난 연말 독일의 기민당 로렌츠 마이어 사무총장이 급작스레 사퇴했다. 에너지 회사 RWE에서 연간 1억1300여만원의 고정 급여를 받은 사실이 탄로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후 같은 당의 물러 의원은 민간은행인 드레스드너방크로부터 다달이 280여만원을 받은 것이 불거져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잇따른 두 사건은 국회의원들의 겸직을 어떻게 볼지 뜨거운 논쟁을 유발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국회의원이 사기업의 임직원을 맡는다고 해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은 없다. 현재 민간기업의 대표나 임직원을 겸직하는 의원은 2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의 민간기업 임직원 겸직 금지를 강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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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_ “연봉의 15% 이상 가외 수입 금지”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을 꼽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의회 의원들의 영리 활동 겸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도서관 입법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의원 겸직’(서복경 연구관)을 보면, “미 연방의원은 윤리강령을 통해 의원직을 이용하거나 그 명의를 대여해 외부인이나 외부 조직이 이익을 얻게 함으로써 보수를 받는 행위, 의원직을 전업으로 택한 취지에 맞지 않는 다른 직업이나 활동, 민간단체나 조직을 대표하거나 그 임원으로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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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미 연방정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직자윤리법 501조에 따라 연방 상·하의원은 연봉 15%가 넘는 외부 수입을 얻지 못하도록 폭넓게 겸직을 규제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연방의원들이 (외부) 수입을 가져오기 어렵게 돼 있을 뿐 아니라, 교수직을 갖고 그대로 의정 활동을 하거나 변호사나 의사가 개업을 유지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말했다. 진정구 국회사무처 미주주재관(부이사관)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미국 변호사의 직업윤리는 다른 직업을 갖게 돼 변호사의 업무를 거의 수행할 수 없게 되거나, 중요한 직위를 맡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에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며 “이 때문에 다른 규정에서 겸직 금지를 하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의원이 된 경우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국_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 의원의 배제”
내각제인 영국은 의원의 겸직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대신, 관련 장관직에 취임하거나 의회 내에서 이해관계에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거나 심사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된다. 의원들은 ‘의원의 이해관계에 관한 위원회’에 관련 이해관계를 의무적으로 등록한 뒤 등록의 허위 유무를 감독받는다. ‘기준을 위한 의회 감독관’이 이 일을 맡는다. 겸직을 거의 제한하지 않으면서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는 우리와 가장 크게 비교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의회는 2002년부터 “보수를 받는 이익 옹호 행위”를 금지했다.
프랑스_ “민간기업 임원의 겸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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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원래 민간기업에서의 겸직이 폭넓게 인정됐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개인 사업상의 관계로 정부에 종속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겸직 금지가 확대되고 있다. 선거법에서 정부의 보조를 받거나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영리 목적의 부동산 회사, 자신의 지분이 50%를 초과하는 회사의 사장, 이사 등의 임원 겸직을 금지한다. 특히 변호사인 의원의 변론 대상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놓았다. 국가나 공공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변론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언론이나 금융기관 여·수신과 관련된 사건의 변론도 할 수 없다. 이에 견줘 우리나라 의원 변호사들은 금융기관 여·수신 사건이나 정부투자기관 관련 사건 등을 제한 없이 수임하고 있다.
일본_ “세비 50%를 넘는 수입의 신고 의무화”
일본은 우리와 가장 비슷하다. 국회 의장·부의장이 기업·단체 임원의 겸직을 할 수 없고 상임위원장이 소관 기업의 임원 겸직을 금지하는 것이 우리와 똑같다. 오히려 연간 1천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기업 또는 단체의 명칭, 임무에 관한 신고만을 의무화한 점은 우리보다 느슨하다. 우리나라는 보수를 받는 모든 겸직이 신고 대상이다. 하지만 신고가 강제 조항이 아닌데다 제재가 없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신고 의무나 겸직 금지를 위반했을 때, “일정 기간 등원제한 또는 임원이나 위원장직의 사임 경고”를 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의원이 변호사·의사·사업가로서 일하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공직의 겸직이 금지돼 있으며, 이러한 취지에 맞춰 공립 교수나 교사를 겸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실에서 사법연수 중인 독일인 박성관(윔멜·31)씨는 “문제는 의원의 겸직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제한과 그 투명성 확보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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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주아의 무기’로 출발하다 |
의원 겸직은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의 무기였다. 의회 제도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왕정으로부터 의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수단이었다. 경제적 안정을 발판으로 의회에 진출한 상업자본가 계층은 꿀릴 것 없이 왕과의 타협, 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의원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아예 자신의 독자적 재산과 수입까지 요구했다. 그래야 부패나 유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영국의 의회 발전 초기에 의원이 되려면 일정 정도 이상의 재산세를 낼 수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의원은 초기에 돈을 받지 않는 명예직이었다. 기껏해야 지역 거주지에서 의사당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하는 데 든 교통비와 숙박비가 포함된 수당을 받는 수준이었다.
급여는 의회정치 패러다임의 새로운 변화의 산물이다. 서복경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은 “노동자·농민 계급 출신들로 구성된 노동당·사민당이 의회에 진입하면서부터 직업정치인도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정치를 전업으로 하는 의원들에게 그에 따른 급여가 자연스럽게 지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20세기 초반의 일들이다.
의회의 독립성을 위해 허용된 의원들의 겸직은 3권 분립을 명분으로 금지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의원의 공무원, 특히 사법부 공직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 기업 및 민간 부문의 겸직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소속 단체나 기관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공익을 저해하고 사익을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의정활동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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