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불안 내세워 용산기지 이전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주장은 왜 말이 안 되는가
한-미 두 나라는 1월15·16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래 한-미 동맹 6차 회의에서 용산기지를 2007년 말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되 이전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용산기지 이전 합의에 대해 한나라당, , 재향군인회 등 보수쪽은 안보불안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이상훈 회장님, 14년 전 기억 안 나세요?
“도시계획상의 이점 때문에 미국의 한국 방어 의지 퇴색과 외국 자본의 퇴진이 우려되는 안보·경제상의 위기를 자초하는 소탐대실의 누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재향군인회(회장 이상훈)가 지난해 12월2일 용산 미군기지 등과 관련해 발표한 ‘벼랑 끝에 내몰린 이 나라 안보가 걱정된다’는 성명의 한 부분이다.
1월19일치 사설 ‘주한미군 한강이남시대의 대비책’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불안은 군사적 불확실성의 증가만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불안은, 국민의 안보상황 판단과 배치되는 이같은 사태가 협상 과정에서 자주라는 공허한 개념에 대한 이 정부 내부의 집요한 집착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매듭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한강 이북에는 청와대, 주요 관청 등이 몰려 있다. 만약 유사시에 한국 정부 수뇌부가 한강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간다면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서울 함락이나 패전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때문에 용산기지 이전으로 4년 뒤면 한강 이북에서 미군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런 안보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일부 보수세력의 주장은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진다.
한나라당은 용산기지 이전 합의에 대해 안보불안 등을 이유로 국회에서 비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16년 전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공식 논의를 처음으로 꺼내고 실제로 추진했던 쪽은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정당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용산기지 이전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노태우 후보는 외세 의존적인 군사독재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민족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용산기지 이전을 들고 나왔다.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용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주한미군을 설득하기 위해 ‘이전을 먼저 요구한 쪽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만들어냈다.

이번 용산기지 이전의 최대 문제점으로 30억~50억달러로 추산되는 이전비용의 한국 정부 전액 부담 원칙이 꼽힌다. 한국 납세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미군의 이사 비용을 대게 된 것은 14년 전 노태우 정부가 이전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 크다.
‘용산 미군기지는 우리 안보위상의 표상이다’고 주장하는 재향군인회의 이상훈 회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부터 90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내는 등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이끌었다. 당시 이상훈 국방장관은 1990년 6월25일 오전 루이스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과 용산기지 지방 이전 계획에 대한 합의각서에 서명 교환했다. 합의각서에 따르면 이전 일정은 1996년 말까지로 하되 이전에 따른 부담은 한국쪽이 지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이상훈씨가 장관으로 있던 국방부는 합의각서 서명식을 공개하지 않았고, 합의각서 원본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비밀로 분류될 내용이 있어 곤란하다’며 합의각서 요약본만 배포했다.
13년 만에 밝혀진 합의각서의 비밀들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합의각서의 ‘비밀’은 13년 뒤 밝혀졌다. 지난해 9월 공개된 합의각서 내용은 기지 이전으로 발생하는 모든 손해배상 청구는 한국 정부가 부담하며, 이전에 따른 매점·위락시설 등의 영업 손실도 한국이 보상하고, 기지 오염에 따른 환경복구 의무도 면제되며, 심지어 ‘군속 가정의 가정교사가 서울에서 이전지(평택)까지 왕복하는 데 드는 교통비’도 포함되는 등 불평등 조항이 가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는 1990년 6월 용산기지 이전 합의 때는 지금처럼 안보불안 등을 이유로 반대하지 않았다. 1990년 6월18일치 사설 ‘용산기지가 이전된다는데’는 △용산기지 이전에 앞서 미국에 유리하고 한국에 불리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부터 먼저 개폐하라 △이전비용 비공개 등을 지적했을 뿐이다. 1990년 6월26일치 2면 ‘한-미 용산기지 문제 합의 안팎’ 해설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과거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옮긴다는 소문만 떠돌아도 주가가 폭락했던 적이 있었던 생각을 한다면 용산기지 이전을 우리가 요구해서 이를 관철시키고, 또 아무도 놀라워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은 사회 현상의 큰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 정부는 일부에서 제기한 안보 불안감에 대해 에서 “한-미 주요 사령부를 서울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한-미 연합전력의 약화나 전투준비 태세상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한-미 안보협력 관계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1945년 미군이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주한미군은 다섯 차례에 걸쳐 철수 또는 감축됐다. 이들 조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라 모두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해외 기지를 포함한 전방배치 전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신속배치 능력을 강화하는 국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전면적인 미군 재편작업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용산기지 이전은 근본적으로는 주한미군 재편 또는 감축과 맞물려 있고, 미국의 안보전략에도 연계된 문제다. 보수세력들이 진짜 용산기지 이전을 막고 싶다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게 아니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에게 매달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1989년 4월 미 국방부는 상원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구조’란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나중에 동아시아 전략구상, 이른바 넌워너 수정안으로 확정된다. 탈냉전 상황 변화를 감안해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넌워너 수정안에 따라 미 국방성은 ‘3단계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안’을 짰다. 이 계획안에는 1990년부터 96년 이후까지 3단계로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90년부터 91년까지 1단계로 7천명을 철수하고, 93년부터 95년까지 2단계로 6500명을 철수하고, 3단계(96~2000년) 이후에는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주한미군만 남긴다는 것이다.
2단계에서 한-미 연합사가 해체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임무를 한국이 인수하고, 3단계에는 미 2사단 책임지역 인수, 한-미 기획사령부 정착,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용산기지 이전 등 휴전협정 관리체제와 연합지휘 체제의 획기적 변화 등이 들어 있었다.
한국 안보의 잃어버린 10년
노태우 정권 시절 용산기지 이전 한-미 합의, 1994년 12월 한-미 연합사에 있던 한국군 평시 작전통제권 한국 환수도 이 계획에 따른 것이다.
1단계(1990~92년)는 순조롭게 끝나 이 기간에 공군 및 지상군 비전투 병력 7천명이 철수했다. 그러나 2단계가 진행되던 1993년 북한 핵 문제가 터져 2단계 이후 이 계획은 전면 중단됐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한-미가 벌이는 주한미군 관련 논의는 90년 무렵 대부분 거론되거나 합의된 것이었다. 넌워너 수정안이 중단된 이후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서서히 줄이고 독자적 전략기획 능력을 키우고 안보전략을 짜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93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국 안보의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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