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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뭔가 보여주시렵니까

등록 2005-06-15 00:00 수정 2020-05-02 04:24

‘사면 약속’ 소문에도 김 전 회장 혐의는 대부분 밝혀져
정관계 비자금 의혹과 숨겨진 재산 파헤칠 수 있을까

▣ 석진환 기자/ 한겨레 사회부 soulfat@hani.co.kr

‘세계는 넓고, 숨을 곳은 많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5년8개월 도피 생활은 어떻게 끝날까?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법원과 검찰 주변에서도 그의 신병 처리 문제가 벌써부터 입길에 오르고 있다. ‘정말 들어오긴 하는 거냐?’라는 회의적인 물음에서부터 ‘사면 약속이 돼 있는 게 아니냐’는 냉소적인 전망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건강 악화, 신병처리 문제도 논란

검찰의 움직임을 보면,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임박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달 20일께 김 전 회장쪽이 검찰에 귀국 의사를 타진해올 때만 해도 검찰의 반응은 시큰둥했으나 이달 초부터 달라졌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그쪽에서 재차 연락이 왔다. (귀국 가능성이) 80%쯤은 된다”고 말했다. 이전과 달리 국내 최대 로펌 ‘김&장’을 공식 창구로 삼았다는 점도 “본격적인 법정 싸움을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이에 발맞춰 검찰은 도피 전 김 회장 수사를 담당했던 대검 중수2과에 사건을 배당해 본격적인 기록 검토를 시작했다. 대검 산하에 있는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에 흩어져 있는 대우 관련 자료도 모두 중수2과로 취합됐다.

지난 2001년 중수2과에서 발부받은 김 전 회장의 체포영장을 보면,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1997년부터 3년간 5개 계열사에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지시했고 △이렇게 작성된 허위 장부를 근거로 10조원의 불법 대출을 받았으며 △대우 영국법인 BFC사를 통해 수출대금과 해외차입금 등 25조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같은 김 전 회장의 혐의는 이미 사법적인 판단이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4월29일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재산 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병호 (주)대우 사장 등 대우그룹 임원들의 유죄를 선고하면서, 김 회장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 곳곳에 “김우중과 공모해”라는 문구를 빠짐없이 표시해두었다.

사정이 이렇지만, 검찰이나 법원이 김 전 회장의 형사처벌을 쉽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선, 김 회장의 신병처리 문제부터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하다. 김 전 회장쪽은 귀국설을 흘리면서부터 거듭 ‘건강 악화’를 강조해왔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단은 이를 근거로 ‘불구속 수사 → 보석 → 집행유예 → 형집행정지 → 사면’ 등 수사에서부터 재판, 형집행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옥살이’를 최소화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게 분명하다.

검찰도 당장 김 전 회장이 귀국하면 구속 수사를 할 것인지부터 고민거리다. 검찰 내부에서도 “(김 전 회장의) 건강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고 하니, 일단 본인의 상태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의견과, “그렇게 오래 도피했던 피의자를 불구속 수사하면 여론이 가만 있겠냐”는 생각이 뒤섞여 있다.

김 회장의 귀국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이미 정치권과 시나리오가 다 짜인 게 아니냐”는 쪽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다는 점도 검찰에는 부담이다. 지금껏 몇번 사용되지 않았던 아주대 병원의 특실이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거나,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지난 1월 한남동 200여평 부지에 새집 건축 허가를 받은 점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런 의심은 더 커졌다. 일부에서는 “도피 중에 언론 인터뷰도 하고 측근들도 만났는데, 검찰이 처음부터 검거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말도 다시 나온다.

“로비 사실을 털어놓을 가능성 없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며 이같은 의심을 일축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형사소송법 개정이나 수사권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검찰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게 검찰 내부의 분위기다.

한편, 대우 퇴출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사다.

1999년 대우그룹 부도 당시 이를 막기 위해 김 전 회장이 상당한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뿌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은 범죄 혐의자의 해외 도피 기간을 공소시효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검찰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수사가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 3월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의 투신으로 실체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당시 대검 중수부가 대우쪽이 거액의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6월7일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그분이 들어와서 여러 발언을 하게 되면 파장이 클 것”이라며 “아마 잠 못 이루는 사람도 요새 많을 것”이라고 말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설사 로비를 했다 하더라도, 로비 사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분식회계나 사기대출 등은 당시 대우만 했던 게 아니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재산 국외 도피 부분은 법정 다툼을 통해 형량을 줄여보겠다는 계산이 서 있을 것”이라며 “검찰이 새로운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 한, 스스로 국민적인 비난을 살 만한 치명적인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밑에서 벌어질 검찰과 김 전 회장 사이의 추징금 환수 ‘게임’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지난 4월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된 8명의 전·현직 임원들에게 선고한 추징금은 사법 사상 최고액인 23조358억원이었다. 전두환(2205억원), 노태우(2629억원) 전 대통령에 선고된 추징금의 100배 수준이다. 대법원이 김 전 회장의 ‘공모’와 ‘지시’를 인정했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은 추징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처럼 김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 찾기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 2002년 자산관리공사는 대우의 부실 채권을 인수하면서 김 전 회장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시가 1200억원대의 아도니스 골프장과 방배동 부지 1천여평에 대해 소유권 확인 소송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골프장을 산 돈이 김 전 회장의 계좌가 아닌 가족 계좌에서 나왔고, 가족들이 증여세 등을 납부한 사실 등으로 미뤄 가족 소유로 봐야 한다”며 부인 정희자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김 회장 소유의 재산이 남아 있지 않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찾기 어려울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부인이 경영하는 회사의 진짜 주인은?

그럼에도 재계를 중심으로 김 회장의 재산과 관련된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부인 정씨가 회장으로 있는 ‘필코리아리미티드’와 관련된 의혹이다. 필코리아는 경주 힐튼호텔,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 중국 옌볜 대우호텔, 선재미술관 등을 운영하는 자본금 총액 86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매년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필코리아의 정씨 지분은 9.2%밖에 되지 않으며, 지분의 90.8%를 갖고 있는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의 실지 소유자가 김 전 회장”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가 국제 금융시장의 블랙머니가 집결하는 케이맨 제도에 있는 것으로 돼 있고, 1990년 초부터 대우와 거래가 있었음에도 실체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 등이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은 이미 김 전 회장을 포함해 추징금을 선고받은 대우 전·현직 임원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대책반을 꾸린 상태다. “이미 두 전 대통령의 추징금 집행 경험으로, 숨겨둔 재산을 찾아 국가에 환수하는 게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게 검찰의 각오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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