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의 진단...서비스업 중심으로 일자리 늘리는 노력 펴나갈것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본격적인 회복으로 볼 수는 없어도 방향이 오름세로 반전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정부의 거시경제 및 금융 정책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병원(53)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최근의 소비 회복세를) 본격적인 경기회복으로 볼 수는 없어도 (회복의) ‘불씨’는 지폈다”며 “이를 살려가기 위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차관보는 “고소득층의 해외 소비를 국내로 끌어들이는 노력과 함께 경쟁에서 뒤처지는 부분의 구조조정 노력도 늦출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차관보는 옛 재경원 예산총괄과장,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재경부 차관보를 맡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 첫날인 2월1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이뤄졌다.
방향이 꺾였다는 데 큰 의미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갑자기 많아졌다. 정부 판단은.
좋아진 근거로 드는 게 대부분 ‘공식지표’가 아닌 ‘속보지표’(신용카드 사용액, 자동차 내수판매 대수)다. 호전된 공식지표는 소비자기대지수 등 ‘심리지표’이며 그나마도 기준선(100) 아래에 머물고 있다. 경기회복의 본격화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한두달 더 지나 제조업 및 서비스업 활동 동향 등 확정 지표가 나온 뒤에 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온 경기 호전 소식은 너무 부풀려진 것 아닌가.
본격적인 경기회복으로 볼 순 없더라도 방향이 (내림세에서 오름세로) 꺾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미리 준비한 ‘1월 중 경제지표 동향’을 내보이며) 여기 자동차 내수판매 대수를 봐라. 올 1월에 5.0% 늘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감소세를 보이던 끝에 반전된 것이다.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해 12월 85.1에서 올 1월에 90.3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뛰었다. 부총리(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 말씀대로 ‘불씨’는 일어난 것으로 본다.
설 특수 등에 따른 일시적인 호전이란 신중론도 있던데….
그렇게 보는 이들이 근거로 드는 게 연말연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너스를 많이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보너스 지급에 따른 지출 증가 여력이 없어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꼭 그렇지 않다. 대기업 보너스 외에 내수 경기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다른 요인들이 있다.
어떤 것들인가.
고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우선 들 수 있다. 지난해 해외 송금을 뺀 해외 소비(관광, 스포츠, 교육, 의료 서비스)만 120억달러로 전년보다 20%가량 늘었다. 올해 설 연휴 즈음해선 지난해 같은 때와 견줘 25%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를 국내로 이끌어야 한다.
일부 고소득층의 얘기일 뿐이지 않은가.
고용 사정이나 가계부실 해소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비 여력이 늘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2003년에는 일자리가 3만개 줄었는데, 지난해에는 42만개가 늘었다. 이 가운데는 제조업 8만, 사업서비스업(기업컨설팅, 정보기술(IT) 통합 솔루션 제공 등) 15만 등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가 23만개에 이른다. 고용 사정이 양·질적으로 모두 좋아진 것이다. 가계부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신용불량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해 가계부채 문제가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경쟁력이다
소비회복의 불씨를 살려가기 위한 관건은.
해마다 20~25%씩 늘고 있는 (고소득층의) 해외 소비를 국내로 바꿀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10조원을 웃도는 뭉칫돈이기 때문에 ‘파괴력’이 크다. 관광·교육·의료 등 서비스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제조업쪽에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계속 교육·의료 등 서비스업 육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내수 회복 조짐이 보여도 여전히 ‘죽겠다’는 사람이 많다.
양극화 때문이다. 흔히 양극화의 범주를 대기업-중소기업, 제조업-서비스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누는데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제조업에 견줘 서비스업의 사정이 나쁘다고 하지만, 서비스업 내부도 양극으로 나뉜다. 기업컨설팅 등 사업서비스업은 형편이 좋은 반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부동산업, 교육산업은 불황이다. 도·소매업은 접대비한도제와 정치자금법 강화, 음식·숙박업은 성매매특별법 도입, 부동산업은 10·29 대책(2003년), 교육산업은 수능 교육방송 때문에 특히 어려워졌다고 볼 때 어떤 면에선 투명하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과정의 희생이며,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분야를 모두 버리고 갈 순 없지 않은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데….
문제는 경쟁력이다. 같은 소매업이라고 해도 무점포(홈쇼핑), 대형 할인점, 편의점은 잘나간다. 반면 백화점 재래시장 등 전통적인 유통업은 죽을 쑨다. 소매업이 4~5% 성장한다고 해도 혜택이 골고루 가지 않는다. 숙박업을 보더라도 호텔·콘도는 문제없지만, 장급 이하 여관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뒤처지는 부문은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도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다른 데서 일자리를 늘려 흡수해야 한다. 아니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사양 부문이 자체 경쟁력을 갖추는 게 대단히 어렵지 않은가.
엄밀하게 말하면 사양 업종은 없다. 심지어 농업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경북 구미시 등이 출자해 만든 2만5천평 규모의 온실이 그런 예다. 이 온실에선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작은 꽃이 피는) ‘스프레이 국화’를 재배해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고 있다. 2만5천평 땅은 통상 여섯 가구를 먹여살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곳에선 20명을 상시 고용하고 있으며, 일용직 고용 규모는 연간 2만5천man/day(한해 근무일 250일 기준으로 일용직 100명 고용)에 이른다. 김해평야 등지에서 영농조합들이 파프리카(빨강 피망)를 키워 한해 5천만달러를 수출하고 있는 예도 있다. 농업 안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자본, 기술, 마케팅 능력을 투입하면 성장 산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유가나 환율이 큰 영향 안 미칠 것
최근의 경기 호전세와 맞물려 나타난 주식시장의 활황세는 어떻게 보는가.
거래소 시장의 주식들은 주가수익비율(PER)이 워낙 낮았다(저평가돼 있었다). 그런데 코스닥시장은 저렇게 가파르게 오를 요인이 있는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집값이 또 오르는 것 아닌지,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이 정부는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집값을 잡는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수급 측면에서 볼 때도 앞으로 1년이나 1년 반 동안은 오를 요인이 별로 없다. 2002~2003년에 착공한 물량이 많다. 서울 강남, 판교 등을 빼고는 대부분 공급 초과 상태다. 문제는 2008년부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아파트를 거의 짓지 않아 이대로 두면 공급 부족을 겪을 수 있다. ‘좋은 위치에 넓고 잘 지은 집’을 원하고 그만한 값을 치르려는 수요는 점점 많아지는데 그에 상응한 공급은 부족하다.
향후 경제 운용 과정에서 국제유가나 환율 절상 등으로 난기류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은가.
지난해 경험했듯이 국제유가가 오르더라도 어느 정도 대응할 체질을 갖추고 있다. 또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산업의 비중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환율 절상이 이뤄져도 수출에서 깎아먹는 만큼 수입에서 번다. 수입 원자재 값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양쪽의 영향을 합치면 많은 부분이 상쇄된다. 그게 국제경쟁력이다. 유가나 환율 같은 외부 변수보다 잘나가는 부문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고 뒤처진 분야의 구조조정을 이뤄내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성장률은 그 결과일 뿐 4% 성장하든 5% 성장하든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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