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28일은 역사가 짧은 한국 PC통신 역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날이다. 그날 오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대참사를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보도했던 매체는 그 막강하다던 신문도 방송도 아니다. 바로 PC통신이었다.”( 제60호 ‘PC통신! 최강 매체를 꿈꾼다’) 18년 전, PC통신은 변화의 상징이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모뎀 전화선으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덕이었다. 당시 기사에는 국내 4개 PC통신 서비스에 등록된 동호회 수만 620여 개에 이른다는 내용도 나온다. 동호회가 만든 새로운 인간관계가 토론의 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우리가 직접 인수해 운영하겠다”
PC통신이 그저 생소한 ‘추억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계기는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이다. ‘PC통신 삼국지’ 시대를 이끌던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도 포털 사이트로 변신을 시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네이버·다음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이텔은 2004년 파란닷컴(paran.com)에 흡수됐지만, 파란닷컴마저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소규모 포털사이트로 전자우편·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운영해오던 나우누리(nounuri.net)도 지난 1월31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서비스를 끝냈다. 천리안(chol.com)만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세월의 부침 탓에 PC통신 ‘3대 천황’은 그렇게 스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PC통신시대의 추억 지키기 운동이 일어났다. 바로 ‘나우누리 살리기 운동’이다. 그 중심에는 나우누리 이용자인 임원택(50·상자기사 참조)씨가 있다. 나우누리의 폐업 소식을 들은 그는 지난해 12월8일 ‘나우누리 살리기’(cafe.naver.com/nownurinet)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우누리 서버에 쌓여 있는 PC통신 시절부터의 동호회 게시판 자료 등을 지키려고 모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160명 넘게 모였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이용자들이 나우누리를 직접 인수해 운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본격적인 활동은 임씨가 지난 1월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나우누리 운영업체인 나우SNT를 상대로 ‘서비스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시작했다. 그는 서비스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서에 “1996년경부터 목록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동호회) 게시판에 고정 칼럼을 비롯한 다수의 글을 왕성하게 게재해왔다. 그러나 이런 저작물은 나우누리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로 모두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고 썼다. 그는 또 “사용요금을 연체한 적도 없으며 정보통신사업법상 천재지변 등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자가 서비스를 중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우누리가 서비스 종료를 공지한 두 달은 저작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부족한 시간이다”라며 서비스 종료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임씨는 “다른 많은 나우누리 회원들도 출자해서라도 나우누리 서비스가 지속될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인수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의 중재로 나우SNT는 현재 게시물 등의 자료를 폐기하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다.
이용자 보호할 법적 근거 희박해
나우누리의 사례처럼 포털 서비스가 문을 닫아 이용자들이 쌓아온 인터넷 게시물 등의 자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등의 대중화로 인터넷 생태계가 바뀌어 철 지난 이른바 ‘1세대 인터넷 사이트’가 경영난으로 줄지어 문을 닫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파란닷컴은 한 때 5대 연예뉴스 매체와 독점 계약을 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져 결국 문을 닫았다. 지난해 12월31일 서비스를 중단한 야후코리아의 사례는 더 충격적이었다. 1990년대 말 인터넷에 입문하던 이들이 첫 무료 전자우편 서비스로 많이 이용하던 곳이 야후코리아였다. 야후코리아는 사업을 철수하며 한 달의 기간을 두고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이용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과 블로그 자료 등을 일괄적으로 삭제해 “자료를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의 폐쇄로 개인 자료를 잃는 이용자를 ‘디지털 수몰민’이라 부를 만하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부랴부랴 짐을 챙기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수몰민과 다를 게 없는 탓이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디지털수몰민을 보호할 만한 근거가 없다.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는 ‘이용 약관’ 등에서 서비스 종료 30~60일 전에 개인 게시물 삭제를 통보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전자우편·블로그 등이 대부분 무료 서비스인 탓에 구체적인 계약 기간 등도 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한두 달 만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디지털 수몰민들의 혼란스러운 ‘짐싸기’ 풍경은 프리챌(freechal.co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월18일 자정 서비스를 종료하는 프리챌은 2000년대 초반 커뮤니티 모임 사이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이번 서비스 종료를 ‘프리챌 멸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싸이월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유료화로 새 활로를 찾으려던 프리챌은 2011년 파산을 선언하고 웹하드에 인수됐다. 그러나 여전히 수익을 못 내고 사업을 접게 됐다.
대학에서 학사조교로 근무하고 있는 백창현(33)씨는 얼마 전 프리챌 폐쇄 소식을 듣고 뒤늦게 13년 전에 만든 미술학원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친목 모임 커뮤니티의 내용을 옮기고 있다. 그는 “지금은 돌아가신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라 게시물 하나하나가 회원들 모두에게 의미가 깊다”며 “이 커뮤니티 말고도 중요한 곳이 여러 개 있는데 업체에서 제공하는 백업 프로그램도 없이 한 달 안에 모든 자료를 옮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프리챌에서 가장 큰, 학원강사 배아무개(41)씨의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TOEIC 정보 공유 커뮤니티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2년 동안 운영해온 이 커뮤니티는 회원 수만 3만6천 명이 넘는다. 배씨의 사무실 관계자는 “2년 전 프리챌이 파산할 때 이미 자료를 네이버 카페에 옮겨둬 큰 피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회원들이 공유했던 영어 공부 후기 등 유·무형의 자료가 고스란히 묻히 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을 일일이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다른 곳에 옮기기는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고스란히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옮겨주는 서비스도 등장프리챌 멸망이 다가오자 커뮤니티 자료를 대신 옮겨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박지수(27)씨는 자신의 대학 동아리 커뮤니티 자료를 정리하며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난 2월11일부터 트위터 등 SNS에서 신청을 받아 프리챌의 커뮤니티 게시물·사진 등을 백업해주는 작업을 대행해주고 있다. 게시물 1만 개, 사진·첨부파일 1천 개 이하 기준으로 10만원이고 초과하면 추가 비용을 받는다. 박씨는 “초과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커뮤니티 10곳의 자료를 옮겨줬다”며 “나머지는 여력이 안돼 프로그램의 소스를 인터넷에 공개해 다른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도 프리챌에서는 보이지 않는 짐싸기가 밤낮으로 한창이다. 이제는 부디 내 블로그의 짐을 싸는 일 없기를, 내 인터넷 카페가 철거당하는 일 없기를 기도해야 하는 시대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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