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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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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태우는 것들은 가라!

등록 2005-06-22 00:00 수정 2020-05-02 04:24

매케한 ‘서울의 냄새’에 몸서리치며 갖게 된 ‘내연기관 혐오증’
연간 이동거리 1만km, 도시공간의 미래형 교통수단을 애용하다

▣ 손종도(청죽)/인터넷 논객

화석연료를 태우는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물들어, 오랜 세월 나 자신도 자동차와 함께했지만 내연기관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72년 가을, 서울로 이사온 곳이 상도동이었는데 당시 강북의 끄트머리였던 삼양동에 살던 집안 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버스를 타게 됐다. 깡촌에서 올라온 나의 눈에 비친 차창 밖의 휘황한 서울의 야경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이었고, 삼각지를 지나며 대형 구조물인 삼각지 육교들을 바라보면서 그 경이로움은 더했다. 그런데 삼각지를 지나기 시작하면서 차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30년만에 자전거의 페달을 밟던 순간

점점 심해지는 멀미에 구토증이 밀려와 그걸 참느라 ‘저기가 바로 서울에서 제일 높다는 삼일빌딩’이라는 아버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캐한 서울의 냄새가 몸서리치도록 메스꺼웠다. 그런 호된 경험 때문에 난 자동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싫어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지방에 다녀올라 치면 서울 못 미쳐서 바라다보이는 서울의 하늘빛이 주위 하늘빛과 확연히 대비되는 우중충한 검은색을 띠고 있는 걸 보며 ‘아… 먹고살기 위해 내가 저곳으로 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우울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놈과 둘이서 이장님 자전거를 몰래 가져다가 하룻밤을 새워서 타본 이후로 자전거는 까맣게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다 마흔이 되던 해의 어느 봄날, 옆집에 사는 대학생이 며칠 타지도 않은 생활자전거를 버리려고 했다. “내가 타마” 하고선 동네 자전거포로 끌고 가 몇 군데 손을 봐 집으로 가져왔다.

단 하룻밤의 경험이 자전거 이력의 전부였던지라, 자전거를 집 대문 앞에 세워놓고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슬며시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아봤는데, 신통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넘어지지 않고 중심이 잡히는 것이 아닌가. 머리는 그동안 자전거를 잊었지만, 나의 몸은 자전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전거와 3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해후한 지 이제 7년이 지났다.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 보내는 동안 애초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자동차를 과감히 버렸다. 퍼붓는 비와 내리는 폭설도 자전거를 타는 데 결코 방해가 되지 못한다. 의정부에서 서울까지의 출퇴근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거리의 이동은 모두 자전거를 탄다. 연간 이동거리가 1만km를 훌쩍 넘을 정도다. 정 불가피할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네 형제 중 내가 맏이라서 집안일로 동생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이동할 때도, 난 결코 자동차에 동승하는 일이 없다. “먼저들 가게. 난 자전거로 감세” 하면서 기어코 자전거를 탄다. 사실 도시공간에서 자동차나 자전거나 이동에 요하는 시간은 별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해후한 자전거 위에서 난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차량이 빽빽한 도로와 자전거 도로, 산에 난 임도와 시골길에서 사계절을 느낀다.

서로에게 상해를 입히며 사는 꼴이란…

자동차란 괴물들은 서울의 대로와 골목길 어딜 보아도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느릿느릿 움직이며 내뿜는 매캐한 매연들을 도시를 떠나지 않는 한 피할 방법은 없다. 현대인들은 차량의 꽁무니로 유독가스를 내뿜어 보이지 않는 서로에게 상해를 입히며 사는 꼴이다. 그러나 현실이란 괴물이 우릴 도시에 단단히 옭아매고 놓아주질 않으니 서글프다.

화석연료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지구촌엔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머잖은 미래에 고갈될 거라 하니, 한편으로는 오히려 고소한 생각이 든다.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자전거가 컴퓨터, 비행기, 우주선을 제치고 당당하게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혔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내 생각엔 결코 의외의 결과가 아니다. 그만큼 자전거는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에도 충분히 통하고도 남을 훌륭한 이동수단인 것이다. 자전거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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