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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는 왜 피곤한가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3 04:23

느닷없이 튀어나온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문제에 나의 환경운동 역량을 쏟아내게 하다니…

▣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

‘고어 이펙트’라는 말이 있다. 환경주의자로 잘 알려진 고어가 미국의 부통령이 되면서 미국의 환경운동이 쇠락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클린턴 정부는 ‘환경정의에 관한 행정명령’을 채택하는 등의 적극적인 환경보전 정책을 펼친 반면, 당시 미국의 환경운동은 ‘고어 이펙트’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환경운동가다. 부시는 반환경주의자다. 기후변화협약과 관련된 공약만 보더라도 부시는 기후변화협약 ‘탈퇴’ 공약을 제시했고, 케리는 기후변화협약 비준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가 볼 때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단순하지 않다. 부시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세계 지배를 위해서 기후변화협약 따위는 아예 무시하겠다는 식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겁박을 준 것이고, 케리는 현재의 기후변화협약(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기후변화당사국총회의 논의 결과에 따른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부시 이펙트’를 기대한다

그런 연유로 나에게는 부시로 인한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부시의 반환경성이 나의 환경운동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점이다. 부시의 반환경적 태도는 세계적인 환경운동 진영의 저항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부시가 펼친 우산 아래에서 무위도식하려 할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환경운동은 불가피하게 이 문제를 주요 이슈로 제기하고 많은 역량을 쏟아부어가며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나는 우리나라의 환경 문제 중에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대규모 국토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개발이익의 편중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라고 느끼고 있다. 느닷없이 툭 튀어나온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문제에 나의 환경운동 역량을 쏟아내게 하는 그 구조가 마음에 안 든다.

나는 또 요즘 한국의 환경운동이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그동안 주류 환경운동이 가지고 있던 편협함, 시민들과의 괴리 등의 문제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면서 성찰의 시간을 갖는 데 온 열정을 기울이고 싶다. 나의 이런 기대와 열망은 부시의 배타적·국수적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훼손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위대한 미국인들이여! ‘부시 이펙트’는 어떤가? 당신들은 이제 반환경적인 부시를 상대로 적극적인 운동을 펼쳐야 한다. 당신들이 선택한 지도자 부시는 전세계 환경운동의 힘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 부시가 오로지 미국만의 이익을 위해 전세계 환경운동가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당장 선언하라! 부시 정부는 반환경 정부라는 것을. 그리고 미국의 환경주의자들은 부시 정부의 반환경 정책에 전면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것을. 그것이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나는 부시의 존재와 함께 ‘부시 이펙트’의 실재를 갈망한다. 이것이 부시로 인한 나의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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