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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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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우익 “날자, 날자꾸나”

등록 2005-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역사교과서 왜곡 이은 독도 영유권 주장 통해 아시아에 경고 메시지… 그 배후는 집권 자민당!

▣ 유기홍/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 대표간사

한반도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가결과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분노하고 있다. 한국 여론은 들끓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본 언론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게 각양각색의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 등 수뇌부의 태도는 조용하다기보다는 태평하다. 독도 문제는 ‘지방의회의 일’이라고 발뺌하고, 교과서 문제는 ‘민간 우익단체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 뿐 어떤 가시적인 조처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시마네현 의회에 얽힌 자민당 인맥

그러나 최근 쟁점화된 독도 영유권 논란과 교과서 왜곡 문제는 사건의 진행 과정이나 배후 인맥, 정치적 행동 등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일본 정부 안의 극우파 각료들과 집권 자민당 의원들이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자민당은 2005년 1월18일 열린 창당 50주년 전당대회에서 당 중점정책으로 4가지를 밝히면서, 그 첫 번째로 독도, 쿠릴열도, 센카쿠섬의 영토분쟁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땅’을 되찾기 위해 이웃 국가인 한국, 러시아, 중국에 명확한 자국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시마네현 의회의 도발적 결정에 자민당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통과를 주도한 인물들은 집권 자민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례안을 가결한 시마네현 의회의 미야즈마 하지메 의장은 호소다 관방장관의 사촌동생이다. 호소다 장관 역시 시마네현에 지역구를 둔 5선 의원으로 자민당에 당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마네현 의회 의장 출신인 아오키 마키오 의원은 현재 일본 참의원 의장으로 미야즈마 시마네현 의장의 정치적 선배이다.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을 제출한 뒤 일본 외무성은 시마네현에 자제를 촉구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중앙 정치권과 지방 정치권 사이의 역할분담에 따른 계획된 행동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독도 문제는 단순히 해상 자원을 둘러싼 어업권 문제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는 현재 독도 자체의 영유권과 어업권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쿠릴열도와 센카쿠섬 영토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공세적 영유권 회복에 대한 강경 메시지를 독도 문제를 매개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인 2차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노골적으로 쿠릴열도 문제를 언급하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을 만들겠다는 한 지방의회의 결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시아 주변 국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일본 안의 국론을 자민당의 우경화 정책에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미래 동반자 선언’과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 담화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 자제’ 문구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일본 사회를 60년간 얽어매온 전범국의 멍에에서 벗어나,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걸맞은 군사력과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하기를 갈망하는 집권 자민당의 숙원을 읽을 수 있다.

전범국가의 멍에를 벗어나려는 몸부림

일본이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쉬운 말은 ‘보통국가’답게 세계로 도약하자는 것이다. 자국민을 향한 슬로건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세계 패권을 나눌 정도로 일본은 발전했고, 더는 전범국가로 낙인찍힌 굴욕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로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이 2004년, 2005년 두해에 걸친 전당대회에서 주요 정책으로 △평화헌법 시안 마련 △교육기본법 개정을 그토록 주장한 이유도 미국 점령군이 만든 이 두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일본의 숙원인 세계 지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역사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민당이 일본의 우경화 정책을 이끄는 데 매우 유효한 수단이 역사 교과서 문제다.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고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는 내용,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조차 완전이 삭제하는 등의 행위는 전범국가의 멍에를 벗고 보통국가로서의 자부심을 일본 청소년에게 심어주고 싶어하는 일본 우익의 바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역사를 왜곡한 문제의 후소샤 역사 교과서를 만든 일본 내부의 대표적 우익단체인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일본 정·재계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새역모는 일본을 자랑스러워하는 씩씩한 일본 국민을 육성하고자 침략전쟁을 근대화를 이끌어준 선구자의 역사로 뒤바꾸고 있다. 이들에게 역사는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인에게 자부심을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역모에도 일본 집권 자민당이 조직적으로 결합돼 있다. 그것은 2004년 6월14일 열린 ‘올바른 역사교육을 아이들에게!’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통해 명백히 증명됐다.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지방의원 합동으로 열린 이 심포지엄에는 국회의원 20명, 전국의 지방의원 180명, 새역모 회원 500여명이 참가했다. 주최쪽은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회장 후루야 게이지 중의원)이었고, 자민당 청년국과 여성국이 적극 협력했다. 후원은 교과서개선협의회가 맡았는데, 이 단체는 문화청 장관 출신인 미우라 슈몬이 핵심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새역모가 만든 문제의 역사 교과서를 쓰라고 전국의 현 교육위원회에 압력을 넣은 바도 있다.

‘교육기본법’개정은 무엇을 노리는가

또 가와무라 당시 문부과학상은 후소샤 교과서의 검정·채택을 지원하는 한 집회에서 “새로운 제언에 의해 새로운 교과서가 나온 것은 일보 전진”이라고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를 평가했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사교육의 문제는 헌법 개정, 교육기본법 개정의 문제와 표리일체를 이루는 중요 과제”라는 공식적 통지를 지방의원에게 보냈다. 역사 교과서 개정 문제가 자민당이 추진하는 일본 전체의 우경화 정책과 맥이 닿아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자민당은 2005년 전당대회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북 제재 조치 발동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승하겠다고 결의했다. 자민당이 1월20일 발표한 ‘헌법개정 시안’은 일본 국왕을 ‘국민의 상징’에서 ‘일본국의 원수’로 격상(1조)시켰다. 또 ‘전력 불보유’ 조항을 삭제하고 자위를 위한 ‘방위군’으로 정식 명기하는 것은 물론 연합군에 참전할 수 있다는 조항(9조)도 포함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 나라’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는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일본은 급격하게 우경화됐다. 이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과연 누가 이 흐름을 주도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2001년 테러특별법을 통과시키고 2003년 전시대비법과 이라크부흥지원법을 통과시킨 주체는 명확하다.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인정하기 위해 평화헌법을 만들려는 주체도 분명하다. 바로 집권 자민당이다.

자민당은 철저하게 의원모임 형식으로, 때로는 우익단체에 대한 지원과 후원 형태를 띠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퍼즐을 종합하면 집권 자민당이 보이고, 평화헌법을 개정해 세계 지도국가로 부상하려는 일본의 야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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