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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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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양심, 감옥행 시작되다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종교 · 직업 · 성적 취향 다르지만 ‘전쟁없는 세상’ 을 함께 꿈꾼 비여호와의 증인 14인의 앞날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은 매우 다양하다. 2001년 1월 오태양(29)씨를 시작으로 2004년6월 보쳉(김석민)까지 14명의 비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들이 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 운동권과 비운동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업가와 농부, 이들의 ‘정체성’은 제각각이고 ‘양심’의 바탕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꿈은 하나다. 이들은 병역거부자와 그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함께 활동해왔다. 병역 거부 운동의 시작을 알린 ‘병역 거부 1세대’들이 감옥행을 앞두고 있다.

재판 재개 예상… 유죄 피하기 힘들어

14명의 병역거부자 중 임태훈(29), 강철민(23), 최준호(23)씨를 제외한 11명은 현재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거나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2002년 당시 서울남부지방법원 박시환 판사가 위헌심판 제청을 받아들인 뒤 이들에 대한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재판은 헌재 판결 이후로 미루어졌다. 하지만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재판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 11명의 병역거부자들도 ‘감옥행’을 앞두고 있다. 벌써 7월 말 재판이 재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비공식적’으로 전해 들은 사람도 있다. 변호사들은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한달 안에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대법원이 처벌의 ‘가이드 라인’을 마련한 셈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인 7월16일 오전, 서울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 병역거부자들이 모였다. 첫 번째 병역거부자 오태양씨가 농담을 건넸다. “기다리던 때가 온 거 아냐? 다들 기뻐하는 것 같은데?” 병역거부자들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예상했던 탓인지 크게 실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역거부자들의 다양한 양심은 평화운동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첫 번째 병역거부자인 오태양씨는 불교 신자이자 평화운동가다. 14명 중 한국 나이로 유일한 30대인 그는 “30대 병역거부자”로 불린다. 병역 거부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상징하는 ‘늙은’ 병역거부자라는 뜻이다. 2001년 12월 병역 거부 선언을 했으니 3년을 넘게 병역거부자로 살아왔다. 병역거부자 모임에서 오태양씨의 곁을 떠나지 않는 ‘법우’가 있다. 불자 김도형(24)씨다. 김도형씨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일하다 병역 거부 선언을 했다. 김씨는 2003년 4월 입대를 했다가 ‘빠꾸’당한 경험이 있는 순박한 청년이다. 그가 입대 뒤 훈련을 받을 수 없다고 하자 군부대는 불교 신자의 병역 거부 전례가 없다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입영하지 않고 바깥에서 병역 거부를 했다. 병역 거부 뒤에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했다. 새만금 3보1배에 참여해 몸을 낮추며 걸었고, 지리산 생명평화결사에도 함께했다.

염창근(28)씨와 나동혁(27)씨는 2002년 전국학생회협의회 소속으로 밝힌 병역 거부 예비선언의 약속을 지켰다. 염씨는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염씨의 병역 거부 의사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가려고 했으나 병역미필 등의 이유로 출국이 좌절되자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사무국장을 맡았다. 한국인 인간방패의 소식을 알리고, 이라크인의 참상을 알리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이라크 침공이 끝난 뒤에는 한국군 파병반대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분쟁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몇년 해도 좋고,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소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좋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동혁씨는 단과대 학생회장까지 지냈다. 병역 거부 뒤에는 ‘전쟁 없는 세상’의 상근자로 일해왔다. 병역거부자들을 대표해 각종 병역 거부 캠페인을 준비하고, 후원자들을 조직하는 궂은 일을 맡아왔다.

정당인 · 출판인 · 동성애자들의 평화운동

두 번째 병역거부자 유호근(28)씨는 지역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구당에서 상근자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올해 들어 공동체 운동 모임인 ‘나눔·연대·평화의 공동체 희망동네’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굶주리는 이웃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운동이다. 그는 “밥,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곧 평화운동”이라고 말했다. 유씨가 도시의 공동체를 꿈꾼다면 최진씨는 시골의 공동체를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최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농촌공동체에 헌신하고 있다.

임성환(28)씨는 병역거부자들 사이에서 “불광동 임사장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출판사 ‘(주)아웃사이더’의 대표이면서 서울 불광동에 살기 때문이다. 임씨는 병역거부자로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잘나가는’ 벤처기업인이었다. 그는 1990년대 말 대통령상, 장영실상을 받은 벤처기업의 부사장이었다. 2002년에는 출판사를 설립해 잡지 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손쉽게 병역특례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어려운 병역 거부의 길을 택했다. 병역 거부 운동이 한국 민주주의 진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민(25)은 4주 군사훈련만 마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병역 거부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날라리’가 꿈이었던 그에게 군대의 집단주의와 계급질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는 병역 거부 뒤에도 노동문화방송(joy3.net)에서 음악을 틀고, 대학로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낸다. 최정민 병역거부권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모두들 두 사람의 병역 거부를 만류했지만 고집을 꺽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병역거부자 임태훈(29)씨는 동성애자다. 그는 평화적 신념과 더불어 군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 임씨는 병역 거부 소견서에서 “현행 징병신체검사에 성소수자를 가려내기 위한 항목이 있다”며 “이는 동성애를 정신병에서 제외한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정신의학회의 기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를 시민불복종의 의미에서 거부한다”고 밝혔다. 임씨는 올 3월 구속됐지만,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4개월째 구속돼 있다. 지난해 11월 당시 현역 이등병 신분으로 이라크 파병에 거부하며 부대 복귀를 거부한 강철민(23)씨도 현재 마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입대 자체를 거부한 다른 병역거부자와 달리 군 복무 도중에 병역을 거부했다. 강씨처럼 특정 전쟁에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선택적 병역거부자’라고 부른다. 강씨는 최근 김선일씨의 죽음에 항의해 옥중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풀무농업학교 출신인 최준호(23)씨는 생명을 훼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는 생태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그는 보석 신청을 하지 않고 이미 1년6개월의 형기를 마쳤다. 다시 시골로 돌아간 그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세 번째 병역거부자인 임치윤(26)씨는 특별한 학생운동 경험도, 화려한 이력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다. 임씨는 “나처럼 평범한 학생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옥행, 우리가 마지막이길”

올 4월에는 보쳉(김석민)이 병역 거부 선언을 했다.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병역거부자가 14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복무제 도입이 늦춰지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감옥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병역 거부 선언을 할 때부터 각오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다음 세대의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감옥행의 행렬에서 자신들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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