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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연구, 나를 막지 말라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3 04:23

유엔에서 전면금지안 제출하고 로비중인 부시의 관념적 윤리관이 바뀔 날을 기대한다

▣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 대선이 끝났다. 그 결과는 전세계 각 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또 다른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이미 만들어져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된 80여개의 인간배아줄기세포주 이외의 줄기세포 연구에는 연방 연구자금의 지원을 금지했다.

미국의 꼼수‘코스타리카안’에 숨다

당시 부시 정부는 배아줄기세포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배아의 파괴가 수반돼 생명윤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학계나 의학계, 난치병 환자들은 관념적 이상주의에 기초한 윤리관과 개인적 종교관으로 과학 발전과 난치병 해결 기술을 저해한다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또한 미 공화당의 발의에 의해 배아복제에 이은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마저도 금하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계류 중이나 여론의 역풍으로 통과가 회의적이라 한다.

미국은 코스타리카와 함께 유엔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전면 금지하자는 이른바 ‘코스타리카안’을 제안해 몇년째 관철하고자 노력 중이다. 나는 이 안의 추진 과정에서도 떳떳치 못한 꼼수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면 떳떳하게 자신의 안을 제출해야 정정당당한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양 뒤로 빠진 채, 신학대학에서 성직자 과정을 밟던 코스타리카 대표를 대리인으로 세웠다. 그 이면에서 모든 전략과 외교적 압력은 자신들이 행사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코스타리카안의 공동제안국이 60개 국가였다. 이에 반해 인간개체 복제는 철저히 금하되 의료치료용 배아복제 연구는 각국의 국내법에 따르자는 이른바 ‘벨기에안’은 20개 국가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 이후 나는 미국의 시민사회단체와 환자단체·과학계·의학계, 우리나라를 비롯해 벨기에·영국·프랑스·일본·중국 등의 유엔 주재 외교관들의 노력으로 6월과 10월에 유엔에서 세미나와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와 같은 과학적·외교적 활동으로 이제 벨기에안의 지지 국가가 코스타리카안 지지국을 상회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재선 여세를 몰아 미국이 코스타리카안 지지국 확대 노력과 함께 유엔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기습투표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벨기에안의 지지국 사이에는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시 대통령도 대선운동 기간 중 많은 환자와 과학자, 의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이 참생명윤리를 따르는 정책인지를 인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구가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와 인간복제 행위를 철저히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언젠가 동물실험에서라도 이 기술의 유용성을 증명할 날이 온다면, 그것이 세계 최강자의 마음마저 움직일 수 있는 ‘신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제럴드 섀튼 박사에게서 보는 희망

위대한 지도자는 자신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주저 없이 신념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와 같은 예를 미국 피츠버그 의대의 세계적 과학자인 제럴드 섀튼 박사에게서 보았기에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우려보다는 기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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