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헌법재판관에게 보내는 한 법학자의 편지… “인권의 이름으로 헌법의 새 역사를 쓸 때다” </font>
▣ 김두식/ 한동대 법학부 교수 · 변호사
헌법재판관님들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주에 나왔습니다. 언론은 “양심적 병역 거부 유죄 판결”을 대서특필하며 그동안 하급 법원에서 벌어지던 ‘혼란’이 종식됐다고 이 판결을 환영했습니다. 아직도 400여명의 젊은이들이 교도소에 있고, 이번 판결에 따라 새로 교도소에 갈 청년들이 매년 500여명에 달하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공은 우리 헌법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2년 넘은 신중한 고민, 이유가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은 대법원 판결로 마치 이 논쟁이 종식된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님들께도 잘 아시다시피, 헌법의 본질적 가치를 논하는 이 문제에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은 헌법재판소뿐입니다. 게다가 유죄 판결을 내놓은 대법원조차 판결 참여 대법관의 절반이 대체복무의 입법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나올 만한 이야기는 이미 대법원 판결의 소수 의견과 보충 의견에서 대부분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 편지로 굳이 헌법재판관님들을 설득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처한 특수한 여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원칙적으로 ‘입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삼권 분립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나라에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입법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보수적인 대법원의 대다수 대법관들조차 대체복무가 바람직한 방향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왜 이 나라에서는 대체복무 입법이 안 되는 것입니까? 일부 국민들의 반대 때문이겠지요. 특히 군복무를 마친 이른바 ‘예비역’들의 감정적 반대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은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입법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마땅히 입법에 나서야 할 국회의원들 다수는 올바른 방향을 알면서도 강력한 반대 앞에서 입법을 위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마치 흑백 차별 철폐라고 하는 분명한 인권의 요구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표가 두려워 의회가 개혁 입법에 나서지 못했던 미국의 1950년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관님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그 장벽을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돌파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브라운 판결’(1954)이 나오게 된 배경이지요. 브라운 판결은 흑백 분리 교육이 흑인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줌으로써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분리 교육의 철폐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의견까지 들어가며 마련된 브라운 판결의 논리는 당시의 법리에 따르면 거의 억지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이후에도 거듭된 적극적 판결로 입법자를 대신하며 차별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렸습니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놓치는 순간 그 민주주의는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입각한 판결들이었습니다. 저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소수자 인권의 황무지라 할 수 있는 이 나라 헌법 역사의 새 장을 여는 출발점이 되리라 믿습니다.
국회가 다수의 지배를 상징한다면, 헌법재판소는 다수의 그늘에 가린 소수자를 보호하는 헌법 정신의 구현기관입니다. 그런 헌법재판소가 2년이 넘도록 이 ‘진부한’ 소재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연구가 부족한 까닭이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헌법재판관님들께서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에서 여론의 향방을 지켜보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법원과 같은 결론을 내릴 거라면 이미 2년 전에 충분히 헌재 결정이 나올 수 있었겠지요. 그 점에서 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헌법재판관님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여러 독재자들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때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모순된 논리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 출발점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이상 알맞은 주제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지금 이 시간에도 400여명의 젊은이들이 교도소에 남아 있고, 앞으로도 매년 최소 500여명의 청년들이 교도소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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