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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부부 섹스마저 안심할 수 없는…

등록 2001-11-21 00:00 수정 2020-05-02 04:22

선거권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가정주부들, 전체의 2%가 HIV 양성반응까지

1993년판 캄보디아 헌법에는 분명히 성평등이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지위를 따져보면 여전히 여성의 것이 남성보다 열악한 상태다. 개인적인 면에서도 나이와 성격이나 재산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성평등, 권력의지와 신분의 조건을 따지는 계급중심주의사회인 캄보디아에서 아직은 먼 곳에 있는 주제다.

성평등 구조 파괴시킨 지난한 전쟁

“앙코르왕조(9∼12세기) 이전에는 여성의 힘이 강했으나 14∼15세기의 전쟁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사회 분야보다는 가정을 책임지는 쪽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한 코이 베스(여성의 소리)나 “전쟁의 일상화가 남성중심주의를 고착시켰다. 특히 군대가 강화되면서 남성들이 폭력성을 가정으로 끌고들어온 것이 여성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라오몽 해이 크메르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은 모두 캄보디아의 지난한 전쟁을 성평등 구조를 파괴시킨 중대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동기야 어떻든, 캄보디아사회의 가장 악질적인 대중인식- 남성들의 주장에 여성들이 동조해버린- 을 소개하자면 이런 게 있다. “여성은 법이나 정책과 같은 창조적이고 조직적인 분야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선거철만 되면 “누구를 찍어라”라는 명령과 함께 남성들은 가정에서 판치게 된다. 전체 인구 52%가 여성인 캄보디아에서 한 가정에서 남성이 적어도 2표 이상을 지니고 있다는 뜻인데, 이건 여성들이 성평등의 가장 초보적인 권리마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좋은 본보기다.

헌법 제31조, “모든 크메르 시민은 평등하다. 인종, 피부색, 성, 종교, 정치적 지향, 출생배경, 사회적 지위 그리고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지닌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 멋진 문장은 우스갯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은 부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전통이라고도 하고 문화라고도 하는 캄보디아의 이 도도한 성차별 문장과 부딪히면 말이다. 이러니 사회적 권리 같은 건 제쳐놓고도, 여성은 가정에서부터 첫째 무사하지 못한 존재다. 가정주부 4명 가운데 1명꼴로 남편의 폭력을 호소하고 있다는 기획부 산하 통계연구소의 조사자료가 증명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피난처도 없다.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남편이 때렸겠지.” 많은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쫓겨온 딸에게 이렇게 짜증을 부리는 것이 보통이니. 가정폭력만이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 지표 속에서도 캄보디아의 여성은 안전하지 못하다. 43%의 매춘여성들이 후천성면역결핍증(HIV)에 양성반응을 나타냈고, 심지어 전체 가정주부 가운데도 2%가 양성반응을 보였다면, 그 주범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섹스에서마저 책임지지 않는 남편들이 문제이고 이게 성불평등의 상징인 셈이다.

최초로 두명의 여성장관이 등장했지만…

이런 구체적인 현실을 피해 “애쓰고 있다”는 말로 무마하려는 남성들의 의식도 문제다. 대개 지식인에 속하는 남성들이 그들인데, 주로 내세우는 지표가 있다. “현 정부 들어 최초로 두명의 여성장관이 등장했고, 하원 122의석 가운데 14명, 상원 62석 가운데 8명이 여성으로 채워졌고, 1993년부터 여성부가 발족되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 남성들은 여성이 아직 하위계급에 속하는 캄보디아의 현실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세력들이다.

‘여성번영’이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폭 난다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성차별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취재의 후일담으로 옮겨본다. “대부분 남성들이 오입질, 술타령, 도박을 쫓아다닌다. 이 습성들 속에서 여성차별이 등장했고, 그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 돈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캄보디아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원천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남성들이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 때, <한겨레21>에 다시 기사를 쓰고 싶다.

푸 키아(Puy Kea)|<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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