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드라마 남녀 주인공으로 풀어본 뜨는 성격·지는 성격… 반항아·왕자님·캔디·신데렐라, 당신은 누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남자들은 쓸쓸하고, 여자들은 씩씩하다. 드라마에 투영된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이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에는 시대의 성격이 담겨 있다.
드라마 속 청년들은 ‘먼지’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은 대개 변변한 직업 없이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간다. 최근 3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방송 월화 드라마 의 무혁(소지섭)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무혁은 어릴 때 어머니에게 버려져 해외로 입양된 아픈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지만,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더구나 그는 이미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비극적 상황에 처한 그에게서는 어떤 생활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잃을 것이 없으므로 죽음도 두렵지 않다. 무혁은 죽음 앞에서도 “죽는 것도 그래. 그게 뭐 무서운 건가. 그냥 정상적인 거지. 사람들은 거의 다 죽잖아”라고 말한다.
지리멸렬한 남자 ‘무혁’의 인기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채 죽음으로 치닫는 캐릭터의 ‘원조’는 2002년 방송된 의 복수(양동근)를 꼽을 수 있다. 복수는 소매치기 출신의 가난한 스턴트맨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캐릭터였다. 그들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다르고, 그들의 행동도 평범함을 거스른다. 그들은 다만 자신만의 룰에 따라서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2004년에 방송된 의 재복(김민준)도 닮은 캐릭터다. 이들이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과 의 인정옥 작가는 “누구나 자신 안에 존재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면을 주인공이 건드려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일탈은 좌절의 징후이자 반항의 형식이다. 이들은 계급구조가 완고해진 사회 속에서 희망을 잃은 젊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제도의 관습을 거스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허무주의에 빠진 남성 캐릭터에 대해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수컷이라는 자긍심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사실의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한없이 쓸쓸한 청춘에 대비되는 완벽하게 달콤한 왕자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의 남자 주인공 한기주(박신양)는 소비자본주의의 욕망을 완벽하게 재현한 인물이다. 한기주는 재벌의 후계자이면서 자신의 연인을 끝까지 지켜주는 캐릭터였다. 재벌이 돈은 많지만, 인격적 결함을 가지는 인물로 그려졌던 전통적인 묘사는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변해왔고, 한기주는 그 변화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한기주 열풍은 “돈 많은 애들이 능력은 물론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까지 좋다”는 속설의 드라마적 승인이었다.
청년들이 한없는 허무에 빠졌다면, 중년 남성들은 쓸쓸하게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 장보고를 다룬 등은 한결같이 실패한 영웅들을 다루고 있다. 권김현영 ‘언니네’ 활동가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가부장제가 흔들리는 현실의 반영”이라며 “현실이 남성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줄 수 없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에 과거 속으로, 시대극으로 퇴행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영화 도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의 영웅이 되었으나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한 인물을 그렸다는 면에서 텔레비전 시대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성들이 현실에서 달아나고 있는 데 반해, 여성들은 씩씩한 모습으로 세파에 맞서고 있다. 특히 30대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로 살아가고 있다.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에서 가난한 집안 출신인 영심(엄정화)은 잘난 시집 식구들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로울 때마다 을 부르면서 이겨냈다. 2004년 연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의 미영(오연수)도 이혼을 당하고 사기까지 당하지만,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과 성공을 동시에 쟁취했다. 의 이신영(명세빈)은 사랑에 매달리기보다 일을 사랑하는 캔디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권김현영씨는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여성들은 남자들처럼 폼 잡을 여유가 없다”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여성의 생존 욕구가 반영돼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들의 씩씩한 캐릭터에는 찌든 현실을 명랑한 성격으로 잊고 싶어하는 욕구도 투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혼녀 미영 vs 전문직 은채
30대 여성과 달리 20대 여성들은 아직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연애’ 관계에서는 어떠한 고난이라도 이겨내는 ‘캔디’ 같은 강인함을 보이지만, 이들의 일상에서 성공을 향한 땀 냄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 은채(임수정)는 코디네이터라는 전문직 여성이고, 의 태영(김정은)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진 여성이지만, 이들의 캐릭터에서 일을 향한 열정을 찾아보기란 좀체 쉽지 않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전문직 여성의 캐릭터가 진정한 홀로서기에 이르지 못하고, 남성을 위로하는 멜로적 감수성으로 변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새해에는 어떤 캐릭터가 떠오를까? 구본근 SBS 책임 프로듀서는 “2004년의 판타지가 탈출구였지만, 2005년에는 단순한 판타지로는 부족하다”며 “새해에는 자신과 얼굴과 목소리가 비슷한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대리인생 드라마처럼 현실감이 있는 판타지가 유행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여성 캐릭터에 대해 의 김인영 작가는 “경제 위기를 몸으로 겪어 슬픔이 짙게 배어 있으면서도 엉뚱발랄한 행동을 일삼는 캐릭터가 아닐까”라고 전망했다. 전망을 넘어 이미 기획에 들어간 드라마들도 많다. 의 정성효 PD는 “한동안 유행했던 양아치 이미지는 시효를 다한 것 같다”며 “속 깊은 양아치, 다듬어진 아웃사이더 캐릭터가 많이 기획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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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냐, 발이냐.’
캐릭터를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다. 문화방송 드라마 의 김인영 작가는 “취재가 캐릭터 구성의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집필에 들어가기 앞서 취재에 집중한다. 예컨대 의 주인공, 이신영 기자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방송 여기자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취재를 했다. 평소 “곡식을 쌓아두듯”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되도록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다양한 계층의 특성을 분석해둔다”고 말했다.
반면 취재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의 인정옥 작가는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서 캐릭터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 작가는 “내 안에도 다양한 성격이 존재하니까 내 안에 집중하면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철저히 분열시켜 한 부분을 극대화하면 타인과의 교집합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취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인 작가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다음에 그 캐릭터의 정서와 드라마의 상황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취재를 통해 보충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들어야 하는 드라마 PD들은 평소 사람들의 ‘디테일한’ 행동을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어디를 가든 주변 사람들의 손놀림부터 얼굴 표정까지 유심히 관찰하는 일은 PD들의 ‘직업병’으로 통한다. 작가들이 구성한 캐릭터는 배우를 통해 재구성된다. 의 정성효 한국방송 PD는 “배우에 맞추어서 이미지를 입힌다”고 말했다. ‘설정된’ 캐릭터를 구체적인 배우에 맞추어 다시 한번 재가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기파 연기자의 경우에는 그의 고정된 이미지에 변형을 가하기도 하지만, 신인 연기자의 경우에는 캐릭터의 전형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구본근 SBS 책임 프로듀서는 “최근에는 배우들의 입김이 강해져 캐릭터를 배우에 맞추어 바꾸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캐릭터가 상상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캐릭터에는 시대의 전형성과 변화의 징후가 동시에 녹아 있다. 그리고 만들어진 캐릭터에는 만든 사람의 캐릭터가 불가피하게 녹아 있다. 김인영 작가는 “모든 캐릭터는 작가가 좋아하거나 닮고 싶어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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