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리더 여론조사 | 한나라당]
국보법 논란 등 거치면서 지지도 하향곡선 부담… 이명박 · 원희룡이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의 대중적 지지도 조사 결과를 한나라당 주변으로 좁히면 박근혜 대표의 ‘불안한 독주’로 요약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번 조사에서 호감도 46.6%, 능력평가 46.3%, 두 척도의 평균값 46.5%로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24.8%)이나 손학규 경기지사(18.6%)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1999년 같은 조사에서 전체 순위 10위(27.3%), 당내 3위를 차지해 ‘이회창의 독주, 박근혜의 부상’이란 제목으로 보도됐던 때와 비교하면, 당내 1위라는 이번 조사 결과는 ‘화려한 비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한나라당을 구해낸 공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박근혜의 100%에 가까운 인지도
그럼에도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를 박근혜라고 못박기에는 그의 입지가 불안해 보인다. 이는 1999년 조사에서 당시 이회창 총재가 조순 명예총재나 박근혜 의원에 비해 평균값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차기 주자로서의 지위를 의심받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박 대표에게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거의 두배 차이로 앞서가고 있음에도 ‘예선’과 ‘본선’까지 남은 3년 안팎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것 같다.
게다가 지난 7월 2년 임기의 대표로 선출된 뒤에 시작된 정체성 논쟁, 과거사·국가보안법 논란을 거치면서 지지도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박 대표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9월8일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의 지지도(직무수행 평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5월과 8월 같은 조사에서 각각 73.5%, 70.3%였지만 9월 조사에서 12%포인트가량 떨어진 58.6%로 조사됐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100%에 가까운 높은 인지도. 당내 뚜렷한 지지기반 없이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기반으로 리더십을 보장받고 당 내부를 통제해온 박 대표로서는, 대중적 지지도의 하락이 곧장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이재오·김문수 의원 등 ‘민주개혁파’를 자임하는 쪽의 ‘유신 청산’ 공세,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소장개혁파들의 지지 철회 움직임 등은 확고해 보이는 박근혜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소재이다.
박 대표의 독주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우선 고건 전 총리의 높은 대중적 지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 고 전 총리가 현 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냈음에도 옛 여권의 지지세력에게서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대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서 벗어난 ‘박근혜식 정치’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2007년 본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믿는 구석’을 찾아 등을 돌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든든한 구원투수가 있으면 선발 투수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는 이치와 비슷하다.
고 전 총리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드는 것보다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정계를 은퇴한 이회창 전 후보의 ‘복귀’를 논외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라는 점도 이번 조사 결과의 특징이다. 이 전 후보는 호감도는 낮아졌지만 높은 능력평가에 힘입어 평균값 33.8%로 박 대표에 이어 종합 순위 4위에 올랐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한창 주가를 올렸다가 급락한 정몽준 의원 역시 평균값 32.4%(종합 순위 5위)로 아직 ‘살아 있는 카드’이다.
고 전 총리나 이 전 후보, 정몽준 의원의 경우 정치적 상상력을 보탠 ‘가상의 적’인 반면, 이명박 서울시장은 가장 위협적인 현실세력으로 꼽을 수 있다.
이명박 시장은 이번 조사에서 호감도 19.6%, 능력평가 30.0%로 종합 순위 8위(당내 순위 2위)를 차지했다. 박 대표와 직접 비교하면 호감도나 능력평가 면에서 크게 뒤지지만 능력평가 항목이 호감도를 크게 뛰어넘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장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능력은 높이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명박의 브랜드는 '성과주의'
이 시장의 행보도 이런 대목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자신의 브랜드를 ‘성과주의’에서 찾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뉴타운·서울광장·시내버스 체계 개편 등 일련의 ‘불도저식’ 행정 스타일은, 그 과정에서 충돌과 잡음이 일지언정 ‘정쟁으로 때가 묻는 다른 주자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업적으로 평가받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합의 과정을 존중하고 환경과 문화의 가치를 높이 사는 새로운 시대 흐름과 맞는 리더십이냐는 논란이 일고는 있지만, ‘나토’(NATO·NO ACTION TALK ONLY)에 지쳐 ‘박정희 시대’를 바라는 국민들에게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2006년 임기를 마치고 당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폭발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 내 세력분포를 보더라도 영남 출신으로 서울시장을 지낸 그를 향해 대립각을 세우는 뚜렷한 비토세력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대중적 지지도 1, 2위의 정치인이 어떤 식으로든 ‘박정희 시대’에 선을 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명박 서울시장에 비해 손학규 경기지사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조사에서도 17위에 올랐던 손 지사는, 이번 조사에서 평균값 18.6%로 종합 순위 13위에 랭크됐다. 5년 동안 순위 변동폭이 크지 않고 10위권 바깥에서 맴돈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고 잠재적 대선주자로 경기지사를 지내고 있는 화려한 이력에 비춰보면, 대중들에게 선이 굵은 정치인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줄 만한 계기점이 없었던 탓이다. 현재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이인제 의원과도 비교된다. 이 의원은 경기지사를 발판으로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굳혔고 혈혈단신으로 1998년 대선에서 500만표를 거머쥘 정도의 ‘큰손’으로 성장한 바 있다.
한때 신한국당의 ‘9룡’으로 평가받았으나 이회창 총재 시절 비주류로 겉돌던 김덕룡 원내대표는, 거의 잊혀지는가 싶었지만 이번 조사에서 종합 순위 14위(당내 5위)에 오름에 따라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잠재력을 갖춘 정치인은 원희룡 최고위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격차가 크게 벌어지긴 했지만 네티즌과 여론조사에 힘입어 2위를 차지해 이번 조사에 포함된 원 위원은 종합 순위 18위(당내 6위)에 올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인지자 조사 결과’이다.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지도가 39.4%로 낮아 선호도와 능력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인지자들만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는 전체 순위가 8위(당내 2위)로 뛰어오른다. ‘사용 경험자 평가’의 성적이 좋은 만큼 인지도가 높아지면 전체 순위가 따라 오를 가능성이 큰 셈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당내 경선에서 정책과 인물 면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겠다”는 소장개혁파들의 포부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셈이다. 이는 2006년 시·도지사 출마, 혹은 차차기 대선을 위한 경선 출마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한구 · 정형근 · 강재섭 등 20위권 바깥으로
김문수 의원은 원 위원에 이어 전체 순위 18위(당내 7위)에 올랐다. 공천심사위원장, 3월 대표경선 출마에 이어 최근 박근혜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자기 정치를 시작한 점이 대중에게 어필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 밖에 이한구·정형근·강재섭·박세일·이재오 의원 등이 20위권 바깥에 랭크됐다. 주요 당직을 맡고 있거나 당내에서 중진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대중들에겐 별로 매력이 없고 그다지 울림이 크지 않은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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